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 산들의 꼭대기
츠쯔졘 지음, 강영희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돼서 읽게 된 책인데 읽고 난 후의 느낌이 좋아서 이렇게 글로나마 읽은 느낌을 대신하려 한다.

중국 소설은 처음이기도 하거니와 노벨상 수상작으로 유명한 가오싱젠의 <버스 정류장>과 모옌의 <개구리>는 고사하고 인기에 힘입어 영화로까지 제작된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도 읽지 않았기에 나에게 중국 소설은 캄캄한 벽이나 다름없었다. 이번 츠쯔젠의 소설을 읽으면서 왜 중국 소설에 발을 담그지 않았을까? 란 자책감이 몰려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책으로 가서 <뭇 산들의 꼭대기>는 총 17장으로 구성된 소설이고, 470쪽의 분량으로 봐서 중편 이상의 장편소설로 봐도 무방하겠다. 소설은 1장부터 몰입도가 장난 아니게 진행된다. ‘룽잔진’의 도축업자인 ‘신치짜’의 이력을 소개하면서 소설은 시작되는데 사고 뭉치이자 속된 말로 동네 양아치인 그의 아들 ‘신신라이’가 그의 엄마인 ‘왕슈만’을 천마도를 휘둘러 살해하고, 룽잔진의 신화이자 신령으로 추앙되는 난쟁이 ‘안쉐얼’을 강간하고 도망가면서 소설은 시작되고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이렇게 도망간 신신라이를 추격하고 잡는 것이 소설<뭇 산들의 꼭대기>의 주된 내용인데 그 내용을 파고 들어가 보면 중국이라는 넓고 넓은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소수민족의 사랑과 애환이 이 소설에 녹아들어 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룽잔진에서 도축업을 하며 살아가는 신치짜의 가족과 룽잔진의 진장(요즘의 이장이나 면장)을 맡고 있는 ‘탕한청’의 가족들, 칭산현의 실세인 ‘천진구’ 가족들과 창칭현 사법경찰대 대장을 맡으면서 룽잔진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 ‘안핑’의 가족 등 중국 내 여러 가문들이 이 소설에 등장하고 그들 가문이 중국 사회에 속해있는 상징성과 역할 속에서 오해와 이기심이 여러 인간들을 어떻게 몰락시킬 수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인간 세상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본문 229쪽 中)


연속적인 사건들을 통해 이야기의 흐름이 빠르고, 갖은 오해와 상처들 속에서 싹트는 안핑과 리쑤전의 사랑 이야기, 천사의 가면을 쓴 탕메이의 실체가 밝혀지는 장면들,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낳고 그 오해들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신카이류와 신치짜, 신신라이의 삼대 이야기, 온갖 부정을 통해 부를 축적했지만 가족의 사랑을 얻는 데는 실패한 천진구 집안 이야기 등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극적이면서 재밌는 설정이 너무나도 많고, 사형제도의 변화와 장례방식의 변화를 통해 인간의 이기적인 면이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장면에서는 실소가 나오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소설 중간중간에 풍습이나 미신, 설화, 신화 등의 의미들을 부여해서 이야기의 흥미를 유발한 것과 흐름의 끊김이 없는 유려한 번역 또한 이 소설이 주는 재미다. 반면에 40여 명의 등장인물 속에서 그들의 이름을 외우기가 쉽지 않아서 읽다가 흐름이 끊기는 경우도 발생했고, 작가가 설정한 가상의 마을인 ‘룽잔진’ 이외에는 시간적 배경을 소설에 나오는 묘사를 통해 유추해야 했기에 읽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요즘의 단어들(BMW, PC방, 문자 메시지 등)에 약간 거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거북함을 뒤로하고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과 이타적인 면들의 거리낌 없는 묘사, 등장인물의 설정과 구성의 면에 있어서《뭇 산들의 꼭대기》의 쯔츠젠은 중국의 이야기꾼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시기에 룽산 산꼭대기에 서서 뭇 산들에 눈을 돌려 온통 물든 숲들을 바라보면 산속 모든 나무가 하룻밤 사이에 꽃나무가 되었다고 착각하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서리가 만들어낸 찬란함은 아름다운 물고기가 물을 떠나면 그 머리와 꼬리를 얼마 흔들지 못하듯 오래가지 못했다. 세찬 가을바람에 결국에는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마지막에는 벌거벗은 잔가지만 남아 파란 하늘을 마주할 터였다.(본문 455쪽 中)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이 있다. 츠쯔첸의 <뭇 산들의 꼭대기>도 마찬가지다. 룽산 산꼭대기에서 룽잔진을 바라보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할 것이다. “룽잔진은 정말 아름답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마을이라고”, 하지만 룽잔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배신과 오해가 난무했고, 인간의 막장을 볼 수 있는 그런 잔인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 막장 속에서 인간들의 천태만상을 흥미로운 필체의 힘으로 끝까지 묘사한 츠쯔첸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이에 더해 이처럼 치밀한 구성과 웅대한 서사로 무장한 <뭇 산들의 꼭대기>를 여러분들께 살포시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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