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는 내내 링고는 시나브로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었다.

변심한 애인이 링고 곁을 떠났을 때 난 외로움과 싸웠고, 그 충격으로 링고가 실어증에 걸렸을 땐 나 또한 아무말도 할 수 없었으며, 싱싱한 식재료로 혼신의 힘을 다해서 요리를 할 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뭉클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밀려오는 행복감, 정말 오래간만에 가슴 따뜻한 소설을 만난 기분이다.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비운의 여인 링고, 그런 링고에게 행복한 일만 있었으면 좋으련만 세상은 링고를 가만 놔두질 않는다.

3년 간 동거했던 인도男은 링고의 모든 것을 챙겨 사라져버리고 링고 곁에 남은 건 세상을 떠난 할머니가 링고에게 남긴 겨된장 항아리 뿐... 이 항아리를 들고 열다섯 살 이후 한 번도 찾지 않은 고향에 돌아오지만 링고를 반기는 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임시 직원이었던 구마 씨와 열 두시 정각만 되면 어김없이 우는 부엉이 영감 뿐이다.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프로 요리사의 꿈을 간직한 링고는 엄마의 허름한 창고를 빌려 식당을 개업하기에 이른다.

이름은 『달팽이 식당』이다. 식당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협소한 공간이지만  일본의 초등학생들이 등에 메는 가방인 ‘란도셀’처럼 등에 짊어지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링고의 포부가 담긴 식당 이름이기도 하다. 이 달팽이 식당엔 정해진 메뉴도 없고, 손님은 하루에 한 팀만 예약을 받으며, 손님의 성향과 인품을 철저히 조사한 후, 상황에 맞는 요리를 링고가 내놓은 것이 원칙이다. 이 조그만 식당이 어느 날부턴가 『달팽이 식당』의 요리를 먹으면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그럴싸한 소문이 퍼지게 되면서 식당엔 마법같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과연 달팽이 식당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

 

소설을 읽으면서 간만에 맛본 행복감이었다.

이 소설의 주된 소재는 요리인데, 이 책을 읽는 내내 링고의 혼과 정성을 담은 요리가 내 눈 앞에 펼쳐져 있을 정도의 생생함이 내 눈으로 전해졌다. 링고가 하는 요리를 옆에서 구경도 해보고, 요리를 맛도 보고, 그 요리를 음미도 하면서 링고와 일심동체가 되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 맛은 요리를 통해 행복함를 느끼게 하는 그런 절묘한 맛이었다. 그리고 손님을 먼저 생각하고, 손님의 입장에 서서, 손님의 기분과 얼굴색에 따라서 요리를 내놓는 링고의 요리에 대한 자세는 찬사를 보내고 싶을 정도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새 오후 2시 반이 지나서, 서둘러 과일 샌드위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샌드위치에 생선 비린내가 배지 않도록 팔까지 뽀득뽀득 씻었다. 노파심에 한 번 더 치약과 소다를 섞어서 손을 뽀득뽀득 씻고, 비로소 깨끗한 기분이 되어 건포도 식빵을 빵칼로 잘랐다. 씻은 손은 치약 성분 때문에 아플 정도로 따가웠다. (본문 114쪽 中)

 

샌드위치에 생선 비린내가 배지 않도록 뽀득뽀득 손 씻는 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손이 따가울 정도로 손을 씻어 손님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노력하는 링고를 여러분들은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난 링고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이런 사랑스러운 링고를 배신한 인도男이 한없이 가엾게 느껴지면서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찌질한 OO”...

이처럼 『달팽이 식당』엔 사람들이 기뻐할 수 있는 요리를 만들고, 먹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행복해지는 요리를 만드는 링고의 사랑스러움과 그런 링고를 사랑할 수 없었던 엄마의 숨겨진 슬픔, 요리를 통해 느끼게 되는 삶의 성찰, 먹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느끼게 하는 ‘행복’의 레시피가 들어 있었다.

 

여러분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만약 행복하지 않다면 『달팽이 식당』을 추천해 드립니다.

달팽이 식당엘 가서 링고가 손수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행복의 진정한 의미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단, 커튼이 닫혀진 주방은 보지 마세요!  소심한 링고가 커튼을 살짝 연 채 여러분의 행복을 훔쳐갈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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