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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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3류를 위한 작곡가, 박민규

 

김연수, 김애란과 함께 우리 문단에서 가장 기대되는 젊은 작가 중 하나는 박민규다.
소재든 형식이든 분명 창작물에는 시대적 유행이나 코드란 게 있는 법이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문학'이란 것이 우리에게 위로이자 기쁨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 있다.  바로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이고 현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박민규가 참으로 좋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그가 어느 TV프로그램에 나와 수줍게 다짐했던 말을 분명히 기억한다.

"세상의 모든 3류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다"

라고.(이런 뉘앙스였다)
실제로 박민규는 카스테라에서도 그랬고 핑퐁에서도 그랬고 삼미슈퍼스타즈에서도,
지구영웅전설에서도, 한결같이 우리 시대의 루저들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그 찌질함에 대해, 그러나 지독히 인간적인 어투로, 그들이 찌질이로 남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지극히 날카로운 시선으로 응시하며.
우리 안에 어쩔 수 없는 못과 모아이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세계가 계속 1738345792629921:1738345792629920 어김없는 듀스포인트인 한,
박민규는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작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박민규가 사랑 이야기를 들고 나왔단다.    

그것은 내게 너무나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렸다.
마치 중국집 주방장이 피자를 만들었다는 소문처럼.
내가 아는 한 박민규는 전혀 로맨틱하지 않은 작가였다.  그가 사랑이야기를 쓸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게다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센티멘털한 제목도 불안을 가중시켰다.
일독 후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은 글이었다.
여전히 그는 내게 좋은 작가이고, 세상의 모든 루저가 그러하듯 우리에게 존중받을 만한
작가이다. 
 


  "사랑은 OOO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무릇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여자라면 응당 어느 한구석의 매력은 갖추었을 법하건만, 
<죽은 왕녀...>의 여주인공은 얼마나 못났냐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으로 못났다. 
그렇게 못난 여자가 어떻게 허우대 번듯한 한 남자를 사랑에 빠뜨리는가. 
못난 여자에 대한 연민, 혹은 이해에서 시작된 이 남자의 사랑의 이면에는 배우인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못생긴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남자는 수도 없이 고민한다. 못나도 너무 못난 그녀, 하지만 신경 쓰이는 이 감정은  연민일까 동정일까? 이런 게 과연 사랑인가? 
결국 감정의 정체가 무엇이든 그 사랑은 그녀를 '이해'한다는 것에서 오는 깊은 동조일 것이다. 그녀가 세상으로부터 겪었을 수모,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  그로 인해 가꾸어진 내면,  그럼에도 감내해야 하는 현실.   
나는 사랑은 "환타지"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갖는 아름다움에 대한 환상, 그는 이러할 것이라는 기대, 그가 이렇게 해줄 거라는 바램. 이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작가 박민규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랑은 상상력이야. 사랑이 당대의 현실이라고 생각해? 천만의 말씀이지.
 누군가를 위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그게 현실이라면 이곳은 천국이야. 개나 소나 수첩에 적어다니는 고린도 전서를 봐.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그 짧은 문장에는 인간이 감내해야 할 모든 <손해>가 들어 있어.
애당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너무나 아름다운 상상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역시 어쩌면 우리의 상상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환상의 형태이든 이해의 형태이든 결국은 사랑에는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 상상은 사실 여부를 떠나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시한 우리를, 시시한 우리 하루를 얼마나 무궁하게 만들어주는가.
구원이란 어쩌면 그렇게 오는 건지도 모른다고, 이 책을 읽고 생각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반드시 책의 마지막 장까지 읽어야 하는 책이다.
절대 먼저 읽어서도 안된다.
처음부터 마지막장까지 읽어야 한다. 일종의 디렉터스 컷처럼 박민규는 소설의 말미에
커다란 반전을 숨긴 라이터스 컷(Writer's cut)을 배치했다.
모든 것이 꿈인 듯도 아닌 듯도, 그 사랑이 진짜인 듯도 아닌듯도 한 것이,
이거 작가의 반격인가 싶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냉정한 현실감각을 잃지 않는 선에서 작가 박민규가
우리에게 주려한 최대한의 위로라고 생각한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 식으로라도 보듬어안아주고 싶은 것. 박민규가 좋은 작가인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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