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세계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이야기의 연금술사 온다 리쿠가 그리는 미스터리의 세계

 

사람에게 한번 본 이미지를 절대로 잊지 않고 정확하게 기억하는 재능이 있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뇌의 기억 저장소가 컴퓨터처럼 Delete라는 기능이 있다면 삭제해서 휴지통에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그런 기능이 없기에 한번 본 이미지들은 점점 뇌의 저장소에 쌓이게 될 터이고, 언젠가는 과부화가 걸려서 뇌의 기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어제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면서도 오늘의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과거의 세계에 살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한 남자가 실종된다.
도쿄에서 회사원으로 일했던 평범한 남자가 어느 날 밤 상사의 송별회 자리에서 홀연히 모습을 감추고, 실종된지 1년 후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M마을의 미나즈키(水無月=물이 없는 달, 6월을 일컫는 말, ‘물의 달’ 이라는 뜻으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장마가 한창이라 물있는 달이라고 해도 충분할텐데 그 반대인걸로 봐서  음력과 양력의 시간차이로 인해 그렇게 쏟아지는 장마가 끝나면, 기승을 부리던 하늘도 바닥을 드러내고, 물도 거의 마를  것이라는 추측에서 지어진 이름인 듯 하다) 다리에서 날카로운 흉기에 찔린 채 사체가 되어 발견된다.

온다 리쿠의 신작 『어제의 세계』는 한 남자의 실종과 그 실종이 있음으로부터 1년 뒤 그 남자가 어느 마을의 다리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러면서 이 소설은 한 남자의 죽음을 역추적해가는 구성을 취한다.

도쿄에서 회사원으로 일했던 한 남자가 왜 M마을에 오게 되었는지, 미나즈키 다리에 간 이유는 무엇인지, 이 소설에서 중요한 소재인 탑과 수로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 왜 미나즈키 다리에 변사체로 발견되었는지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 다양한 시점과 증언을 가지고 역추적하는 형식을 취하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한 순간만 한 눈을 팔아도 내가 지금 누구의 말을 듣고 있는건지 헷갈려서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집중해서 읽어야만 하는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집중해서 읽기가 여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온다 리쿠의 문학세계를 집대성한 소설’이라는 메리트만 믿고 그 무언가가 있겠지? 하며 나오는 등장 인물들을 포스트 잇에 써 가며 읽은 책이었지만 마지막 결과는 내가 상상했던 거 보다는 미치지 못했던 게 사실이고, 극적 반전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실망감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단순한 소재(한 남자의 실종과 죽음)를 가지고 이렇게 장편소설로 써 내려갈 수 있는 능력이 온다 리쿠에게는 분명 있고, 그 능력때문에 그녀가 대한민국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온다 리쿠의 신작『어제의 세계』는 온다 리쿠의 힘을 분명히 보여 준 작품이었고, 단순한 이야깃거리를 얽히고 섥히게 만들어서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충분한 힘이 있는 소설이었지만, 양조장 주인인 와카쓰키 게이고의 분신의 출현이라든지, 이치가와 고로의 죽음을 파헤치던 니레타 에이코의 갑작스런 죽음이라는지, 이치가와 고로의 쌍둥이 동생의 출현 등등 애모모호한 인물의 설정으로 인해 재미를 반감했다는 게 이 소설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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