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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사생활 - 세기의 남성을 사랑에 빠뜨린 결정적 비밀들
김정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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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노래했다,
"이토록 격렬하고, 이토록 연약하고, 이토록 부드럽고, 이토록 망하는" 이 사랑,
"이토록 아름다운 이 사랑, 이 토록 행복하고, 이토록 즐겁고, "
그러나 "기억처럼 잔인하게, 회한처럼 어리석게, 대리석처럼 싸늘하게, 대낮처럼 아름답게
미소지으며 우리를 보는" 이 사랑. (자크 프레베르, "이 사랑")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 중 가장 격렬하고, 깊고, 내밀하며 통제되지 않는 것은 아마
'사랑'이란 감정이 아닐까 한다.
그렇기에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은 때로 인생을, 나라를, 역사를 뒤흔들어놓을 만큼
강렬한 '사건'이 되기도 한다.
"연애의 사생활"은 이렇듯 세기의 사건으로 기억될 만한 러브스토리와 그 안에 숨은
내밀한 속살을 들려주는 책이다.  

슨과 에드워드, 샤 자한과 뭄타스 마할, 히라쓰카 라이초와 오쿠무라, 보니와 클라이드, 칼로와 디에고, 메리와 보스웰 백작, 비비안 리와 로렌스, 다이애나비와 찰스, 레논과 요코 등의 여덟가지 사랑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영국 왕좌를 버리게 한 에드워드의 사랑, 역사에 남을 아름다운 타지마할을 세운 샤 자한의 사랑, 보수적 사회를 뒤흔들 자살스캔들을 터트린 하라쓰카의 사랑...
하나하나 짚어나가다 보면, 그토록이나 비합리적이고 설명되어질 수 없고 순간적인 것이
사랑인가 싶다가도 그토록 숭고하며 어떤 설명도 필요로 하지 않고 지순하게 영원한 것이
사랑인가 싶기도 하다.

그것이 절망인들 혹은 구원인들, 그것이 슬픔인들 혹은 행복인 듯, 무엇인들 어떠하랴.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 같고,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요,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린도전서 13장)"하였으니,
사랑이 없다면 인간의 위대함도 삶의 찬란함도 그 빛을 잃어버릴 듯 하다.  

그러한 '사랑'이야기를 '연애의 사생활'은 주인공들의 만남과 매혹과 갈등과 헤어짐까지,
한발한발 따라가며 그 이면에 숨은 심리적 요인까지 그려내보고 있다.
이름으로만 들어보았던 유명인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시대적 상황이나 그들의 스캔들이 역사에 끼친 영향까지 재미있게 훑어볼 수 있다.
가볍고 즐겁게, 그러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희로애락의 역사를 함께 맛보며 읽을 수 있는 인상적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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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처럼 꿈꾸고 게이츠처럼 이뤄라
이창훈 지음 / 머니플러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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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계속된다

영웅은 태어나는가 나타나는가.
천재는 타고나는가 길러지는가.
세상을 움직이는 리더들은 어떻게 성장하고, 그 리더십의 핵심은 무엇일까.
무한경쟁의 이 시대에 대다수 범인들은 궁금할 것이다. 이러한 궁금함에 답하여
세기적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두 명사의 라이프 스토리와 성공 히스토리를
조명, 분석한 것이 <잡스처럼 꿈꾸고 게이츠처럼 이뤄라>이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게이츠와 애플 신화를 창조한 잡스, 이 두 인물은 이제
인류 문명사를 바꾼 천재이자 혁명가이자 탁월한 리더라는데 이견이 없을 위치를
공고히 하고 있고 그 명성만큼이나 라이프스토리도 개성 넘치고 인상적이다.
때문에 이미 세계 서점의 가판대에는 이 두 명사에 대한 많은 책들이 넘쳐났었다.
하지만 이들의 신화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아이폰의 뒤늦은 도입으로 또 한번의 혁신적 변화를
체험하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그리고 애플의 iPad출시로 마이크로소프토와 애플의
또 한 번의 격전이 예상되는 이 시점에서, 잡스와 게이츠는 여전히,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핫hot한 아이콘이며, 이들을 한 프레임에 넣고 비교`대조하며 조명해본다는 것은
몹시 흥미로운 일이 분명하다. 특히 이들을 함께 경쟁하고 성장해온 “동갑내기 라이벌” 의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는 점에서 <잡스처럼 꿈꾸고...>는 재미있고 신선하다.



한송이 들꽃의 개화에도 온 우주가 필요하다

바퀴벌레 약을 마셨던 과잉활동아 잡스와 자폐증이 의심되었던 게이츠.
두 인물 모두 어린시절에는 형편없는 성적에 부모님들을 머리 아프게 하는
말썽꾸러기였다는 사실이 재밌다. 잡스는 규칙적인 학교생활을 지옥같이 여겼고,
게이츠의 아버지는 “남들보다 조숙하거나 특별하지도 않았고, 또한 뛰어나게 똑똑한 것
같지도 않았으며, 그 당시 우리는 그 애가 말썽꾸러기라고만 생각했다”고 술회한다.
싹트지 않은 한 알의 씨앗에서 광활한 그늘을 내릴 거목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면, 충분한 자양분과 돌봄이 없다면 한 알의 씨앗이 어떻게
거대한 고목으로 자라나겠는가. 한낱 한 송이 들꽃이 피어나기 위해서도 비와 바람과 햇살,
온 우주의 힘이 똑같이 필요하다. 하물며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이해하고 지원해주었던 부모와 훌륭한 멘토가 없었다면 잡스와 게이츠는
오늘날의 혁신적 창조자가 아니라 산만하거나 자폐적이 사회 부적응자로 남았을 것이다.
이들의 성장기를 읽으면서 재능을 타고나는 것보다 이를 발현시키는 것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실감했다.
한 존재가 위대해지기란 ‘신이 주신 재능’ 같은 문제보다 조금 더 복잡한 사건인 것이다. 


 
꿈꾸고 이루는 삶 vs 행복한 삶

그렇다면, 기업가로서, 조직의 리더로서 잡스와 게이츠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Beyond Box!”
애플 경영에서 잡스가 외쳤던 구호처럼, 게이츠와 잡스는 상식의 틀을 깨부수는 독특한 창의성으로 앞서나간다.
하지만 기업가에게라면 이에 더해 보다 뛰어난 재능과 냉철한 판단력, 과감한 실행력 등의
능력과 리더십이 요구된다.
우리는 게이츠가 선보인 IBM과의 협상이나 훗날의 이기적인 처신에서, 잡스가 넥스트와 픽사를
창업하는 과정 등에서 이 모든 자질들을 목격할 수 있다.
리더는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게이츠가 모교 하버드 대학을 32년만에 졸업하면서
했던 졸업연설은 이러한 부분들을 게이츠 역시 얼마나 확고히 인식하고 있었는지, 그래서
그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Start sooner, Carry on longer!(남들보다 한발 앞서 출발하고, 더 오랫동안 노력을 지속하라)”

그러나 이는 몹시도 고통스러운 일이고, 때로는 혹독하고 고독한 길이기도 하다.
잡스와 애플을 공동창업했던 워즈니악은 잡스를 염두에 두고
“모든 것을 통제하며 사는 사람보다는 웃으며 사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워즈니악의 이 말은 잡스와 게이츠가 전해주는 시사점 그 이상의 또 하나의 가치를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이루면서 사는 삶과 누리면서 사는 삶, 과연 어느 한쪽을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 평범한 대다수의 범인들은 언제나 늘 궁금하다.
뛰어난 천재들의 재능은 어떻게 발현되는지, 기업가 마인드와 리더십의 요체는 과연 무엇인지.
무엇을 꿈꾸고 얼마나 이루어야 하는지.
하지만 1인자가 되기까지의 도전과 혁신과 통제의 혹독함과 부단함을 생각하면,
워즈니악의 말처럼 편히 웃으며 사는 행복한 사람이고 싶은 충동도 불현듯 지울 수 없다.
기술과 과학이 첨예해질 수록 인간 그 자체의 부가가치가 점점 낮아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기술적 진보가 계속되는 한 점차 대다수의 범인들은 갈 곳이 없어질 것이고 실업문제 역시
피해갈 수 없는 화두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앞으로도 여전히 잡스나 게이츠 같은 탁월한, 그리고 타고난 1인자들의 히스토리를 파헤치고 분석하고자 할 것이다.
하지만 이 흥미진진한 도전과 성취를 다룬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역설적으로 마음에 남는 것은, 
무엇을 위해 우리는 늘 이토록 숨차게 달리고, 1인자들의 성공신화와 그 비밀에 목마를까 하는 짧은 자조이다.
게이츠나 잡스의 무한한 꿈, 도전, 혁신만큼이나 뒤에서 묵묵히 이를 뒷받침해주었던, 그리고
종국에는 ‘따뜻한 천재’로 기억되는 워즈니악의 소박한 행복론을 함께 마음에 기억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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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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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3류를 위한 작곡가, 박민규

 

김연수, 김애란과 함께 우리 문단에서 가장 기대되는 젊은 작가 중 하나는 박민규다.
소재든 형식이든 분명 창작물에는 시대적 유행이나 코드란 게 있는 법이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이란 것이 우리에게 위로이자 기쁨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 있다.  바로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고 현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박민규가 참으로 좋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그가 어느 TV프로그램에 나와 수줍게 다짐했던 말을 분명히 기억한다.

"세상의 모든 3류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다"

라고.(이런 뉘앙스였다)
실제로 박민규는 카스테라에서도 그랬고 핑퐁에서도 그랬고 삼미슈퍼스타즈에서도,
지구영웅전설에서도, 한결같이 우리 시대의 루저들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그 찌질함에 대해, 그러나 지독히 인간적인 어투로, 그들이 찌질이로 남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지극히 날카로운 시선으로 응시하며.
우리 안에 어쩔 수 없는 못과 모아이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세계가 계속 1738345792629921:1738345792629920 어김없는 듀스포인트인 한,
박민규는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작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박민규가 사랑 이야기를 들고 나왔단다.    

그것은 내게 너무나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렸다.
마치 중국집 주방장이 피자를 만들었다는 소문처럼.
내가 아는 한 박민규는 전혀 로맨틱하지 않은 작가였다.  그가 사랑이야기를 쓸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센티멘털한 제목도 불안을 가중시켰다.
일독 후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은 글이었다.
여전히 그는 내게 좋은 작가이고, 세상의 모든 루저가 그러하듯 우리에게 존중받을 만한
작가이다. 
 


  "사랑은 OOO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무릇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여자라면 응당 어느 한구석의 매력은 갖추었을 법하건만, 
<죽은 왕녀...>의 여주인공은 얼마나 못났냐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으로 못났다. 
그렇게 못난 여자가 어떻게 허우대 번듯한 한 남자를 사랑에 빠뜨리는가. 
못난 여자에 대한 연민, 혹은 이해에서 시작된 이 남자의 사랑의 이면에는 배우인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못생긴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남자는 수도 없이 고민한다. 못나도 너무 못난 그녀, 하지만 신경 쓰이는 이 감정은  연민일까 동정일까? 이런 게 과연 사랑인가? 
결국 감정의 정체가 무엇이든 그 사랑은 그녀를 '이해'한다는 것에서 오는 깊은 동조일 것이다. 그녀가 세상으로부터 겪었을 수모,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  그로 인해 가꾸어진 내면,  그럼에도 감내해야 하는 현실.   
나는 사랑은 "환타지"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갖는 아름다움에 대한 환상, 그는 이러할 것이라는 기대, 그가 이렇게 해줄 거라는 바램.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작가 박민규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랑은 상상력이야. 사랑이 당대의 현실이라고 생각해? 천만의 말씀이지.
 누군가를 위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그게 현실이라면 이곳은 천국이야. 개나 소나 수첩에 적어다니는 고린도 전서를 봐.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그 짧은 문장에는 인간이 감내해야 할 모든 <손해>가 들어 있어.
애당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너무나 아름다운 상상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역시 어쩌면 우리의 상상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환상의 형태이든 이해의 형태이든 결국은 사랑에는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 상상은 사실 여부를 떠나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시한 우리를, 시시한 우리 하루를 얼마나 무궁하게 만들어주는가.
구원이란 어쩌면 그렇게 오는 건지도 모른다고, 이 책을 읽고 생각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반드시 책의 마지막 장까지 읽어야 하는 책이다.
절대 먼저 읽어서도 안된다.
처음부터 마지막장까지 읽어야 한다. 일종의 디렉터스 컷처럼 박민규는 소설의 말미에
커다란 반전을 숨긴 라이터스 컷(Writer's cut)을 배치했다.
모든 것이 꿈인 듯도 아닌 듯도, 그 사랑이 진짜인 듯도 아닌듯도 한 것이,
이거 작가의 반격인가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냉정한 현실감각을 잃지 않는 선에서 작가 박민규가
우리에게 주려한 최대한의 위로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 식으로라도 보듬어안아주고 싶은 것. 박민규가 좋은 작가인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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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제왕의 생애 (반양장)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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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 것인가, 나비가 나의 꿈을 꾸는 것인가..."
나비의 날갯짓 활개치던 꿈에서 깬 장자가 읊조렸었다. 
꿈에서는 꿈을 꾸고 있음을 알지 못하다가 꿈에서 깨었을 대 비로소 그것이 꿈임을 깨닫게 되듯,
생이란 어쩌면 그렇게도 아련하고, 흔적없이 흩어지는 모래알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 무상함의 깨달음을 얻었을 때 진정한 자유로움으로 삶을 대면하는 경지가 열리는 것이 아니겠나.

<나, 제왕의 생애(我的帝王生涯)>는 ‘20세기 중국문학 베스트 100’에 선정된 바 있는 작가 쑤퉁의 장편소설이다.
황권을 두고 벌어지는 궁중의 암투 아래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제왕의 자리에 오르게 된 열네 살 소년 단백을
주인공으로 고대의 역사와 문화, 궁정의 사건과 비빈들, 옛 악기와 음악, 강호를 떠도는 예인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해 쑤퉁은, 
"나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인생이란 불과 물, 독과 꿀처럼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것들이 
한데 어우러진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역사소설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소설 속의 아름다운 여인들과 궁정의 음모는 모두, 그저 비 오는 밤에 놀라 깨어났을 때의 
꿈결 같은 것이다. 소설 속의 재난과 살육 또한 내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품고 있는 
걱정과 두려움, 그것에 불과하다. 나는 내가 꿈에 기대어 글을 쓰고, 꿈에 기대어 살았을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 제왕의 생애>는 바로 그 꿈속의 꿈이다." 라고 했다.

 
꿈속의 꿈.
아무리 아름다워도 깨고 나면 잡을 수 없고, 아무리 애달퍼도 눈 뜨면 흔적도 없다.
그러한 꿈속의 꿈이니 그 얼마나 아련한가.
열네 살 왕위에 올라 허울뿐인 치욕스런 권력을 한없이 누리다가
제위에서 쫓겨나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되찾고 광대로 변신, '줄타기의 왕'으로 명성을 얻는 단백의 일생은
삶에서 우리가 쫓는 권력, 사랑, 부와 명예가 얼마나 허망한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들을 양 어깨에 걸친 우리의 모습이 과연 얼만큼 진정한 자신의 모습인지에 대해서도 되묻는다.
단백은 왕의 아들로, 왕의 형제로 태어나 제왕의 권위를 누렸으나 기실 그는 왕이 아니었고
왕이고자 하지도 않았으며, 왕의 그릇으로 태어나지도 못했다.
그러나 철갑같은 그 버거운 외피는 일생 그를 고통스럽게 조여온다.

"나는 금관과 용포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물건인지를 깨달았다.
이 짧은 시간 동안의 옷 바꾸기 놀이를 통해 나는 내가 그 제왕의 표지에
얼마나 많은 미련을 품고 있는지 깨달았다. 나는 짚더미 위에 엎드려
연랑이 말을 타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의 당혹스럽고 우울한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알 수 없었다. 나는 문득 내 섭왕의 표지가 다른 사람의 몸에도 잘 어울리며,
심지어 더욱 위풍당당해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환관의 누런 옷을 입고 있으면 나는 어린 내시에 불과했다. 금관과 용포를 걸치고 있어야만 비로소 제왕이었다.
그것은 아주 무시무시한 경험이었다."


 
벗어버리고 싶지만 벗을 수 없는 외피를 피부처럼 두른 삶.
어린아이의 몸으로 제왕이 된 운명은 행복 아닌 불행이지만 벗어날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무겁지만 내려놓을 수 없는 짐 같은 것이 인생인 것이다.
호화로운 구중궁궐에서 귀신 꿈에 시달리던 단백은 이복형의 반역으로 궁에서 쫓겨나며 본래 꿈꾸던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다.
제목 '나, 제왕의 생애'에서 의미하는 제왕이란 섭나라의 '허수아비 왕'이었던 단백이 아니라,
광대로 명성을 날린 '줄타기의 왕' 단백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짧고, 고풍스럽고, 음울하며, 아름다운 이 소설은 마치 한편의 흑백영화처럼 아련하게 끝이 난다.
잔잔히 미소로 지을 수 있는 해피엔딩으로.
그러나 그 온건한 끝은 불안하고 괴기스러운 작품의 전반부만큼이나 덧없고 흐릿하다.
작가의 말처럼 어차피 이 책 역시 꿈속의 꿈이기에.
책장을 덮고 나니 이 한편의 글이 베겟머리 적신 눈물 자욱처럼 그저 다 지난 뒤 그랬구나, 비로소
깨닫게 하는 하나의 흔적과도 같이 아련하다. 마르고 나면 그 역시 흔적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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