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섬으로 가다 - 열두 달 남이섬 나무 여행기
김선미 지음 / 나미북스(여성신문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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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주말이면 산에 오르곤 한다. 요즘 같은 겨울엔 하루가 멀다 하고 산에 오르고 있다. 겨울 산을 좋아하거니와 눈꽃으로 멋을 부린 나무를 보면 쌓인 스트레스가 스르르 녹는다. 산에 오르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설해목(雪害木)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지만 이것 또한 자연의 섭리이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무들의 고통을 갈음해본다. 내가 가는 등산로 코스에 거의 다 오르면 크리스마스트리로 잘 알려진 구상나무를 만나게 되는데 눈에 덥힌 구상나무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壯觀)을 연출한다.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곧추선 솔방울 닮은 열매를 보고 있으니 순간 이희승 선생님의 수필인 <딸깍발이>가 생각났다. 의복은 남루하고, 코에는 콧물이 질질 흘러내리는 남산골샌님이었지만 청렴과 지조는 그 서릿발 내리는 강추위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그들의 모습에서 구상나무의 곧추선 열매가 딸깍발이를 연상케 했다. 이런 겨울에 눈 덮인 구상나무도 구경하고, 정말 이런 호사를 누리는 나는 참 행복하다.


앞에서 느꼈던 행복감과 이에 더해 놀라움을 이 책《나무, 섬으로 가다》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남이섬에 나무의 종들이 많다는 것에 놀랐고, 그 많은 나무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24절기를 기준으로 남이섬의 사계절을 나무와 결부시킨 책의 구성도 좋았고, 나무들의 특성이나 열매를 컬러풀한 사진들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작가의 세심함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모로 부족한 나를 위로했다. “이 나무의 열매는 이렇게 생겼구나”, “산에 오르면서 본 나무가 이 나무였어”, “내가 알고 있던 나무의 이름이 그게 아니었네?", 이 나무 이름의 유래가 이래서 이렇게 지어진 거구나“ 등등 작가가 책에 올려놓은 나무의 사진들은 내가 알고 있는 나무의 지식들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에 충분했다.


꽃이 지고 잎이 나든, 꽃과 잎이 함께 나든, 아니면 잎을 먼저 내밀든 선택은 오롯이 나무 몫이다. 나무는 오랜 세월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방식을 취하고 유전자 속에 각인시켰다. 그것을 두고 왜 그랬는지 따져 물을 수는 없다.(본문 106쪽 中)


옛날 왕실의 시녀들이 임금이나 왕비의 좌우에서 들던 커다란 의장 부채가 ‘미선(尾扇)’인데, 그 미선이라는 부채를 닮아 이름 붙여진 미선나무와 모과나무의 열매를 가리키는 ‘명자’에서 유래한 명자나무의 꽃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나무에서 피는 꽃들의 미모가 뛰어나서 노총각의 마음을 이렇게 마구 흔들어댈 수도 있구나“를 가슴 저리게 느끼는 순간이다. 봄의 전령사인 노오란 복수초를 보고 있으면 입에서 침을 흘리고야 마는 나를 발견한다. 긴말하고 싶지 않다. 책 속의 말처럼 ‘봄이 와서 복수초가 핀 것이 아니라 복수초가 피어서 비로소 봄이 온다’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벚꽃을 필두로 여름엔 나무수국, 배롱나무, 가을엔 산딸나무와 측백나무, 겨울엔 구상나무와 주목, 개비자 등 이 책에서 소개하는 나무들을 보면서 남이섬의 사계절을 나무들의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남이섬은 나무들의 천국이자 나무들로 가득 찬 섬이었다.


꽃바람 부는 봄날,  남이섬에 가야지. 가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 통보를 받고 꽃잎을 떨군 채 시무룩한 히어리의 어깨도 두드려주고 싶고, 미선나무와 명자나무의 미모 대결에 승자를 가려주고 싶다. 이러면 남이섬의 왕벚나무가 시샘하겠지만 섭섭하더라도 이번만큼은 벚꽃 네가 미선 양과 명자 씨에게 양보해줬으면 좋겠어. 책 한 권 가져가 버드나무 밑에서 책도 읽고 싶고, 축의금도 두둑이 넣어가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 주목(朱木)의 주례로 산사나무의 결혼식에도 참석할 거야. 집으로 오는 길엔 산사 氏가 답례로 건네준 화관을 그녀에게 전해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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