순이삼촌 현기영 중단편전집 1
현기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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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5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건 명백한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은 삼십 년 동안 여태 단 한 번도 고발되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가 그건 엄두도 안 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군 지휘관이나 경찰 간부가 아직도 권력 주변에 머문 채 떨어져 나가지 않았으리라고 섬사람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들고 나왔다 간 빨갱이로 몰릴 것이 두려웠다.


이 중편쯤 되는 소설은 제주 학살의 사건을 세상에 고발한 소설이라 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37살에 써서 발표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설로 인해 고문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딱 내 나이다. 나는 무얼 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순이삼촌은

(고향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흔히 삼촌이라 불린다.)

큰 옴팡밭에서의 삼만 명의 도민이 총살 당할 때 홀로 살아남은 사람이다.

제주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처음에 그 사건에 대한 궁금증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아... 내가 근대 한국소설을 기피하는 이유가 나왔다.. 우라나라가 근대시대로 넘어갈때 나타나는 아픔들.

그런 아픔들을 알아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대략 사건은 이렇다.

5.10 선거 때 부락 출신 몇몇 공산주의 골수분자의 선동에 부화뇌동하여 선거를 보이콧한 사건이 화근이 된 것이다.

정부에서는 공비 소탕작전의 일환으로 견벽청야 작전의 일부를 진행한다. 육지에서 군인이 대거 내려온 것이다.

선거를 보이콧한 김진배는 산으로 도망가고 아내는 부락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이때부터 군경은 마을 남자들은 밤낮으로 산으로 가지 않은 자들은 공비라 칭하고 마구 죽이게 된다.

남자들은 늘 군경을 피해 다니기 일쑤였다.

그러나 실제로 산으로 도망간 사람들은 군경을 피해 도망간 마을 남자들이고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군경은 마을 사람들을 모조리 불러다가 학교 운동장에 몰아넣는다. 그리고 직계가족이 군,경,공무원인 사람들을 분리 해내고

그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모두 공비라 믿고 총살에 이르게까지 한다.


살아남은 남자들은 조용히 숨어지내다가  6.25 가 터지는 바람에 모두 해병대에 지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귀신 잡는 해병. 햐.. 참. 나도 그 겉멋에 지원했지만,

제주도 남자들은 그때야말로 빨갱이 누명을 벗을 수 있는 더없는 기회였을 것이다.

그들은 그대로 있다간 다시 빨갱이로 몰려 개죽음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섬 출신 청년 삼만 명을 주축으로 이루게 된 해병대 3기들. 그들에게 용맹이란 과연 무엇일까? 빨갱이란 누명을 뒤집어쓰고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긴 이들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래도 내가 빨갱이냐?" 하면서 용맹을 떨치는 모습을.

그건 시대의 아픔을 전쟁으로 표출했던 것이다.


이런 사건이 실제 일어난 것이다.




이런 사건이 30년 동안 신문 한 토막 나오질 않았다.

와.


우린 이런 시대를 거쳐 온 것이다.

우리 주변엔 순이삼촌이 많을 것이다. 순이삼촌은 그 공포의 시간 속에서 세상에 알리기 두려워 지금도 가만히 떨고 있을 것이다.




해룡이야기.

p.163

중호는 사무치는 자괴감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피해자일 뿐인 어머니에 대한 이 가당찮은 반감은, 실은 마땅히 가해자한테로 향해야 할 분노가 차단된 데서 생긴 엉뚱한 부작용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응당 가해자의멱살을 붙잡고 떳떳이 분노를 터뜨려야 하는데, 도무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빨갱이로 몰릴까봐 두려운 것이다. 피해자인 섬사람들은 삼만이 죽은 그 엄청난 비극을 이렇게 천재지변으로 치부해버린다. 어쩔 수 없는 운명적인 것, 자신이 박복해서, 아무래도 전생에 무슨 죄가 있어서 당했거니 하고 체념해버린다. 허울 좋은 이념 때문에 폭동을 일으켜 살인, 방화를 일삼던 장본인들의 죽음이야 자업자득이라 하겠지만, 어째서 양민의 숱한 죽음들마저 자업자득이란 말인가. 그것을 자기 박복한 탓으로, 전생에 무슨 죄가 있는 탓으로 돌리다니.

 어머니의 자격지심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당신 탓으로로만 여겼다. 천재지변과 같이 막강한 가해자들, 그들에게 분노나 증오를 품는다는 것은 마치 천둥벼락에 적개심을 품는 것과 다를바 없이 허망한 노릇이었다. 고향 섬 해변을 수시로 침범하여 섬 여자를 약탈, 겁간, 살인을 자행하던 왜구들이 전설 속에서는 해룡으로 묘사된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가 아니었으락?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인 해룡. 해룡에게 먹히는 사람들은 다 팔자소관일 뿐, 해룡에 대한 적개심은 털끝만큼도 없다. 오직 덜덜 떨리게 두려울 따름이다. 피 묻은 흰 저고리와 시푸른 군복이 문득 머리에 떠오를 때마다 숨이 가빠지는 것은, 그러니까 분노도 증오도 아닌 바로 겁이었다.


이번 단편도. 제주의 한 사건을 겪은 중년의 이야기 이다. 자신들을 해룡에 재물을 바치는 마을 사람들로 비유하고 있다.

중호는 본적을 서울로 옮기고 서울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학창시절 동창들을 만나면서 다시금 오래전 그 소각사건을 떠올린다. 옴팡밭의 기억. 자신의 기억에 숨어버린 중호는 이제서야 자신을 찾으려한다. 아내에게 당당히 말하고 어머니에게 더이상 미안해 하지 않기 위해선 우선 본적을 제주도로 다시 옮기는 것부터 한다.


이제 더이상 겁내지 말자. 불같이 노여워하고 무섭게 증오해야 한다는 다짐이 인상적이었다.


가슴속에 묵혀둔 피해의식을 떳떳한 증오로바꾸기 위해서, 그러나 증오가 보복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용서하기 위해서, '용서하지만 잊지 않기 위해서'. 집 나가신 날을 기일로 제사 올리는 아버지의 억울한 혼백, 항상 자학의 채찍질에 시달리는 어머니의 자격지심, 나의 육지 콤플렉스를 위하여. 그 육지 콤플렉스라는 것은, 삼십년 전 그 세거리길에서 어린 나의 뇌리에다 화인으로 뿌지직 태워놓은 상흔이었다.


이 소설 이제야 읽어서 세상에 참으로 부끄러웠다.


 

작가에 깊은 존경을 느끼며 잘 것이다.



오늘 밤엔

'지상의 숟가락 하나' 를 꺼내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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