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의 인문학 - 미셸 파스투로가 들려주는 색의 비하인드 스토리
미셸 파스투로 지음, 고봉만 옮김, 도미니크 시모네 대담 / 미술문화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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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만 되면 여당, 야당 할 거 없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그들을 대표하는 색이 등장한다. 당도 당이지만 색을 통해 당의 이미지를 알리고 선전하는 것이다. 파란색, 핑크색, 노란색, 녹색 등등 그들만의 색상을 드러내놓고 유권자들을 유혹한다. “투표는 투표이고, 색은 색이다”라는 분들도 계실 테지만 색상은 분명 ‘정치’라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를 밝게 상쇄시키는데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됨과 동시에 유권자들의 마음을 유혹하기에 무척 매력적인 요소다. 이번 선거에 그들만의 색상을 두르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데 있어서 어떤 색깔이 대한민국 이곳저곳을 수놓을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어려서부터 초록색과 노란색을 좋아했다. 초록색은 파릇파릇하고 생동감 넘쳐서 좋았고, 노란색은 내가 좋아하는 꽃들_개나리, 프리지어, 유채꽃_을 보고 있으면 향기는 물론 노랑 자체가 마냥 좋았다. 초등학교 때 비 오는 날 노란 우비를 입고 오는 친구들을 보면서는 부러움의 대상에서 은연중에 노란색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한데 미셸 파스투로가 전하는《색의 인문학》을 읽고선 초록색과 노란색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행복한 색깔이 아니었다. 겉보기엔 생동감 넘치고 파릇파릇함이 느껴지는 녹색이었는데 그 속을 들여다보니 이질감을 느낄 정도로 생소했다. 오래전부터 중세 사람들은 녹색 뒤에는 무언가 흉계를 꾸미고 있어 음흉하고, 위선적이며, 불안정한 본성을 지니고 있어 위험한 색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 증거로 중세 시대 그려진 악마의 모습은 녹색으로 그려졌고, 빨거나 햇볕을 받은 녹색은 쉽게 바랜다는 사실, 16세기부터 녹색 펠트를 두른 탁자 위에서 도박을 했고, 이러한 것들이 오늘날에도 이어져서 관청 회의실의 탁자와 잔디가 깔린 스포츠 경기장, 테니스 코트나 탁구대도 녹색이라는 것이다. 스포츠에 녹색을 많이 사용한다는 건 중세부터 내려온 노름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증거다. 거기에 미국 달러가 초록색인 것도 도박을 상징한다는 초록의 어두운 면을 간접적으로 방증하고 있다.


색은 복잡하고 기이하다. 우리가 만든 범주로 쉽게 분류하여 설명하기 쉽지 않다. 색의 개수는 과연 몇 개인가? 아이들은 자동으로 네 개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섯 개라고 생각했다. 뉴턴은 프리즘을 통과한 스펙트럼의 색들을 일곱 개로 나누었다. 미셸 파스투로는 우리가 빨강, 하양, 초록, 노랑, 검정의 여섯 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체계 속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11쪽, 책 첫 머리 中)


 이뿐만이 아니다. 이 책에서 노란색은 온갖 오명을 다 뒤집어쓴 색이라고 말한다. 빛바랜 사진, 쓸쓸히 떨어진 낙엽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시쳇말로 을씨년스럽다. 배신의 상징인 유다의 옷 색깔, 화폐 위조범의 집 문에 칠해진 색깔은 노란색이었고, 나치의 계획에 의해 ‘게토’에 강제 수용된 유대인들의 명찰(별)의 색깔 또한 노란색이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종교 의식이나 결혼식 등 중요한 행사에 노란색을 입었고, 중국에서는 오로지 황제만이 노란 옷을 입을 만큼 사랑받았던 노랑이 중세에 이르러 금색과 경쟁에서 노랑이 패했기 때문에 온갖 오명을 쓴 색으로 전락했다고 미셸 파스투로는 말한다. 생명, 에너지, 환희, 권력의 상징은 금색에 내어준 채 쇠퇴, 질병, 흐릿함을 넘어 배반, 협잡과 거짓을 상징함과 동시에 유럽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색이 바로 노랑이 돼버린 것이다.


노랑, 사람들은 이 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색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노랑은 이방인이요, 무국적자다. 또한 사람들이 경계하며 불명예스럽다고 여기는 색이다. (본문 101쪽 中)


내가 좋아하는 색 위주로 초록과 노랑의 숨겨진 이야기에 대해 말했는데 미셸 파스투로의《색의 인문학》에는 파랑과 빨강, 하양, 검정, 그레이 색 등의 숨겨진 이야기도 함께 설명하고 있다. 사회자와 주고받는 대담 형식의 책이기에 사회자가 질문하면 미셸 파스투로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색에 대한 이야기가 무궁무진하게 펼쳐진다. 유럽인들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파란색부터 사랑과 지옥이라는 양면성을 돋보이게 하는 빨강, 삶과 죽음이라는 핵심을 말해주는 하양 등의 색깔이 미셸 파스투로의 인문학적 소양과 더해져서 읽으면 읽을수록 색에 대한 재발견을 할 거라고 본다.


‘노랑’처럼 역사를 통해 인류의 아픔이 하나의 색깔에 투영되어 있으면 그 색깔이나 색상은 사랑받지 못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픔을 준 색상이 사랑을 못 받는다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진리처럼 보이지만 유행은 반복되기에 과거에 사랑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현재에 와서는 노란색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그 색상 뒤에 숨은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그 나라의 색상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고, 그 이해를 통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될 거라 생각한다. 색은 모두에게 열려 있고, 그 색을 선택하는 건 바로 우리들의 몫이 될 테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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