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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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희생하거나 공공선(公共善)에 자신의 몸을 바치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어준다는 거 자체가 고귀하거나 순수함을 넘어서 사람이라면 하지 못할 그 어떤 선을 넘어서까지 지키고자 한 것에 대한 대리만족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예부터 내려오는 심청전이 대표적이다. 줄거리는 정말 단조롭고 뻔한 결말을 가지고 있지만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의 희생정신이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다. 중국 작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또한 피를 팔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허삼관의 이야기다. 어찌 보면 피를 파는 단순한 이야기지만 <허삼관 매혈기>속에는 중국의 감추고 싶은 역사가 들어 있고, 그 속에서 허삼관과 그 가족의 치열한 고군분투와 위화라는 작가의 글솜씨가 더해져서 이 작품이 많은 분들께 사랑을 받지 않았나 싶다.


이번 책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은 카라얀을 능가하는 지휘 솜씨로 관객을 휘어잡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위화의 무대에서의 문학과 음악을 지휘하는 손놀림은 눈이 부셨다. 소설이 아니라 산문집이라서 좀 더 자유로운 점도 있겠으나 그의 현란한 지휘 솜씨에 넋이 빠졌다고나 할까. “작가의 견해” 라는 말로 보르헤스의 소설에 갈증을 해갈하고, 멘델스존의 선율을 통해 개인의 경험과 상상을 훌륭하게 연주하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재해석하면서 멋지게 앙코르를 끝마쳤다. 첫 장부터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위화는 한점의 오차도 없이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작가(음악가)들의 문장과 음악 전체를 진두지휘하는 지휘자처럼 이끌었고, 때로는 시체를 검안하는 부검의처럼 정확하고 자세하게 문학의 선율과 음악의 서술을 해부해냈다.


작가들의 작품과 그 작품을 통해 나타난 작가들의 삶에 대한 비유와 평가 또한 이 책을 읽은 재미 중 하나다. “향수도 없고, 군더더기 화장이나 치장도 없이 맨발로 어슬거린다”는 표현을 통해 작품과 삶을 나란히 한 윌리엄 포크너가 얼마나 소박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었고, 경계 없는 작품 세계를 통해 ‘광활한 문학세계란 이런 것이다‘를 표현한 멕시코의 소설가 후안 룰포 부분을 읽으면서는 생소한 작가지만 그 작가의 작품세계가 무척이나 궁금해서 그가 쓴 작품들을 메모까지 하게 했다. 거기에 무한적으로 부드러움의 상징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극단적 날카로움의 상징인 카프카를 비교하는 문장에서는 ‘위화가 작가들의 면면을 정확하게 이해하면서 통찰하고 있구나’를 느낄 수 있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서술에서 응시를 통해 영혼과 사물의 거리를 단축시킨다면 카프카는 절단으로 그 자리를 넓힌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육체의 미궁이라면 카프카는 심리의 지옥이며,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만개한 양귀비꽃처럼 혼곤한 잠으로 이끈다면 카프카는 혈관에 헤로인을 투입한 듯 강렬한 흥분을 일으킨다.(본문 41쪽 中) 이 문장만으로도 야스나리와 카프카의 문학에 빠지고 싶지 않은가? 아름다운 첫 문장으로 손꼽히는 <설국>도 유명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이즈의 무희>를 통해 야스나리 특유의 부드러움을, 카프카의 <유형지>를 통해 카프카 작품의 명료함과 날카로움을 여러분들도 함께 음미했으면 좋겠다.


정치적인 용어 중에 ‘확증 편향’이라는 말이 있다. 정보의 객관성과는 상관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나 성향을 선택적으로 수집하는 걸 말한다. 한마디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는 것만 믿는 현상을 뜻하는데, 사상뿐 아니라 예술에서도 이 확증 편향의 편식이 심하다. 이 현상을 위화는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작곡가인 차이콥스키를 통해 확증 편향에 대한 경계의 메시지를 보낸다. 차이콥스키의 내적 역량과 음악적 순결함을 곱씹어 보고, 다시 읽기를 통해 차이콥스키와 톨스토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부탁하고 있다. 그렇다. 문학과 음악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누구나가 감정을 표출할 수 있다. 다만 그 감정으로 인해 이유 없이 거장들을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사유를 갉아먹는다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위화의 책 제목처럼 문학에서 선율을 느끼고, 음악에서 서술을 보았다면 그것 또한 여러분의 정신적인 성숙도를 한 단계 높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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