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날, 식물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최근에 읽은 창비의 #영어덜트 소설들은 정말 이상한 책들이 많다. 여기서 '이상하다'는 뜻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은 뜻 중 두번째(2.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지식과는 달리 별나거나 색다르다.)를 뜻하는데 어디서 이런 소재들이 나왔는지 정말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신박한 내용의 책들이 많다. 박소영 작가의 『스노볼』, 김나경 작가의 『1931 흡혈마전』 그리고 이번에 읽은 천선란 작가의 『나인』까지. 창비에서 모집한 #소설Y클럽1기 에 운좋게 선정되어 받아본 '나인'은 대본집 형태로 나에게 찾아왔다. 마치 내가 영화나 드라마에 투입된 인원인 것처럼 흥분과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평범한 고등학생 '나인'은 이모와 둘이 살고 있다. 식물을 좋아하는 이모는 사료 공장이었으나 철거되고 허허벌판이 된 땅을 사서 식물을 심고 키워 '브로멜리아드' 라는 화원을 개업했다. '나인'은 절친 '미래', '현재' 와 함께 학교 생활도 함께 하고 서로의 집도 드다들고 화원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며 평온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나인'은 어느날 식물들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심지어 손톱에서 싹이 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갖는 '나인'앞에 나타난 아이 '승택' 그는 그녀에게 그들 둘이 '누브족'이라는 외계인이라고 밝힌다. 외계인이라는 사실에 혼란스러운 '나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도 전에 '나인'은 2년 전 동네에서 사라진 '박원우'의 실종 사건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다. 한때 '박원우'의 절친이었던 '권도현'의 의문스러운 행동들을 바탕으로 하나씩  밝혀지는 진실.

  '박원우' 실종 사건의 진실은 사실 허를 찌를만큼의 것은 아니다. 책을 읽다보면 누구나 예상 가능한 진실이고  충분히 있을 법한 그 진실이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아이들의 잘못은 결국 어른의 책임이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 것인가.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닌데, 왜 껍데기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인지 왜 그 알맹이가 썩어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는지. 그런 사람들과 다르다고 하지만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애 하나를 이상하게 만들려고 어른들이 작정한 거구나."
미래의 말이 맞았다. 이건 아이인 적 없다는 듯이 구는 어른들이, 단 한 번도 동화를 믿어 본 적 없다고 착각하는 어른들이, 환상을 꿈꿔 본 적 없다고 믿는 우매한 어른들이 만든 끔찍한 이야기다. (353)
 
청소년들이 주인공인 책들을 읽을때마다 각기 다른 것들을 느낀다. 『나인』에서는 타인을 보는 내 시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들은 타인에게 정말 쓸데없이 관심이 참 많다. 혼자 생각하는거야 어쩔수 없지만 자신이 생각한 것을 아무런 필터없이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은 해왔었다. 그러나 안타까워하는 말이  사실은 상대에게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안쓰럽다고 생각하며 보는 그 시선이 칼이 되어 날아갈수도 있음을 알지 못했다. 쓸데없이 동정하고 안쓰러워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내 눈에서 그런 표정이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었다. 

숨길 수 없는 표정들이 있다. 찰나에 나오는. 통제의 영역에 들지 못한 표정들. 나인은 살면서 몇 번 마주쳤다. 아니, 무수히 마주쳤다. 이모와 함께 산다는 말을 듣는 순간 그들이 지었던 숱한 표정이 전부 통제권 밖에 있었다. 어찌할 수 없는, 본능적인, 막을 수 없는. 하여간 그런 의미였다. 찰나의 표정이란 감정을 가장 진솔하게 비추는 호수의 수면 같은 것이다. 조그만 충격에도 금방 흩어지고 만다. 바람조차 불지 않는 한때 잠시 생겼다 사라지는 마법 같은 것이다. 그러니 원망할 수가 없다. 미워할 수도 없고. 어쩌겠는가. 안쓰럽다는 걸, 불쌍하다는 걸, 가엾다는 걸, 애잔하다는 걸. 때떄로 어떤 이들의 표정은 파도같이 잔잔하게 밀려오다 부서지고 흩어진다. (125)

  터무니없다고 느껴질 소재의 이 책. 처음 시작은 잘 쓰여진 SF소설이겠구나 였다. 그런데 읽을수록  '어쩌면 실제로 이런 일들이 일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정말 우리 지구에 '나인'처럼 식물의 말을 듣는 '누브족'이 있을지도 모르고 알에서 태어난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고. 날이 갈수록 피폐해지고 황폐해지는 지구인들의 마음을 '나인'처럼 아직은 마음 따뜻한 외계인들이 있어서 지구인들의 마음이 말랑해지도록 도와주면 좋겠다.

창비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르마타, 이탈리아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 유럽 배낭 여행을 꿈꿨다. 직장인이었기에 한달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 회사를 때려치고 나서 갈 요량으로 직장 동료와 함께 일정을 준비했었다. 아쉽게도 이러저러한 사정에 의해 유럽 여행은 떠나지 못했지만 [페르마타, 이탈리아]를 읽으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기대에 가득차서 이곳저곳 자료 조사를 하던 그떄가 떠올라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몽글해졌다.

이탈리아 여행을 소재로 한 책답게 이탈리아의 명소들이 책 곳곳에 등장한다. 누구나 알만한 유명 관광지에서부터 현지인들만 알 법한 장소까지 다양한 지역들이 등장한다. 유명 관광지는 가보지 않았어도 워낙 알려졌기에 쉽게 떠올릴 수 있었고 미처 알지 못했던 장소들을 검색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특히 스머프의 집처럼 생겼다는 알베로벨로 라는 도시의 유명 건축물 트룰로 돌집은 사진으로 보니 정말 어찌나 아기자기한지. 나중에 이탈리아 여행을 가게되면 꼭 방문하고 싶은 장소에 이름 올려버렸다. 사실 나를 위한 유럽여행은 진즉 포기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 마음이 달라졌다. 나도 아이들이 크고나면 이렇게 유럽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마음이 맞는 친구랑이든 혼자서든 나도 유럽에 가리라!

고등학교 절친 ‘진’과 함께 한달 여의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한 이금이 작가님.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여행. 기대와 흥분 가득한 여행은 아무리 준비를 철저하게 해도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흔히들 친구랑 여행을 떠나면 의가 상하다고들 말한다. 함께 있어 즐거울 친구 사이라고 해도 장기간 종일 붙어있다 보면 서로의 맘이 상하는 일이 생기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속속들이 잘 안다고 생각한 친구라도 막상 함께하면 마음에 안드는 구석이 보인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나 조차도 마음에 안드는 판에 친구라고 해서 모든 것이 마음에 들리가 없다. 여행지에서는 서로 다툴수도 있고 서운할 수도 있다. 서로를 진정 아끼는 친구 사이라면 여행지에서 서운함을 풀 수 있을 것이고 다녀와서도 원래의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실제로 ‘진’ 님은 작가님의 책이 출간된 후 내용을 알게 되셨다고 한다. 혹여나 책의 내용에 친구 ‘진’이 서운한 내용이 있지는 않은지 걱정되어 서운한 거 없었냐 묻는 작가님께 친구 ‘진’은 그런 소리 할거면 40년 지기 친구라고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고 한다. 역시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친구 사이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나 역시 친구들과 이런 사이로 함께 나이들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만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타인의 역사가 아무리 좋아보인들 그것은 내것이 아니고 내것이 될 수도 없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사건사건을 겪어가며 우리는 나날이 조금씩 발전하고 달라지고 있다. “여행하면서 마주쳤던 모든 것들이 마음, 영혼, 몸, 구석구석에 자국을 냈다. 자국은 실금을 만들어, 어떤 금은 파삭하고 깨어졌고, 어떤 금은 지금도 실핏줄처럼 내 전부를 타고 다니며 시각과 생각에 틈을 내주고 있다.(197)” 라는 작가님의 말(어쩜 이런 주옥같은 표현을 하셨는지.)처럼 여행은 사람들의 마음, 영혼, 몸, 구석구석에 자국을 낸다. 그 자국들은 새로운 삶의 자양분이 된다. 그래서 좋은 것이다 여행이라는 것은.

*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숨은 길 찾기 이금이 청소년문학
이금이 지음 / 밤티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달밭마을 시리즈 중 마지막 이야기 <숨은 길 찾기> 정들었던 미르, 소희, 바우의 마지막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작 <소희의 방>에서 소희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고 이번 <숨은 길 찾기>에선 달밭마을에서 생활하는 미르와 바우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소희가 떠나고 달밭마을에 남은 미르와 바우는 중학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둘 사이에서 중심을 연결해주던 소희가 떠나고 난 뒤 바우는 식물에 더욱 관심을 쏟기 시작한다. 비어있는 소희의 집 마당에 여러가지 식물을 키우는 것이 바우의 낙이고 즐거움인데 누구보다 바우를 이해해줘야 할 아빠는 그런 바우를 못마땅해한다. 바우는 그런 아빠가 너무나 서운하기만 하다. 소희라도 있었으면 바우의 마음을 이해해줬을텐데, <너도 하늘말나리야>에서보다 조금 성숙해졌다고는 해도 아직 미르는 바우의 그런 마음을 헤아릴만큼 마음의 폭이 넓지가 않다. 그런 바우에게 찾아온 새로운 친구 재이, 바우는 재이를 통해 따뜻하고 행복한 마음을 느낀다.

갑자기 생활환경이 달라진 소희가 낯설면서도 부럽기만 한 미르는 외고에 가겠다는 소희의 말을 듣고 자신도 뮤지컬 배우가 될거라고 선언해버린다. 엄마를 졸라 학원에 다니며 뮤지컬 배우를 꿈꾸지만 세상은 미르의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는다. 학교 연극부에서의 연극을 통해 무대에서의 짜릿함을 느낀 미르, 그러나 자신이 정말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확신을 갖을 수 없다.

어느새 중학생이 된 아이들. 초등학생 시절과는 다른 감정의 파도를 겪고 있다. 어느새 아이들은 사춘기의 길목에 서 있다. 그러나 사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분이 널을 뛰듯 오르락 내리락 할 때가 있다 그것은 비단 사춘기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사춘기라서 감정이 제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마음이 힘들고 아파서 감정이 제어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어른들은 그 시기의 아이들을 무조건 ‘사춘기’라고 치부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진중하게 생각해주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춘기 라는 말에 짜증을 내는 미르의 말처럼 어쩌면 아이들의 들쑥날쑥인 그 마음들을 해결하려기 보다는 고작 ‘사춘기’라는 말로 넘기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원예가 좋은 바우는 인문계 고등학교가 아닌 농업고등학교로 진로를 결정한다. 그리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교를 가길 바라는 아빠와 의견 충돌을 겪는다. 누구보다 자신의 길을 으원해 줄 것이라 믿었건만, 아빠에게 실망하는 바우. 자식이고 현재 부모인 나는 바우의 마음도 바우 아빠의 마음도 공감이 간다. 아이가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지만, 어느새 현실적이 되어버린 부모는 조금이라도 아이가 여유롭게 살기를 바라게 된다. 아무리 즐거워도 돈이 되지 않는 일보다는 덜 즐거워도 돈이 되는 일을 하기를 바라게 되는 부모의 맘이란…… ‘니가 자식 낳아봐! 그때 엄마아빠 마음 알게 될거야!’라던 부모님의 말을 이해하게 되는 나이가 된 것이다.

‘공부에 재능없음 공부 말고 기술 찾아야지. 꼭 공부의 길을 가야하는 건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막상 나의 아이가 공부를 전혀 안해서 꼴등에 가까운 등수를 받아도 괜찮냐 묻는 질문엔 답을 할 수가 없다. ‘에이, 그래도 중간은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나는 사실은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셈이다. ‘혹시 나중에 아이가 공부를 하고 싶을 수 있잖아. 늦게라도 따라가려면 중간은 해야지.’라고 생각하는데 결국 그것은 아이가 공부를 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숨어져 있는 것이다. 이율배반이다.

뮤지컬을 배우려고 서울까지 갔지만 그곳의 아이들과의 실력차를 느끼며 좌절하는 미르에게 미르 엄마는 말한다. “그 학교에 못 갔다고 해서 인생을 실패한 건 아니야. 그리고 실패나 실수가 나쁜 것만도 아니고. 앞으로도 네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무수히 겪을 수 있는 일이야. 엄마는 앞으로도 네가 실패나 실수에서 배워 가면서 스스로 길을 찾기 바라.”_200 그렇다. 목표가 무엇이었든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고 인생이 실패인 것은 아니다. 실패와 실수가 있어야 한층 더 성장할 수 있고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어지는 법이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생각보다 믿음직 스럽다. 내 아이라고 어리다고 아이를 나의 품 안에서만 키우려고 하는 것은 아이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의 삶은 아이의 것이니 선택도 아이가 하는 것이 옳은 것이지만 아직 아이는 미성숙한 단계에 있기에 무조건 아이의 뜻을 따를 수는 없다. 그렇다고 부모는 모두 성숙한 것 또한 아니다. 아이가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부모는 옆에서 도와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현명한 것임은 알지만, 나는 너무나도 속물적인 사람이라 자꾸 아이를 내 뜻대로 끌고가려고만 한다. 아마 달밭마을 시리즈를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더 좁은 눈으로 아이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얼핏보면 다들 비슷해보이는 청소년 소설이지만 각각의 이야기에는 아이들의 현실 고민들이 다양하게 드러난다. <너도 하늘말나리야> 한권 읽고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겠다 싶었는데<소희의 방>과 <숨은 길 찾기>에서는 또 다른 아이들의 마음이 보인다. 세권 읽었다고 아이들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읽기 전보다는 생각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앞으로 더 많은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 내 마음은 또 달라지겠지. 그러니 다른 책들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 해당 도서는 출판사에서 무료제공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희의 방 이금이 청소년문학
이금이 지음 / 밤티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금이 작가님의 청소년 소설 '너도 하늘말나리야' 3부작 시리즈 중 두번째 소설인 '소희의 방'은 미르, 소희, 바우 세 주인공 중 소희의 이야기이다. 전작에서 할머니와 둘이 살던 소희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친엄마와 함께 살게 된다. 그 새로운 삶의 이야기가 3부작 중 2부인 '소희의 방'이다.

  할머니랑 단둘이 살던 소희는 나이에 비해 상당히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힘들게 일하시는 할머니를 생각해서 공부도 집안일도 교우관계도 그 어느 것도 허투루 하지 않던 모범생이었다. 적어도 어른들의 눈엔 그랬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자신을 뒤로 하고 떠나간 엄마 그리고 홀로 계신 할머니. 사실 소희에겐 기댈곳이 없었다. 열세살 어린 소희는 할머니에게 기대는 것 대신 자신을 단단히 세우는 것을 선택했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 나이에 비해 너무 철이 없는 것도 좋지 않지만 심하게 철이 든 것은 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손이 갈 일이 없는 아이가 과연 진짜 아이일까. 소희는 아이인가 어른인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일생을 살던 달밭마을을 떠나 소희는 작은 아버지 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넉넉하지 않은 삶을 살던 작은집에서 소희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천덕꾸러기가 되지 않으려면 일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삶이 퍽퍽한 소희는 달밭마을에서 절친이었던 미르와 바우와의 연락조차 끊고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작은 엄마가 하는 미용실에서 열심히 일을 하며 하루하루 외로운 삶을 살던 소희에게 친엄마가 함께 살자고 다가온다. 그리고 친엄마와 새아빠, 둘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들과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소희.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던 지난날에서 부잣집에서의 삶을 시작한 소희는 '정소희'에서 '윤소희'로 다시 태어나며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오랜 시간 떨어져있던 엄마와 만났음에도 예상과 달리 데면데면한 엄마의 모습과 자신을 적대시하는 동생 우혁의 모습에서 상처를 받는 소희는 여태껏 그리 살아왔듯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혹시라도 내쳐질까 두려워서 애써 서러움을 참는다. 새로운 친구가 생겼으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혹시나 과거를 들킬까 전전긍긍한다. 할머니와 힘들게 살던 그 시절과 친엄마와 여유롭게 사는 지금, 소희는 과연 행복했을까.

과거에도 현재에도 소희는 자신의 마음을 아픔을 드러내는 것이 너무도 힘들다. 할머니를 힘들게 할 수 없어서, 엄마에게 내쳐질까봐의 이유로 아픔을 혼자 감내했던 소희. 어느 누구도 소희에게 있는 그대로 너의 감정을 드러내도 좋다고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어른스러워서, 손이 안가서, 의젓해서 대견하구나' 의 의미만 부여했을 것이다, 그런 아이가 힘이 덜 드니까. 어찌보면 어른들의 이기심이 소희를 외롭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소희의 힘이 되어준 것은 역시 친구들이었다. 달밭마을에서는 미르와 바우가 서울에서는 온라인으로 만났던 채팅친구 '디졸브'와 소희를 너무나도 좋아해줬던 남자친구 '지후'가 있었기에 외로운 집에서 숨쉬며 살아갈 수 있었다. 소희에게 친구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주눅들어서 눈치만 보던 소희는 서서희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엄마에게 반항도 하고 거짓말도 한다. 그 나이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을 하면서도 소희는 자신을 정당화한다. 엄마와의 끈끈한 유대감이 없는 소희한테는 마음 한 구석 깊은 곳에 불안감이 가득 숨겨져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렇게 방황을 하던 소희는 고모의 말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리고 엄마와의 속깊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너무 일찍 철들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이 소설은 청소년 소설답게 소희가 성장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2010년 출간된 구판의 개정판인 이번 책은 시대에 맞는 문장을 수정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인권의식, 시대감각, 젠더 의식 등의 전반적인 내용들이 수정되었다고 한다. 실제로도 구판에서 수록된 내용이 개정판에는 빠져있는 경우도 있어서 두권을 다 읽고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개정판 하나하나에 깊은 애정을 담아 수정하신 작가님의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성인이 청소년 소설을 읽어서 좋은 이유는 잃어버렸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을 되살리는 것뿐만이 아니다. 가장 좋은 이유는  자식을 키우는 양육자 입장에서 아이를 보지 않고 아이의 입장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너도 하늘말나리야'를 읽으면서도 그랬고 '소희의 방'을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을 한다. 어른의 눈이 아닌 아이의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말이다.

*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무료 제공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도 하늘말나리야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이금이 고학년동화
이금이 지음, 해마 그림 / 밤티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모님의 이혼으로 서울의 생활을 정리하고 엄마와 함께 달밭마을 보건소 사택에서의 새 삶을 시작한 미르.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빠 그리고 재혼한 엄마로 인해 할머니와 살고있는 소희.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말문을 닫은 바우.

  예상하지 못했던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것이 열세살 아이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고 세상이 무너질 좌절일지 나는 상상할 수가 없다. 하기사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가 된 내 나이에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모님의 이혼은 큰 충격일텐데 미르는 오죽했을까. 그러나 어찌보면 소희나 바우의 입장에서 보면 미르가 하는 고민들은 배부른 소리에 속했을지도 모른다. 아빠의 재혼 소식에 배신감을 느끼고, 이혼을 하고도 너무나 멀쩡히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엄마의 모습에 못마땅함을 느끼는 미르의 모습을 보며 추억하나 없어서 부모를 그리워 해본 경험도 없는 소희는 미르가 부럽기만 하다.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는 바우 역시 엄마와 아빠가 헤어졌어도 살아있기에 만날 수 있는 미르가 부럽다.

《너도 하늘말나리야》는 마음 한구석에 저마다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6학년 열세살 세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아빠와 이혼한 엄마에게 불만이 가득한 미르는 시골로 이사온 것도 마음에 안들고, 새로운 곳에서 적응 못하고 사는 자신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잘 지내는 엄마의 모습이 마음에 안들기만 하다. 친구랑도 사귀고 싶지 않고 달빛마을에 오래 머무는 것도 싫다. 솔직히 미르를 보며 곱게 자란 온실 속의 화초가 떠올랐다. 아, 이 얼마나 철없는 말인지. 「'난 절대로 행복해지지 않을 거야. 날 아빠 없는 아이로 만들어 버린 엄마도 나만큼 힘들어야 돼.'_35 」  그러나 나는 간과했었다 이 책의 주인공이 성인이 아닌 열세살 어린 아이라는 것을. 어쩔 수 없이 기성세대가 되고 부모가 된 나는 아이의 입장에서 책을 읽고 있지 않았다, 엄마의 입장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미르가 겪고 있는 아픔과 좌절감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아이로 인해 힘들어 할 엄마의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지난번 《금단 현상》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어린이들 소설을 엄마가 읽어야 하는 이유를 또다시 깨달았다. 아이들의 마음을 공감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위해서 어린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

  소희는 어른들의 눈에 쏙 들어오는 모범생이다. 어른의 말에 한치도 어긋남이 없고 자신이 할 일을 알아서 잘 하는, 소위 손 한번 안가는 그런 착한 아이말이다. 그런 소희를 보며 미르 엄마가 말한다.「일찍 아픔을 겪어서 그런지 애가 어른스러워. 오히려 그 모습이 더 가슴 아픈 거 있지/_52」 그렇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 그 나이 때의 어리광, 철없음, 무모함 등을 나타내는 것이 건강한 아이라고 감히 나는 생각한다. 나이에 맞지 않는 어른스러움은 아이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도 하늘말나리야》에서 가장 마음 아팠던 등장인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소희는 죽을힘을 다해 자신을 돌본다. 아직 어른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아이임에도 힘들다고 지친다고 나를 좀 돌봐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하지 못한다. 보는 내내 마음이 아려왔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 한 것은 막상 나는 내 아이에게 의젓함을 바란다는 것이다. 타인인 소희의 그런 모습은 안쓰럽게 생각하며 내 아이에겐 그런 모습을 원한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엄마를 잃고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그 슬픔을 표현하는 바우. 그런 바우이기에 이혼의 아픔을 날카로운 태도로 표현하는 미르를 이해한다. 겉으로 보이는 미르의 모습보다 그 내면을 보려는 바우. 엄마가 없는 자신과 아빠가 없는 미르의 처지가 비슷하다고 느껴지니 미르가 더 신경이 쓰인다. 그림과 식물에 관심이 많았던 바우는 하늘말나리 꽃을 통해 소희를 느끼고 엉겅퀴 꽃을 통해 미르를 느낀다.

  역시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에게 동질감같은 감정을 느끼나보다.상대의 입장이 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을때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살면서 겪는 일들은 대부분 비슷하기 마련이라 나와 전혀 다른 환경의 사람을 쉬이 이해할수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소설을 읽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소설 속 인물의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소설이 주는 매력인것 같다. 

소설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작은 아버지 댁으로 떠나는 소희의 모습에서 끝이 난다. 그리고 《소희의 방》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소희의 이야기가 《숨은 길 찾기》에서 미르와 바우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두 권을 빌려왔다.(소장하고 싶었으나 절판이더라는.) 한층 성장한 세 아이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