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 용서받을 자격과 용서할 권리에 대하여
시몬 비젠탈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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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죽을 때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저질렀던 악행이나 비리에 대해 참회를 하는 경우가 많다. 용서를 바라는 의미도 있겠고, 반성의 의미도 있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자기 자신에게는 참회나 반성의 계기가 될진 몰라도 그 행위로 인해 고통받았고, 현재도 계속 고통받는 사람들에겐 너무나도 잔인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참회하고 반성하고 있으니 자신의 죄를 사하여 준다거나, 이제 죽을 때가 됐으니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었으면 한다는 그들의 참회가 어떻게 생각하면 화가 난다. 물론 그들의 진정성 있는 고해나 고백을 폄훼하고 싶지는 않다. 단, 거기까지다. 어느 누구도 가해자의 범죄나 악행으로 인해 희생이 된 사람들의 용서를 대신할 수 없다. 용서는 피해자가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피해자는 하늘에서 가해자를 지켜보며 읊조릴 것이다. “당신이 죽어서 무덤에 묻혔을 때 그 무덤가에 피어나는 해바라기조차도 보기 싫다고, 그 해바라기를 뽑아 없애버리고 싶다”고 말이다.


킬링필드로 불리는 캄보디아 내전, 르완다의 종족 분쟁, 보스니아 내전, 그리고 지금도 진행 중인 시리아 내전은 학살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는 게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인데 학살된 수만 해도 600만 명이 넘으니 정말 인간의 광기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한 가운데 있던 군인 한 명(카를)이 시몬 비젠탈에게 사죄와 반성을 하게 되면서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는 시작한다. 죽어가는 나치 병사가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수감 중인 한 유대인에게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용서를 구했지만 그 유대인은 침묵했다. 그 침묵이 용서의 의미였을 수도 있고, 그 용서의 거절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나치 병사의 용서에 침묵한 시몬 비젠탈은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남긴 채 53명의 답변으로 그 질문을 대신한다. 53명의 면면에는 티베트의 불교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도 보이고, 후기 산업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남긴 철학자인 허버트 마르쿠제도 용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남겼다. 영화 <킬링 필드>의 실제 주인공인 디트 프란, 198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데스먼드 투투 등 세계에서 정치, 역사, 윤리, 문화, 종교 등 각 분야 유명 인사들의 답을 통해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지, 아닌지를 밝히고 있다.


다른 고결한 행동들과 마찬가지로 용서라는 행위는, 용서받는 당사자들을 포함한 타인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즉, 내가 베푼 자비조차도 가까이서 뜯어보면 일종의 오만한 행위로 드러날 수 있다. 어쩌면 내가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내가 상대방보다 우위에 선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즉, 내가 상대방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게 된다. “도대체 내가 누구이기에 감히 누군가를 용서하는가?” (본문 201쪽 中)


53명의 ‘용서’에 대한 답변에는 카를의 참회를 강하게 반대하는 입장의 목소리도 있었고, 종교라는 이름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통해 카를을 용서했어야 한다는 입장도 있었다. 그중에서 같은 종교인이면서 ‘용서’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낸 유대교 신학자 앨런 L. 버거와 가톨릭 수녀인 호세 호브데이의 답변은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내게 죄를 짓는 사람은 용서할 수 있지만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사람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앨런과 망각과 용서는 다른 듯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이고, 자신이 당한 악행을 떠올릴 때마다 용서라는 단어가 떠오르기에,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호세 호브데이 수녀의 말에서 용서라는 단어 속에 포함된 함의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해바라기는 기다림을 상징한다. 공교롭게도 이 책은 <해바라기>라는 이름으로 1976년에 출간됐다. 여기서 해바라기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가해자의 무덤 옆에 조용히 피어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참회하고 반성하기만을 기다렸을 거라고 본다. 그 참회와 반성을 피해자가 받아주고 용서해주는 것은 다음의 문제다. 먼저 자신의 잘못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거기에 대한 죄를 달게 받는 것이 가해자가 피해자를 위한 최선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이 세상엔 용서받지 못할 일들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무자비하고 폭력적인 학살이 자행되는 그곳에서 죽음을 당했던, 지금도 죽음을 당하고 있는 그들의 마음속이 어떠할지를 생각해본다면 과연 용서가 아름다울 수 있을지는 시몬 비젠탈처럼 침묵으로 대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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