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 - 아름다움은 인간을 구원하는가
조주관 지음 / arte(아르테) / 2022년 10월
평점 :
일시품절


그림을 감상(鑑商) 하는데 있어서 육하원칙에 따라 감상평이 갈리곤 한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에 따라 그림을 감상(感想) 하는 느낌이 달라지기에 내가 굉장히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에곤 실레의 ‘자화상’을 보는 것과 꿈길을 걷는 것처럼 행복할 때 ‘자화상’을 보는 건 다가오는 느낌이 천지차이다. 아름다움이 인간을 구원한다고 하지만 구원하기 이전에 아름다움을 보는 시각은 우리들 모두가 다르기에 언제 어느 순간에 그 아름다움을 느끼느냐가 그림이 나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하는지 아니면 크나큰 슬픔을 선물하는지 알게 될 거라고 본다. 유명한 화가의 그림들이 우리들에게 기쁨과 행복만을 선물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행복함을, 때로는 쓸쓸함을 선물하기도 하면서 그 그림을 통해 내가 그 어떤 위로라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림은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우리들 길에 동반자 같은 역할을 해주는 친구이기에.


도스토옙스키는 모스크바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청년 시절을 페테르부르크에서, 그리고 한 남자에게 있어 한창일 나이인 30대를 허허벌판인 시베리아에서 형벌 아닌 형벌을 받으면서 보냈다. 어린 시절 엄격하고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지내다가 이제 자신의 적성을 찾아 꿈을 펼칠 나이에 자신의 우상이었던 푸시 킨과 자신을 따뜻한 사랑으로 감싸줬던 어머니의 죽음은 문학소년이었던 도스토옙스키의 목소리가 한동안 나오지 않을 정도의 큰 슬픔을 안겨줬다. ‘페트라솁스키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사형 직전 감형되어 시베리아로 유형을 선고받은 이력을 포함해서 그의 유년시절부터 청년 시절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상황을 종합해 보면 그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우면서 처절하고 고독한 시간을 보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그에게 글쓰기는 유일한 벗이었고, 무작정 글을 쓰면서 머리에 쌓인 상념을 그림을 감상하면서 그 고독의 끝을 즐겼을 도스토옙스키다.


도스토옙스키는 아름다움의 비밀을 탐구한 작가다. 그의 소설에서 아름다움(美)은 진(眞)과 선(善)을 그 안에서 포괄하고 있다. 인간의 감각에서 아름다움은 유일하게 현시될 수 있는 것으로 인간이 지각할 수 없는 진과 선의 육화다. 그리하여 아름다움은 진과 선의 ‘보이지 않는 추상성’이 ‘보이는 이미지’로 현현된 것이다.(본문 138쪽 中)


책에서는 여러 그림들이 나오는데 무리요의 <성스러운 가족>을 보면서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라진 못했지만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자란 도스토옙스키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고,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에서는 아버지의 사랑이 고팠던 어린 시절의 도스토옙스키가 떠올랐다. 프리스의 <세례자 요한의 참수>란 그림을 보면서는 총살 직전 가까스로 사형을 면하고 유배지였던 시베리아로 떠나는 도스토옙스키의 공포스러운 마음을 대변할 수 있었다. 이뿐 아니라 야코비의 <죄수들의 휴식>에서는 시베리아에서 4년간 감옥생활을 한 그의 고통이 나에게까지 전해지면서 도스토옙스키가 러시아의 대문호란 칭호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힘든 생활을 버티면서 느낀 감정들을 오롯이 자신의 글 속에 투영시킨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유명 화가의 그림들을 보면서 도스토옙스키의 삶을 통한 애환이 떠올랐다는 점이다. 유년시절부터 청년기, 결혼 후 삶,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소개된 그림을 보면서 그가 느꼈을 감정들을 내가 이심전심 느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게 아렸다. 평탄한 삶을 살았던 작가가 아니었기에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거기에 조주관 교수의 안목이 더해져 도스토옙스키가 어떤 그림을 그렸고, 어떤 그림을 사랑했는지 그의 미술관(美術觀)을 알 수 있었던 것도 책을 읽는 내내 큰 행복이자 즐거움이었다. 마지막으로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를 보면서 환하게 나를 안아줄 그 누군가를 위해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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