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사람들의 바람과 무관하다. 간절함을 손쉽게 외면 한다.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착하게 살았는지, 우리 가족이 얼마 나 간절히 회복을 기원하는지, 얼마나 신앙심이 깊은지, 죽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것마저 그 환자가 믿던 하느님의 숨은 뜻 이라면 나 같은 보통의 인간들은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날 내가 보기에 하느님은 무심했고 침묵했으며 그것이 원망스러웠다. 저렇게 살고자 하는 사람을 무슨 권리로 저렇게 처참히 데려가신단 말인가. 그렇게 착한 사 람 데려가서 기분 좋으시냐고 욕이라도 한바탕 퍼붓고 싶었다. - P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