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길이 찾은 발칙한 생물들 - 기이하거나 별나거나 지혜로운 괴짜들의 한살이
권오길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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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거실에 화분을 키워서인지 거실 주위는 온통 톡토기들 세상이다. 잡으려고 치면 톡톡 튀면서 도망을 가는데 그 모습이 웃기기까지 한다. 썪은 나무를 좋아해서 화분 밑이나 화분 속 흙이 톡토기들이 사는 공동주택인 셈인데 처음엔 해충인 줄 알고 식겁했다가 나중에 인간에게는 해를 주지 않는 생물이란 걸 알았다. 그리고 지금은 본인과 같이 아파트에서 동거를 하고 있다. 한때는 이 톡토기들을 전부 잡으려고 꽤나 노력을 했었는데 지금은 화분의 낙엽들을 잘게 부숴서 화분 속에 있는 미생물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말을 들으니 요즘은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며 살아가는 톡토기들이 예뻐 보이기까지 한다.


우리 주변엔 인간과 공생하는 생물들이 참! 많다. 쌀 속에는 쌀바구미가, 책꽂이의 책들엔 책벌레인 먼지다듬이벌레가, 우리가 덮고 자는 이불엔 집먼지진드기가, 그리고 사람들의 피부에는 옴진드기가 피부 속에 알을 낳기 위해 피부 속으로 들어올 기회만 엿보고 있으니 정말 발칙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발칙해도 인간과 옛날부터 같이 살아왔기에 내보낼 수도, 그렇다고 내쫓는다고 해도 쫓겨나갈 녀석들이 아니다. 이런 발칙하고도 염치없는 녀석들을 속담과 버무려서 접시에 올려놓으니 제법 그럴싸한 에피타이저가 됐다. 권오길 셰프의 메인요리인 《발칙한 생물들》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이 책《발칙한 생물들》이 우리말과 관련된 속담 책인 줄 알았을 만큼 책에서는 속담, 사투리, 우리말이 많이 나온다. 그러고 보면 책에서 권오길 선생의 말을 만들어내는 솜씨와 생물들의 특징을 잡아내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어쩜 이렇게 적시적소에 저런 속담과 방언을 쓸 수 있는지 감탄사만 나올 뿐이다. 이 책 여기 저기에 실린, 그림으로 그린 삽화들도 이 책을 읽는데 즐거움을 준다. 옴진드기를 삽화로는 처음 봤는데 꼭 영화에서 나올법한 생김새에, 저런 모양을 가진 진드기가 인간의 몸에 기생하면서 알을 낳은다고 생각하니... 더,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도 바로 잡을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을 상하게 하는 건 책벌레가 아니고 곰팡이란 사실, 고로 책방의 습기를 없애주면 책벌레는 자연적으로 없어진다는 중요한 정보를 알았고, 살인진드기로 알려진 작은소참진드기엔 0.5퍼센트만이 사람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어서 걸려도 독감의 치사율(6%)과 비슷하다고 하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리고 문어나 낙지에 달려 있는 동그란 것을 우리는 머리로 알고 있는데 내장이 든 몸통이니 다들 오해하지 마시길. 여기에 난폭하다고 생각했던 오소리의 재발견이라던지, 옛날 시조에 종종 등장하는 자규는 뻐꾸기가 아닌 올빼미를 닮은 소쩍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책치고 값지고 의미 없는 것은 없다 하지 않는가. 생물을 전공한 사람으로 나만 알고 넘어가기란 아쉽고, 죄스러운 일이라 낙명(落命)할 때까지 줄기차게 쓰고 또 쓸 참이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좋고, 많이 읽히지 않아도 좋다. 열렬히 읽어 주는 독자 한 사람만 있어도 써야 한다. 누에는 죽어서 실뽑기를 그친다고 하지.(10쪽, 책 머리말 中)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세상에 나쁜 생물은 없고 별난 생물만 있다는 권오길 선생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생물들도 인간들처럼 살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묵묵히 살아가고 있음을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었고, 내 주변의 생물들도 무심하게 지나칠 것이 아니라 자세히 관찰하면서 인간들과 공생하는 그들에게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그들이 살 수 없는 세상이 오면 인간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알기에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 살아갔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권오길 선생님의 바람처럼 건강 챙기시면서 오랫동안 우리들 곁에서 다양한 생물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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