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셰스쿠 - 악마의 손에 키스를
에드워드 베르 지음, 유경찬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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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에서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차우셰스쿠, 그리고 루마니아의 비극적인 역사이야기

 

 

수많은 사람과 유대인을 학살한 아돌프 히틀러, 구소련에서 독재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서슴지 않았던 스탈린, 칠레의 독재자로 악명높았던 피노체트, 우간다의 식인종으로 불린 이디 아민, 캄보디아의 인간 사냥꾼 폴 포트, 그리고 아버지 김일성의 뒤를 이어 공산주의의 끈을 단단히 옥죄고 있는 김정일 등은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독재자들이다. 이 중에서도 피의 대제로 불리면서 그의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이천만 명 이상을 죽여 소련연방에 항상 피비람을 불게 만들었다는 스탈린과 항상 스탈린과 비교되면서 잔인한 독재라라 불리는 히틀러는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로 인해 죽인 숫자가 600만 명 이상이고, 폴 포트는 캄보디아의 전체 인구 700만 명 중 3분의 1인 200만 명 이상을 학살(킬링필드)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 또, 우간다의 식인종이라 불린 이디 아민은 반대파의 숙청으로 30만 명 정도를 학살했는데 그 시체의 머리를 자기 집 냉장고에 넣어두면서 악어의 먹잇감으로 주기도 하고, 사람의 살가죽을 벗겨 죽이기도 하는 등 방법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잔인한 독재자였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일당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서슴지 않았던 독재자들도 자살이나 망명 후 초라한 죽음, 공개처형 등으로 생을 마감한 것을 보면 세상의 정의는 아직 죽지 않았음을 깨닫곤 한다.

 

루마니아에서도 앞에서 열거한 독재자들처럼 철권정치를 휘두른 독재자가 있었는데 그 장본인이 바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ses'cu, 1918~1989)이다. 보잘것없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이라는 학력으로(차우셰스쿠의 부인인 엘레나는 초등학교 3학년 중퇴-_-;;) 글의 맞춤법도 모르면서 그 어렵고 복잡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계승하여 루마니아에서 공산주의를 뿌리내렸었던 인물 차우셰스쿠. 그렇다면 이런 차우셰스쿠가 루마니아에서 4선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폴란드의 언론인이자 작가였던 리스자드 카푸친스키(Ryszard Kapu'sci'nski, 1932~2007)는 루마니아의 사회적 배경이 독재자 차우셰스쿠를 탄생시켰다고 말한다. 사적 소유권과 개인의 권리나 독립성을 주장할 수 있는 중산층이 루마니아엔 존재하지 않았고, 차우셰스쿠가 집권할 당시 루마니아의 문화 수준은 거의 바닥을 기고 있었으며, 끼리끼리 잘 먹고 잘 살자는 공산당 수뇌부들의 이기심이 차우셰스쿠의 장기집권을 뒷받침했다고 카푸친스키는 증언한다. 꼭 대한민국이 한국전쟁을 겪고 난 후의 사회적 상황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한 미치광이의 공상 속에 2천만 명의 사람들이 사는 나라.”

(1977년 지진으로 타계한 반체제 작가 알렉산드루 이바시우크가 차우셰스쿠를 빗대어 한 말, 241쪽)

 

마르크스-레닌주의 강령을 씹어 먹으면서 스탈린주의에 심취했던 한 청년이 루마니아의 ‘공산주의자 청년동맹’의 책임자로 임명되면서 점차 그의 악마적 근성은 루마니아에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그의 부인 엘레나를 만나면서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의 중심에 서게 되고, 서방세계에 루마니아가 개화된 공산주의국가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숙청하고 단순 무식했던 그의 헛된 망상과 무자비하고 무력을 수반한 행동만이 변화를 가져온다는 신념에 대해서는 확고부동한 자세를 취한 그였지만, 의사결정을 내리고 정책 지원이나 루마니아의 민생문제에 대해서는 극히 우유부단했던 행동들이 점점 그의 목을 조여오기 시작했다.(젊었을 때 차우셰스쿠를 보고 있으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한 젊은이가 권력에 눈이 멀어 날뛰는 그 모습들이 한국전쟁 때 붉은 완장을 차고 죽창을 든 사람들이 인민군의 총만 믿고 날뛰던 모습과 오버랩이 된다.)

 

“단 한 번도 현안이 된 문제 이외에는 그와 이야기해 본적이 없어요. 예술이나 문학에 대해서 그가 언급한 것을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차우셰스쿠의 내면에는 이런 것들이 잠재해 있지 않았습니다.”

(본문 274쪽, 차우셰스쿠의 보좌관 마우레르의 이갸기 中에서) 

 

한 국가의 4선 대통령이나 한 사람이 한 치 앞의 미래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눈앞에 펼쳐진 사리사욕에만 급급했으니 그의 말로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안봐도 훤하지 않겠는가? 차우셰스쿠의 독재에 성난 루마니아 국민들은 1989년 12월 21일에 거행된 차우셰스쿠 지지 궐기 대회에서 차우셰스쿠 타도!와 학살자를 처단하자!는 구호아래 혁명을 일으키게 되고, 그 혁명으로 인해 차우셰스쿠는 도망자의 신분이 되기에 이르고... 급기야 온 세계 국민이 축복하고 기뻐하는 성탄절(1989년 12월 25일)에 군인들이 보는 앞에서 총살로 공개처형된 차우셰스쿠와 엘레나 부부.(총살당한 차우셰스쿠 부부의 시신 사진이 당시 루마니아의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었다.)

 

차우셰스쿠는 떠났지만 지금도 루마니아에는 그가 심어놓은 공산당 수뇌부와 비밀경찰들이 고위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비단 이것은 루마니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도 친일파와 독재, 그리고 군부독재의 잔해물들을 아직까지 처리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독재를 경험한 나라는 독재가 얼마나 무서운 악마인지 느꼈으리라 생각된다. 루마니아 뿐만 아니라 독재를 경험한 국가들이 다시는 이런 전철을 되밟지 않길 바라면서, 철권 통치차였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를 권자에서 몰아낸 루마니아 혁명이 올해로 21주년을 맞는 루마니아에서 세계가 부러워하는 민주주의가 꽃피워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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