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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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만난 건 <식물들의 사생활>을 통해서였다. 이승우라는 소설가의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소설의 제목에 반해서 읽었던 소설 중에 몇 안 되는 소설이 바로 <식물들의 사생활>이었다. 긴 호흡, 쉽게 다가오는 문장들, 구(句)의 반복, 간결한 문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다 읽은 후 다시 읽었을 때 그 문장이나 구절들이 심오하면서 난해하게 다가왔다. 이런 심오함과 난해함을 독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가 친절하게 부연 설명을 해주고 있다는 것도 시나브로 알게 됐다. 그 뒤로 <생의 이면>과 <사랑의 생애>를 읽으면서 이승우란 작가가 우리에게 베푸는 문장의 친절함은 친절함을 과장한 메타포란 것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이렇듯 사랑과 인생에 대해 그만의 글을 쓰고 있는 이승우 작가는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는지 궁금했고, 그 글쓰기 속에 담긴 함의가 무엇인지 더 알고 싶어졌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귓속말은 올곧으면서도 정직했다. 소설가는 알고 있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알기를 원하는 것을 쓰기에 자신을 잘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타인의 삶을 소재로 글을 쓰기 이전에 자기 자신의 삶을 알아야 하고, 그 삶을 통해 글쓰기가 이루어져야 타인의 삶에 대해서도 글을 쓸 수 있다는 단순 명료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자신을 적나라하게 해부하고 난 다음 타인의 삶에 욕망과 사랑이라는 덩어리를 뒤집어씌우면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삶이 되어 우리들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역설적이게도 책에서는 자기 자신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길 한복판에 웅크리고 앉아서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덩치 큰 개를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글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큰 웅덩이에 빠진 자기 자신을 구해달라고 신에게 손을 내밀어 보지만 되돌아오는 건 무신론자들의 믿음이 더 강하다는 진실과 그 진실 속에 묻혀버린 소설가들의 믿음이 그들보다 더 약하다는 현실의 냉혹함뿐이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귓속말은 불완전하면서도 완전했고, 불친절하면서도 친절했다. 제아무리 완전하게 쓰려고 해도 불완전한 게 문장이고, 잘 쓴 문장도 그 속성 자체로 불완전하고 불충분한 것이지만 자꾸 덧붙이고 끊임없이 퇴고하면서 완전한 문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라고 말한다. 누구나가 다 아는 일반론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내가 관찰하고 연구하고 따져보고 사색해서 나온 결과물이 바로 글쓰기의 기본자세라는 것이다. 글쓰기가 부담으로 다가오는 순간 그 글쓰기는 더 이상 글쓰기가 아닌 과업으로 남게 되는 숙명이 바로 글쓰기인 것처럼.


그 사람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할 때 그 일은 과업, 즉 부담이 된다. 그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할 때 그 일은 자부심, 즉 영광이 된다. 그런데 그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은 그 사람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반대는 아니다.(본문 62쪽 中)


글쓰기에 대한 그의 귓속말은 야릇하면서도 냉철했다. 야릇한 말로 글을 쓰라고 하지만 그 야릇한 글쓰기 뒤에는 욕망이 숨어서 작가들을 유혹한다. 나만을 위해 글을 쓸 것인지, 독자나 출판시장을 겨냥해서 글을 쓸 것인지는 오롯이 작가의 몫이지만 그 선택이 어려운 건 생존의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승우는 ‘초연함’이라는 단어를 통해 이 상황에 대처했다고 말한다. 독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 하는 어름산이처럼 글을 써왔기에 지금까지 왔고 현재의 위치에 오른 그이지만 초연함이 왠지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번 에세이는 그의 전작들에 비해 조금 쉽게 읽으려고 했는데 이것 또한 내 욕심이었다. 나태주의 ‘풀꽃’에 나오는 시처럼 자세히 보아야 보이고, 오래 보아야 이해가 됐다. 이승우의 글이 바로 그렇다. 그는 허투루 글을 쓰는 법이 없다. 잘못 읽어서 삼천포로 빠지길 바라는 것처럼 글을 쓴다. 그걸 깨닫고 이해하는 건 나중 문제다. 자만심으로 글을 읽어선 안 된다는 걸 이번 이승우의 《소설가의 귓속말》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에세이에 나오는 ‘엔도 슈사쿠’와 ‘조성기’의 작품들 또한 꼭 읽어보려 한다. 그들의 작품에서 글쓰기의 영감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책을 읽으면서 그가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요동치는 세계의 변화와 상관없이, 혹은 그 때문에 더욱 자기 문학을 해야 한다. 나는 이것이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니라 욕망의 억제, 세상과의 거리두기, 일종의 초연함일 것이다. 하기야 모든 것을 흡수해버린 시장의 한복판에 살면서 이런 것을 지킨다는 것이 용기 없이 가능한 일 같지는 않다.(본문 204쪽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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