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엔 원년의 풋볼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4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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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50페이지가 안 되는 이 소설의 1장만 읽는데 며칠을 소모했는지 모르겠다. 이 소설의 주동인물인 미쓰사부로의 독백으로 시작해서 이유도 없이 동네 초등학생들이 던진 돌멩이로 자신의 오른쪽 눈이 실명되고, 마조히즘적 형태로 자살을 선택한 친구, 머리에 난 혹을 제거하기 위해 수술을 받지만 잘못된 수술로 인해 백치가 되어버린 그의 아들은 중증 정신장애로 인해 보호시설에 맡겨지고, 그의 아내는 싸디싼 위스키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알코올 중독자다. 그리고 이 소설의 또다른 주동인물인 미쓰사부로의 동생 다카시의 상처와 폭력성은 이 책의 거의 대부분을 장식하며 1860년(만엔 원년), 일본 전후시대인 1945년, 미국에 대한 반감으로 투쟁의 연속이었던 1960년대를 묘사하고 있다.


《만엔 원년의 풋볼》을 통해 오에 겐자부로라는 일본인 소설가에게 노벨문학상을 준 이유는 폭력이나 고통, 인간의 상처와 치유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에 국한시키지 않고 크게 보면 일본이라는 나라의 민족성에 대해, 작게 보면 일본에서 일어난 메이지유신과 안보투쟁이라는 혁명적 요소 속에 접목시킨 결과라고 한다. 일견 이해가 되고 수긍이 간다. 천황의 칙허 없는 미국과의 통상 조약이 체결되고(1858년), 봉건 영주 다이묘들과 그 다이묘들의 최고 통수권을 가진 쇼군의 탄압(황제의 권력은 제한적)과 극렬한 저항이 시코쿠 산골마을에서 일어난 농민봉기로 점철돼서《만엔 원년의 풋볼》속에 인간의 상처와 폭력, 고통이 살아 숨쉬고 있었으니까.


미쓰사부로, 다카시 형제의 행동의 변화나 성격적인 묘사 부분을 따라가면서 읽는 것도 이 소설이 주는 즐거움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소설에서 형 미쓰사부로는 말 그대로 세상을 살아갈 만한 낙이 없는, 무기력하고 소심한 인간으로 묘사된다. 얼굴은 못생겼고, 한쪽눈 실명에, 태어난 아이는 백치고, 아내는 알코올 중독자, 친한 친구는 엽기적인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에 반해 동생 다카시는 스스로 100년 전의 증조부를 영웅시하며 증조부의 동생인 S형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그의 폭력성은 소설 여기 저기에서 광기어린 행동으로 묘사되고 있다. 미쓰사부로와 다카시가 자신들의 고향인 시코쿠의 시골마을로 내려가면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던 그들의 삶은 서로 다르게 곪았던 상처들로 인해 갈등을 일으키게 되고, 그 갈등은 일본의 갈등과 상처들이 극에 달했던 시대들(1860년, 1945년, 1960년)을 보여주면서 개인의 문제를 일본이라는 나라의 근본적인 문제로 승화시키고 있다. 서로 다른 성향의 형제가 같이 살아가는 것도 이렇게나 힘든데 하나의 국가에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사상의 충돌이나 투쟁이 일어났을 때 푹력을 통해 제압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서로에게 입힌 상처들을 서로가 치유해줄 수 있을 때 그것이 오에 겐자부로가 꿈꾸는 국가이자 민족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 소설의 말미에 가면 동생인 다카시가 형인 미쓰사부로에게 자신의 죄를 고해성사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소설에서 본인이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이다. 백치였던 여동생을 근친상간했던 사실과 그로 인한 여동생의 자살, 자신의 형수인 나쓰코와 간통했던 사실을 폭로하게 되면서 자신을 이렇게 ‘괴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형의 수치심을 극도로 자극하지만 형인 미쓰사부로에게서 돌아온 건 위로가 아닌 날선 비판이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와 큰형의 부재 속에서 둘째형의 처참한 죽음을 통해 다카시의 폭력성은 키워졌고, 그 폭력성을 100년 전 영웅시했던 증조부의 모습과 동일시하면서 정당화시켜버린 다카시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애잔함이 밀려왔고, 엽총으로 자살을 선택한 다카시의 마지막을 통해 그의 목을 옥죄었던 자기처벌의 욕구를 다카시 본인 스스로가 실천하는 모습에서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다카시를 그러한 ‘행동’으로 직접 이끄는 것은 다카시의 내부에서 ‘영웅화’되고 있는 조상과 형의 기억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영웅’ 탄생이 메이지유신이라는 근대 혁명-내부적 투쟁과 세계를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이라는 외부적 투쟁-에서 만들어진 사회적 구조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그러한 중층적 구조를《만엔 원년의 풋볼》은 100년 전(만엔 원년, 1860년)의 증조부 형제에 대한 기억과 그들 자신의 형에 대한 1945년의 상이한 ‘기억’을 중심으로 그려내고 있다.(560쪽, 책 작품 해설 中)


많은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내가 이 소설을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미쓰사부로와 다카시의 상반된 모습들에서 괜한 동질감이 들었고, 자살을 선택한 다카시나 미지의 세계에서 다카시의 아이를 잉태한 나쓰코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미쓰사부로 모두 그들 나름대로 자신이 지은 죄의식을 구원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 또한 많은 죄를 지으면서 살아간다. 거기에 어렸을 적 안 좋은 기억이나 트라우마가 있다면 그 충격을 평생 안고 살아가아만 하는 사람들에게 그 경험은 끔찍한 고통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구원이란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 그 누군가가 우리가 지은 죄나 트라우마를 구원해줄 수 있을는지는 곰곰히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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