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류시화 지음 / 연금술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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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는 여백의 미를 강조한 그림이라고들 한다. 그리려고 하는 대상의 형체보다는 그 사물이 담고 있는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 화면을 가득 채우지 않고 빈 공간을 남겨두어서 여백에서 오는 느낌들을 감상하곤 하는데 그 느낌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떤 사람은 동양화 속에서 긴 여운 속 아쉬움을 발견하기도 하고, 다른 이는 기쁨을 넘어선 환희를 느끼기도 한다. 이렇듯 동양화에서 여백의 미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맡긴 채 각자의 생각들을 그림에 채워넣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림들을 감상하고 있다.

동양화가 여백의 미를 강조한 그림이라면 하이쿠는 시에서의 여백의 미를 강조한 일본 고유의 단시(短詩)라고 말할 수 있다.
형식은 5.7.5의 17음(音)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17음 속에 계절을 상징하는 단어가 포함된 게 하이쿠의 특징이다. 이렇 듯 함축적이면서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라고 말하는 하이쿠 1,370편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 바로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란 책이다. 거기에 이 방대한 하이쿠를 영혼의 마술사라 불리는 류시화 시인의 해설로 들을 수 있다는 건 이 책을 읽는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워낙 간결하고 짤막한 하이쿠이기에 이 책에 실린 하이쿠 1,370편을 말로 다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하이쿠를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약간 몽환적이면서 꿈 속을 걷고 있는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하이쿠 한편 한편이 아름다웠지만 한편으론 화가 나기도 했다. 이처럼 아름답고 절제된 미를 내포하고 있는 하이쿠가 일본을 대표하는 문학이라서 화가 났고, 그 하이쿠에 빠져드는 내 모습에서 화가 나기도 했다.

꺾지 마시오
하곤 꺾어서 주네
뜰에 핀 매화                                        (본문 267쪽 中)

꺾지 마라고 해놓고 꺾어서 주는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나 같으면 저 아름다운 매화를 감춰놓고 나 혼자만 보겠지만 그러면 나만의 시가 됐겠지.
이 책의 해설처럼 운치있는 주인이 꺾어서 턱! 하고 내어주니 한편의 아름다운 하이쿠가 되었다네.


지는 벚꽃
남은 벚꽃도
지는 벚꽃                                            (본문 337쪽 中)

료칸의 사세구이자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료칸의 이 시를 인용할만큼 아름다운 하이쿠인데... 이 하이쿠가 태평양 전쟁 당시 가미카제 특공대의 주제가가 되었다고 하니 이것이 선승 료칸에 대한 모독이 아니고 무엇이랴.


‘인생사 새옹지마’란 말처럼 인생이란 것이 변화무쌍한 것이어서 복福이 되기도 하고, 화禍가 되기도 하겠지만 그럴 때마다 일희일비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하이쿠 한 줄 읽으면서 감정을 추슬러 보는 것도 인생을 대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류시화의 해설로 들어보는 하이쿠의 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다. 그 곳에서 여러분은 이제 아름다운 하이쿠의 세계에서 마음껏 고독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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