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화훼영모화
장지성 지음 / 안그라픽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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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자처럼 보이지만 병풍으로 제작된 조선 중기 이영운의 <화조도 8폭>과 우리에게 진경산수화로 잘 알려진 조선 후기 겸재 정선의 <화훼영모초충도 8폭>의 그림들을 보면서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께 어떻게 하면 내가 느낀 감정들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들의 그림에서 아름다움 속에 감춰진 신비로움을 느꼈으며, 우리의 자연과 문화를 사랑한 그들의 마음이 이심전심 내게 전해졌는지 그림을 보는 순간 묘하게 떨렸다. 지금의 시대에서 조선 시대 화가가 그린 꽃과 새, 가축과 곤충들의 그림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 비웃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영운과 정선의 화훼영모화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나 클로드 모네의 풍경화보다 훨씬 더 깊고 넓은 울림으로 내게 다가왔다.


대충 그린 듯 보이지만 엄연히 구도가 존재하고, 꽃과 동물, 곤충들을 그린 듯하지만 그것들을 통해 화가의 의도나 주제, 그 시대의 시대상이 반영된 그림이 화훼영모화다. 자연을 소재로 하기에 고독이나 행복, 사랑, 기쁨 등 다양한 감정들을 시적으로 담아내기도 하고, 인간이 바라는 부귀영화나 출세, 소망 등이 그림에 투영되기도 한다. 언어유희를 통해 그 시대를 풍자하기도 하고, 동물들이 상징하는 바를 그림에 표현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시대상을 반영함과 동시에 수신(修身)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세상의 힘듦과 거침을 그림을 통해 묘사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그림에서 찾으려 했고, 그 중심에 화훼영모화가 있었다.


화훼영모화란 쉽게 이야기해서 동물과 식물을 그린 그림을 말한다. 꽃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한 쌍의 새나 정원 한편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처럼, 주로 동식물의 시정(詩情) 어린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책 첫머리 中)


책에서는 통일신라 이전의 화훼영모화의 흔적부터 시작해서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와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의 화훼영모화를 연대기 형식으로 다루고 있다. 통일신라 이전에는 그림이라기보다는 ‘흔적’이나 ‘표식’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화훼영모화의 그림들이 미비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소와 말의 그림들과 신라시대 천마도와 유물에 그려진 동식물의 흔적들을 통해 화훼영모화가 시작됐음을 유추할 뿐이다. 고려 시대에 와서는 송나라의 화풍을 답습한 회화와 불교를 중심으로 한 그림이 유행이었는데 공민왕이 그린 <이양도 二羊圖>와 불교의 색채가 강한 고려 불화, 예술품인 고려청자를 통해 화훼영모화가 즐겨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조선 시대에 와서 성리학적 유교문화와 만나 화훼영모화는 꽃을 피우게 된다. 조선 초기 송대 원체화풍(화원畵院 스타일의 그림)에서 유교 중심의 사대부를 바탕으로 한 문인화풍의 조선 중기를 거쳐, 중화주의를 바탕으로 청을 통해 들어온 서양화풍의 영향이 화훼영모화에 투영되고 빛을 발했다. 윤두서를 필두로 심사정, 정선, 강세황, 최북, 변상벽, 김홍도의 그림들이 조선 후기에 그려졌다. 조선 말기에 외척의 세도정치가 본격화되면서 지방은 부패했고, 민중들은 봉기를 일으키는 등 사회혼란이 극에 달했지만 예술 문화는 청대 화풍을 닮아서 더 독특하면서 개성이 넘친 화훼영모화가 탄생했다. 장승업, 김정희, 김수철, 신명연, 남계우 등이 조선 말기에 활약했다. 이렇듯 화훼영모화는 오백 년 조선의 역사를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시대상을 반영했고, 문화를 반영했는데 조선 말기 민화를 마지막으로 화훼영모화의 명맥이 끊겼다는 게 정말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그 뒤 장우성, 홍석창, 천경자의 그림에서 꽃과 새가 등장하긴 하지만 예전의 전통적인 화훼영모화가 아닌 다양한 실험과 모색 속에서 새로운 화훼영모화로 창조됐기에 예전 화훼영모화가 퇴색됐음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다.


오늘날 과연 화훼영모화라고 부를 수 있는 그림들이 존재하는지, 또 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입체와 평면의 경계가 무너지고 심지어 연극, 음악, 영상 등 미술 바깥에 있는 것이 미술 안에서 융합하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소재의 그림으로 접근하는 화훼영모화는 마냥 미약해 보였다.(책 387쪽 中)


 이 책을 통해 통일신라 이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화훼영모화를 눈으로 즐길 수 있어서 큰 기쁨이었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사임당 신씨가 초충도와 화조도 등 화훼영모를 그리는데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도 알았고, 산수화의 대가로 알려진 겸재 정선의 화훼영모화를 통해선 자연을 사랑하는 그림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비운의 천재화가였던 장승업이 청대 화풍의 영향을 받아 조선 회화의 전통을 끊어놓았다는 비판을 받는다는 것에 대해선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가 그린 <영모도 대련>이란 그림을 보면 다른 걸 다 떠나서 살아서 나를 노려보는 듯한 매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놀고 있는 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책장을 다 넘기고 난 후 아쉬움은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들을 통해 달래보려 한다. 봄기운이 완연한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화훼영모화는 나에게 가슴 떨린 봄바람을 선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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