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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 나의 중국혁명
왕범서 지음, 김승욱 옮김 / 새물결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회상 : 나의 중국혁명≫(왕범서, 새물결)


이 책은 중국의 트로츠키주의 혁명가 왕범서의 자서전이다. 왕범서가 5.4운동과 5.30운동을 거쳐 혁명가가 되고, 1차 혁명의 교훈과 모스크바 유학 생활을 통해 트로츠키주의자로 전향하는 과정, 그리고 논쟁과 탄압 속에 중국의 트로츠키 운동을 이끌어 가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5.4운동은 1차세계대전의 종전과 관계가 있었다. 1919년에 열린 베르사이유 강화조약은 중국이 전쟁 전에 제국주의가 무력 점거한 영토를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했다.

그러나 베르사이유 회담에서 일본이 그 지역의 지배를 유지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졌고, 이것은 중국인들 사이에 깊은 배신감을 불러일으켰다. 1919년 5월 4일, 3천여 명의 학생들이 북경의 심장부인 천안문 광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것은 전국적 규모의 항의 운동으로 이어졌다.

고향의 소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던 10대의 왕범서는 이 운동의 여파로 조금씩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그러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 벌어진 5.30운동에 참여한다.

5.30운동은 경제적 요구와 반제국주의적 요구가 뒤섞이며 등장한, 중국 1차 혁명의 신호탄이었다. 이 운동은 1925년에 시작돼 1927년까지 계속된다. 노동자들의 파업과 농민의 반란이 상해, 광주, 홍콩, 무한, 항주, 강서, 호북, 호남 등 화남과 화중 지역까지 휩쓸었다.

5.30운동의 초기 국면에 참여하며 공산당에 입당한 왕범서는 처음부터 몇 가지 혼란에 휩싸인다.

당시 중국 공산당은 스탈린과 코민테른의 지령에 따라 1차 국공합작을 위해 국민당에 입당 전술을 펴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국민당 세력이 전무하다시피 한 북경에서 활동을 시작한 왕범서는 ‘대체 누구와 연합해야 하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의문 그리고 반대파


왕범서를 포함한 북방의 공산당원들을 더 경악하게 한 것은 “남방으로부터 전해오는 ‘청당’[공산당과 좌파에 반대한 국민당의 동향]의 소식이었다.” 1927년 봄에 국민당 우파 지도자였던 장개석은 공산당이 조직한 환영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상해에 입성했는데, 갑자기 태도를 바꿔 노동조합 사무실을 습격하고 노동자들과 공산당원들을 학살했다. 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거의 모든 무기를 땅에 파묻거나 장개석 군대에게 넘겨줘 버린 노동자들은 저항다운 저항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장개석은 이러한 테러 통치를 모든 읍과 도시들로 급속히 확대해, 몇 달간 수만 명의 노동자들을 학살했다. 왕범서와 젊은 동료들은 “한데 모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탄식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는 분명히 알 수 없었다.”

이런 경험과 의문들이 나중에 1차 혁명의 패배 후 모스크바로 도피한 왕범서를 트로츠키주의로 인도한다. 당시 트로츠키는 이 일을 이렇게 분석했다. “민족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장개석들과 왕정위들을 모스크바에 사절로 보냈고, 호한민(胡漢民)들을 통해 코민테른의 문을 두드렸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민족 부르주아지가 혁명적 대중에 직면해 무기력하게 허약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취약함을 깨달았고 자신들의 안전 보장을 모색했다. 만약 우리들[공산당] 자신이 노동자와 농민을 밧줄로 끌고가지 않았다면, 노동자도 농민도 민족 부르주아지를 추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레온 트로츠키, ≪On China≫)

왕범서와 젊은 혁명가들은 쓰라린 패배의 상처를 안고 모스크바 유학을 떠난다. 여기서 그들은 예기치 않게 소련 공산당 내의 거대한 논쟁에 대해 알게 된다. 그들이 영화를 보러 간 한 극장에서 “화면에 스탈린 혹은 트로츠키가 나타날 때마다 군중들 사이에서는 반드시 옹호와 반대의 두 태도가 공존했다.……비록 트로츠키파가 스탈린파를 압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세력이 거의 비등했다.”

왕범서는 삼엄한 감시 속에서 용케 좌파 반대파의 문건들을 구해 읽는다. 그는 그 경험을 이렇게 회고한다. “몇 권의 책들을 읽고서 내 마음은 밝게 트였다. 두서너 해 동안 가슴속에 쌓여 있던, 중국 공산당의 혁명 지도에서 드러난 이해할 수 없는 전술에 관한 의문들이 이때 모두 분명해졌다.……이때부터 나는 ‘볼셰비키―레닌파’(당시 반대파의 명칭)가 됐다.”

소련 내의 좌파 반대파의 규모와 영향력에 대한 왕범서의 평가는 사실보다 약간 부풀려져 있는 듯하다. 실제로 모스크바의 반대파는 나름대로 영향력이 있었지만, 정작 (혁명의 열기가 가장 강력했으며 좌파 반대파가 가장 격렬하게 저항했다가 일찌감치 패배한) 수도 레닌그라드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왕범서 자신의 회고했듯이 “레닌그라드의 친구들은 내가 모스크바에서 알고 지내던 러시아인들에 비해 소비에트의 새로운 젊은 세대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줬다. 그들을 보면서 나는 스탈린이 왜 당내 투쟁에서 트로츠키에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는가를 보다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국제 혁명의 확산을 기대하며 10여 년을 버텨 온 러시아 노동계급은 독일 혁명이 최종 패배하면서 낙담했다.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론’은 이러한 절망감의 산물이었다. “분명히 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은 이들 젊은 남녀에게 선호되거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럼에도 중국 1차 혁명의 패배로 스탈린과 코민테른의 권위가 크게 추락했으며, (처음부터 이런 문제점들을 경고해 온) 좌파 반대파의 주장이 어느 정도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는 왕범서의 주장은 사실이다. 그러자 스탈린은 모든 책임을 당시 중국 공산당 지도자였던 진독수 개인의 “우파 기회주의” 탓으로 돌려 버리고, ‘제3시기’를 선포한다.

그러나 코민테른의 “제3시기 좌익 맹동주의” 정책은 공산당의 마지막 도시 기반마저 파괴해 버린다. 스탈린은 “다가오는 고조기”를 선포하고 중국 공산당에게 봉기를 명령한다. “이런 시위들은 마치 어린아이들의 유희 같았고, 혁명가가 자신을 용담거리로 삼는 못된 장난이었다.……‘시위’가 끝나면 ‘고조’는 한번 지나간 셈이 된다. 이런 시위는 이를 조직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커다란 곤혹감을 불러일으켰고, 동원돼 참가한 사람에게는 막대한 고통을 줬다.……이렇게 죽임을 당한 중국의 우수한 공산당원은 너무나 많았[다.]……우리가 이 노동자 계급의 중심지에서 고조를 조성하려면 할수록 진정한 고조의 도래는 점점 더 멀어지는 듯했다.” 공산당은 군대를 조직해 몇몇 남부 도시들을 공격했다가 거의 궤멸 지경에 이른다. 그러자 스탈린은 이번에도 자신의 잘못을 또다시 구추백이라는 희생양에게 떠넘겨 버린다.

사실 코민테른의 이 ‘제3시기’ 정책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왕범서가 책의 뒷부분에서 지적하듯이, 유럽에서도 이것은 큰 문제를 낳았다. 즉, 파시즘의 등장에 맞서 공산당과 사회민주당, 두 노동계급 정당이 공동전선을 형성해야 할 시기에 코민테른은 사회민주당이 사회파시즘, 즉 파시즘과 별 다를 바 없으므로 연대하지 말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 ‘제3시기’ 정책은 오래 가지 않는다. 스탈린과 코민테른은 ‘사회파시즘론’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또다시 우경화한 ‘인민전선[통일전선]’ 정책을 내놓는다. 이번에는 파시즘이라는 ‘최악’에 맞서, 사회민주당은 물론 ‘차악’인 부르주아 ‘개혁’파 정당들과도 연대하라는 것이었다. 이 정책이 중국에서 2차 국공합작,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인민전선 정부를 낳았고, 국제적으로는 2차세계대전에서 소련이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연합군측 제국주의 국가들과 동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쨌든 왕범서와 중국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올바른 주장을 내놓고 조직을 건설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나 크게 세 가지 문제가 이들을 괴롭힌다.

가장 큰 것은 경찰의 탄압이다. 특히 왕범서의 세 번째 감옥 생활 경험은 정말 끔찍할 정도다.

일찌감치 도시, 즉 노동자 계급 주도의 혁명을 포기하고 농촌으로 대장정을 떠난 공산당과 달리―물론, 중국 공산당이 무슨 전략 수정을 통해 이렇게 한 것은 아니다. 도시에서의 궤멸적 패배로 농촌으로 도망치는 과정에서 사태가 그렇게 진행됐다―트로츠키주의자들은 도시에서의 활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도시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부활을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고, 그 때문에 탄압도 가장 심하게 받았다.

두 번째는 역시 소련, 그리고 공식 공산당의 권위 문제다.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소련, 그들의 공식 지도자인 스탈린, 그리고 스탈린이 지도하는 코민테른과 중국 공산당의 공인된 권위는 매우 강력했다.

세 번째는 트로츠키주의자들 자신의 분파주의다. 사실 국제적으로 트로츠키 사후의 트로츠키주의는 분파주의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인데, 이 점에서 중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초 4파의 분열과 통합 이후에도 수많은 분열과 통합을 거친다.

이 점은 트로츠키주의 운동에게는 참으로 불행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고립된 처지와 관계가 있었다. 트로츠키 사후의 트로츠키주의 운동은 공식 공산당의 운동, 그리고 대체로 공식 공산당의 지도 하에 있는 노동자 운동으로부터 의도적으로 배제당했다. 이 때문에 트로츠키주의 조직은 젊은 지식인들 중심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았고, 이러한 현실 운동으로부터의 고립이 악명 높은 분파주의를 낳았다.


“타락한 노동자 국가”


그러나 이 책에 나오는 다양한 논쟁들, 특히 책의 후반부에 나오는 다양한 논쟁들―항일운동을 위해 계급운동을 포기할 것인가, 소련과 중국은 어쨌든 노동자 국가인가, 전 세계의 스탈린주의 공산당들은 여전히 혁명적 세력인가, 2차세계대전에서 (소련과 중국이 가담한) 연합군을 지지해야 하는가, 제4인터내셔널 창립은 필요했는가 등등―은 단순한 분파 싸움이 아니며, 필요한 논쟁이었다. 왕범서의 이 책은 그런 점에서 현실 운동이 제기하는 수준 높은 토론거리들을 제공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왕범서의 생각에 몇몇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예컨대, 처음에는 구소련을 “타락한 노동자 국가”로 보다가 나중에는 “관료집산주의체제”로, 다시 “타락한 노동자 국가”론으로 돌아가는 왕범서의 견해가 그렇다.

사실 이것은 왕범서 개인이나 중국 트로츠키주의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트로츠키 자신이 죽을 때까지 이 “타락한 노동자 국가”론을 고수했다. 즉, 트로츠키는 스탈린을 비롯한 소련 국가 관료들을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보지 않았다. 고작해야 노동자 계급에 기생하는 관료 집단일 뿐이므로 그들의 지배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며, 곧 과거의 지배계급인 부르주아들이 반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트로츠키 사후에 제4인터내셔널 경향의 ‘정통’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이 책의 뒷부분은 바로 이러한 혼란과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

트로츠키의 “타락한 노동자 국가”론은 틀렸다(나는 이 위대한 혁명가가 자신이 세운 국가가 이미 자본주의로 변질됐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트로츠키는 사유재산이 부활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소련을 여전히 ‘사회주의’로 봤지만, 국유화는 사회주의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생산에 대한 노동자 통제가 아니라, 국가 관료들이 생산 계획을 관료적으로 수립하고 통제한다는 점에서 구 소련은 ‘사회주의’는커녕 오히려 박정희 치하의 국가자본주의와 더 닮았다.

구 소련과 동유럽, 중국, 북한, 쿠바 등이 모두 국가자본주의라는 분석은 구 소련과 동유럽의 몰락 과정에서 잘 입증됐다. ‘사회주의 노동자 국가’가 시장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저항하지 않았고, 어떠한 부르주아 반혁명도 일어나지 않았다. 구 사회의 지배자였던 국가 관료들이 다음 사회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적 자본가로 변신했다.


이러한 잘못된 전제 때문에 이 밖에도 몇 가지―트로츠키의 영구혁명론에 대한 교조적 해석―약점들이 있지만, 책을 읽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왕범서와 중국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좌파적 관점을 유지했고 이론을 발전시켰다. 예컨대 2차세계대전에서 소련 정부와 중국의 항일세력들이 연합군측에 가담했는데, 중국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혼란 속에서도 (미-영 제국주의 군대가 포함돼 있다는 이유로) 연합군을 지지하기를 거부한다. 트로츠키주의자들조차 소련을 “노동자 국가”로 봤던 시기였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울 정도로 건강한 태도다.

무엇보다 왕범서와 그의 동료들의 평생에 걸친 투쟁은 헛되지 않았다. “중국의 지식청년과 공-농대중의 반스탈린주의가 폭발하는 시기는 더 빠르게 다가올 것이며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폭발할 것”이라고 했던 왕범서의 예상은 옳았다. 1968년 서유럽에서 일어난 혁명의 여파로 (왜곡된 형태이지만) 중국에서도 문화혁명이 일어난다. 모택동은 아래로부터의 불만을 다스리고 정치적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문화혁명을 적당히 이용하려 했으나, 운동이 ‘사상의 자유’를 제기하는 등 갈수록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자 서둘러 사태를 수습했다.

무엇보다 1989년에 일어난 천안문항쟁은 왕범서의 기대가 “제멋대로의 희망”이 아님을 보여 줬다. 왕범서는 2002년까지 살았으므로 이 항쟁을 보고 기뻐했을 것이다.

비록 항쟁은 무참하게 짓밟혔으며, 중국 공산당은 이때부터 시장자본주의로 이동했지만, 최근 박노자 씨가 여러 차례 지적하듯이 중국에서 “불만은 부글부글 끓고 있으며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태”다.

물론 새로운 투쟁이 “중국의 제4인터내셔널 분자들과 연합해서 모든 반스탈린주의운동을 이끌어 새로운 반관료주의적 혁명을 완성할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왕범서와 그의 동료들을 포함한 국제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지난한 투쟁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스탈린에 의해 “제국주의의 첩자”라고 터무니없이 공격당했던 트로츠키주의 운동은 구소련 몰락 후 기성 좌파들이 대부분 우파로 투항하거나 혼란에 빠진 상황에서 오히려 극좌파의 주도적 세력으로 떠올랐다. 예컨대, 유럽의 가장 강력한 극좌파 조직 세 군데―영국의 SWP, 프랑스의 LCR, 이탈리아의 리폰다찌오네―중 두 군데가 트로츠키주의를 받아들이고 있다.

중국혁명과 세계 혁명운동사의 다양한 논쟁들을 다루고 있다 보니, 중국 현대사, 러시아 혁명과 반혁명, 스탈린주의와 트로츠키주의 등에 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책을 읽기가 의외로 어려울 수 있다(그런 점에서 ≪천안문으로 가는 길≫(찰리 호어, 책갈피)를 함께 읽으면 좋다). 그럼에도 이 늙은 혁명가의 회고는 매우 감동적이다. 글을 쓰면서 허세를 부리지 않고 시종일관 솔직한 태도를 유지한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 꼭 읽어 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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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세계사
크리스 하먼 지음, 천경록 옮김 / 책갈피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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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세계사'를 읽고

아침과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가을이다. 하늘이 파랗고 흰 구름 떠있는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다. 나는 이렇게 맑은 가을 하늘을 보면 마음이 환해지면서 기쁨이 절로 피어난다. 살아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이렇게 눈이 시리도록 높고 푸른 하늘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 한쪽이 싸하게 아파 온다. 이런 맑은 날에도 지구 어느 곳에서는 어른들 돈 욕심에 맑고 밝게 자라야 할 아이들이 아파하며 죽어 갈 것이다.
얼마 전 미국 남부 도시에 큰비와 큰바람으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신문에서는 이 사실을 며칠 동안 중요 사건으로 알렸다. 그런데 지금 지구에는 물을 못 먹어 죽는 아이들이 하루에 5천 명이 넘고 배고픔, 어른들이 벌인 전쟁, 질병으로 죽는 아이들까지 더하면 하루에 3만 명이 넘는 아이들이 죽고 있어도 언론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다.
비행기 사고로 3백 명이 죽으면 그날 신문 머리 기사로 실리지만 5살 이하 아이들이 비행기 100대 분량으로 오늘도 죽고 어제도 죽었고 내일도 죽어 가는데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렇게 죽어 가는 아이들이 모두 가난한 사람들 자식이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민중의 세계사'를 읽고 나서 마음이 아팠다. 사람이 살아오면서 잘못된 것은 다시 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돈을 벌기 위해, 권력을 갖기 위해, 자신들이 믿는 신을 남들에게 강제로 믿게 하기 위해, 명예를 높이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잘못 뿌리내린 욕망을 더 채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삶을 살아왔다.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한 곳에 머물러 산 것은 수천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서로 다투는 삶을 살았다. 그 전에 살던 사람들은 자연에서 나는 먹을거리를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살았지만 서로를 아끼고 보듬는 삶을 살았다. 수 만년 동안 사람들은 살아 있는 것을 섬기고 서로 도우면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살았다.
그런데 한 곳에 머물러 살면서 먹을거리를 모아 두게 되고 먹을거리를 모아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힘을 갖게 되면서 사람들끼리 뺏고 뺏기는 다툼이 일어났다. 돌을 가지고 산 사람들은 청동기를 가진 사람들을 이길 수 없었고 청동기를 가진 사람들은 철로 만든 무기를 가진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지금 나라들은 사람뿐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을 다 죽이는 무기를 서로 많이 갖기 위해 애쓴다. 이런 속에서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제 목숨대로 살지 못하고 죽어 간다. 그리고 사람들이 편하게 살겠다는 생각에 지구 목숨이 짧아지고 있다. 지구는 지금껏 50억 년을 살았고 앞으로 50억 년 이상 더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지금처럼 지구를 못살게 한다면 그 목숨이 얼마나 갈지 아무도 모른다.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다. 사람이 아프면 열이 나고 으슬으슬 춥듯이 지구도 열이 나면서 추워지는 빙하기가 다시 오려 한다. 그렇게 되면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사라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지금껏 기계 문명을 만들며 살아 있는 것을 마구 죽이는 삶을 살았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먹을거리를 만드는 땅과 물, 공기를 맑게 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그 일을 앞에서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말없이 궂은일을 하는 노동자, 땅을 일구는 농사꾼들이 아닌가.
갈수록 세상은 배부른 사람들이 배고픈 사람들을 못살게 하고 있다. 사람 목숨뿐 아니라 지구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이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바로 올곧게 사는 사람들이다. 땀 흘려 일하는 착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야 한다. 사람도 살리고 지구도 살리는 길을 찾아야 한다. '민중의 세계사'는 그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2005년 9월 12일 월요일 어둠이 걷고 따뜻한 아침 햇살이 내릴 때 풀무질 일꾼 은종복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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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존 몰리뉴 지음, 최일붕 옮김 / 책갈피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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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당>(북막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중적 혁명정당 건설'이라는 무거워 보이는 정치 주제를 그토록 재미있고 명쾌하게 주장한 저자의 글쓰기에 반했을 것이다. 뒤이어 같은 저자의 <렘브란트와 혁명>(책갈피)까지 읽고 나면 좀 놀랍다. 딱딱한 인상의 마르크스주의자가 인간 사회와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 준다.

이 책들을 쓴 사람은 영국 포츠머스 대학 예술사와 철학 교수이자 사회주의노동자당(SWP) 활동가인 존 몰리뉴다. 한 마디로 행동하는 지식인이다. 기쁘게도 그의 책 두 권이 새로 출간됐다.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는 존 몰리뉴가 주간신문 <소셜리스트 워커>(Socialist Worker)에 연재한 칼럼들을 묶은 훌륭한 마르크스주의 입문서다.

이 책의 장점을 알고 싶으면 목차를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인간 본성이 바뀔 수 있을까?"

"사회주의는 사람들을 다 똑같이 만들어 버리지 않을까?"

"사회주의가 되면 민주주의는 없어지지 않을까?"

"무조건적 그러나 비판적 지지란 무엇일까?"

"어쨌든 세계 동시 혁명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사회주의에 대해 누구나 한 번쯤 품어 봤음직한 의문과 토론거리들을 다루고 있다.

가끔 보면 '마르크스주의'를 자처하는 학자들은 일부러 구름 잡는 듯한 말을 하고 자기들끼리만 알아 듣는 언어를 사용한다. 상투적 통념에 지나지 않는 주장을 일부러 어려운 일어식 한자어로 치장하고, 단 몇 쪽의 문서로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을 수십 쪽의 논문, 심지어 수백 쪽의 책으로 내놓곤 한다.

존 몰리뉴는 교수이지만 결코 어렵게 말하지 않는다. 주장이 분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재미있는 비유들이 많다. 예컨대, 저자는 자본주의 사회의 "법과 질서"가 중립적이기는커녕,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옹호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묻는다.

"법이 자본주의 사회의 소유 관계들을 반영하고 나아가 그것을 강화해 주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 보라. …… 만일 법관들이 한밤에 혼자 다니는 여자가 강간을 당해도 법이 보호해 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듯이, 대낮에 '롤스로이스' 같은 최고급차를 타고 거드름을 피우는 백만장자들이 강도를 당한다 해도 그것은 그들이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식의 판결을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이 책은 새 세대를 위한 훌륭한 마르크스주의 입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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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열흘
존 리드 지음, 서찬석 옮김 / 책갈피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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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 역사학자 A J P 테일러가 “혁명을 기록한 모든 책들 중에서 단연 최고”로 꼽은 이 유명한 책을 나는 최근에야 완독했다.

이 책의 최대 미덕 중 하나는 기자 특유의 생생한 묘사다. 존 리드는 혁명 러시아의 수도인 페트로그라드와 그 주변 도시들, 혁명의 두 번째 격전지였던 모스크바까지 곳곳을 누비며 이 책을 썼다. 열흘 간의 이야기는 마치 무협지라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레닌, 트로츠키 같은 볼셰비키 지도자들과 참호의 병사들, 공장 노동자들, 비참한 처지의 농민들까지 러시아 혁명의 수많은 주인공들이 이 책에 등장한다. 또한 존 리드는 미국인 기자라는 신분을 이용해 귀족, 반혁명 장군들의 노골적 속내에서부터 케렌스키, 사회혁명당, 멘셰비키 같은 ‘온건’ 사회주의자들의 은밀한 고백까지 담아낸다.

쿠데타?

역사를 가르친다는 수많은 교수들은 1917년 10월 혁명이 “볼셰비키의 쿠데타였다”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일부 좌파들 - 특히 네그리 같은 자율주의자들 - 도 이런 가정을 공유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좀 다르다. (기자답게 존 리드는 이 책에서 자기 주장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이런 주장들을 반박하는 데 유용한 역사적 사실들을 제공한다. 아마도 누군가 이 책을 읽고도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다면, 그 자신의 지적 타락을 고백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볼셰비키가 주도한 10월의 무장 봉기는 분명히 노동자, 병사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 이 점은 봉기 직후, 존 리드가 인터뷰한 사회혁명당원의 고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당시 사회혁명당은 볼셰비키에 반대해 반혁명을 도모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현재 대중이 따르고 있는 것은 볼세비키죠. 우리에게는 추종자가 없습니다.…우리에게는 동원할 만한 병사들이 없어요.”

존 리드의 표현에 따르면, 볼셰비키당은 “대중 의지의 궁극적, 정치적 표현”이었다. 무장봉기를 결정하는 과정은 인위적이지도, 그렇다고 매끄럽지도 않았다. 봉기 보름 전에 열린 볼셰비키 중앙위원회에 대한 묘사는 매우 충격적이다.

“지식인들 중에는 오직 레닌과 트로츠키만이 봉기를 지지했다.…투표 결과, 봉기를 감행하자는 주장은 일단 기각됐다! 그때 한 노동자가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떨고 있었다.…‘페트로그라드 노동자를 대표해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우리는 봉기에 찬성합니다. 여러분은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소비에트가 파괴되는 것을 보고만 있겠다면, 우리와의 관계는 끝날 것입니다!’ 몇몇 병사들이 그에 합세했다.…그래서 투표가 다시 이뤄졌고, 결국 무장 봉기를 감행하자는 주장이 통과됐다.”

존 리드의 묘사에 따르면, 10월 혁명은 러시아 노동자, 병사 들의 민주적 결정이었다. 혁명에 참여할 것인지 말 것인지 논쟁을 벌이는 한 장갑차 부대 병사들에 대한 묘사는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다.

“나는 이 병사들처럼 사태를 이해하고 결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이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으로 연설을 경청했다. 병사들은 고민하며 눈썹을 찌푸렸고, 이마에는 땀이 흘렀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눈과 서사시에 등장하는 전사의 얼굴을 한 위대한 거인들처럼 보였다.…넓디넓은 러시아 각지에서 수많은 노동자, 병사, 수병 들이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고 현명하게 결정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과 마침내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로 결의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 바로 그것이 러시아 혁명이었다.”

스탈린

이 책은 1980년대에 ≪세계를 뒤흔든 10일≫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처음 출간된 바 있다. 당시 군사 독재 정권의 검열 때문에 생략됐던 내용들이 이번에 완전 복원됐다. 1백 페이지 분량의 부록과 후주가 되살아났고, 12장 농민대회 부분이 추가됐다. 이 밖에도 곳곳에서 생략됐던 부분을 복원해 페이지 수가 거의 두 배로 늘었다.

그런데, 이 책을 두려워한 것은 단지 우리나라 군사 독재 정권만이 아니었다. 레닌이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기꺼이 추천”한 이 책은 스탈린 치하 소련에서도 금서가 됐다! (실제 혁명 과정에서 별로 한게 없는) 스탈린 자신이 등장하지 않아서였을까?

누구나 알고 있듯이, 러시아 혁명은 결국 실패해 끔찍한 독재로 끝났다. 그러나 그럼에도 평가절하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이 책은 감동적이다. 즉, 러시아 혁명은 "고통 받는 민중을 이끌고 역사에 뛰어든, 또 민중의 광범하고 소박한 희망에 모든 것을 내건, 인류가 시도한 가장 경이로운 모험"이었다는 사실이다(존 리드의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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