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위안 - 어느 날 찾아온 슬픔을 가만히 응시하게 되기까지, 개정판
론 마라스코 외 지음, 김설인 옮김 / 현암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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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태풍을 시샘하기라도 하듯 밖에는 비가 내린다. 강한 바람과 함께 창을 내리치는 빗소리가 그리 싫지만은 않다. 뜬금없는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 빗소리가 슬픔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모조리 쓸어가 버렸으면 좋겠다. 그럴 리 없겠지만. 책 한 권을 읽고 이렇게 마음의 동요가 일었던 적도 없었지 싶다.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견디지 못할 슬픔이 찾아온다면 어떻게 될까? 이 질문에 수없이 머리를 짜내어보지만 뚜렷한 해답은 보이지 않고, 지난 추억이나 흘러가버린 강물처럼 언젠가는 견디지 못한 슬픔도 희석되어 견디게 되고, 그 견딤을 계기로 새로운 날을 살아가겠다란 막연하고 원론적인 생각만을 해보게 된다.


슬픔 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 인간에게 닥치는 가장 극한의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병이나 불의의 사고, 노화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거나 죽게 되었을 때 곁에 있던 사람들이 느끼는 슬픔과 상실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거 이상으로 무거울 것이다. 그 무거움을 감당해야하는 사람들에게 무게를 덜어주기 위해 같이 들어준다고 해서 그들의 슬픔이 가벼워질까? 그 슬픔을 같이 애도한다고 해서 그 상실에 대한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슬픔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고, 그 어떤 것으로도 충족될 수 없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은 고통스럽고, 괴롭다. 거기에 ‘소외감’이라는 감정이 슬픔에 달라붙는 순간 그 감정은 순식간에 한 사람을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가기에 충분하다. 그렇기에 슬픔에도 위안이 필요한 것이고, 그《슬픔의 위안》을 통해 슬픔을 긍정할 수 있고 희석할 수 있다면 슬픔이라는 감정 또한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꼭 연습해야 하는 하나의 통과의례라고 생각한다.


슬픔에는 절대적인 것이 없다. 쉽게 견딜 비법도 없고, 빠져 나갈 구멍도 많지 않다. 사별의 슬픔처럼 개인적인 경험을 이해하고 나면,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사람과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슬픔을 이해하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책은 그 길을 가는 동안 동행해줄 뿐이다. 슬픔은 아주 개인적인 경험인 만큼, 책을 읽다 보면 분명 당신은 독특한 상황에 맞는 길을 찾아낼 것이다. 부디 그러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존재 이유다. (프롤로그 中에서)


책에서는 슬픔에 맞닥뜨리고, 슬픔에 빠지고, 슬픔에서 빠져나오고, 나중에 가서는 슬픔의 흔적이 남는 과정을 비교적 자세하게 설명한다. 큰 슬픔을 경험했을 때 사람들은 참을 수 없다고 말을 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했을 때 그 죽음에 대한 슬픔은 참을 수 없다. 하지만 ‘슬픔은 참아야할 무엇이자 우리가 짊어져야할 무거움’이라고 책에서는 말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뒤 떠오르는 생각이나 영상들은 그 슬픔의 무게를 구성하고 이 슬픔을 참을 수 없게 만들어버리지만 그 무게는 누구에게나 무겁고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를 힘들게 하는 슬픔의 짐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짊어질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죽은 사람의 물건(소지품) 또한 슬픔을 배가시키는 한 요소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 당일엔 막상 슬프지도 않고,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는 분들의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아둔 엄마의 신발을 보거나 옷장 속에 걸려 있는 아빠의 땀 냄새가 베인 점퍼를 본 후 극도의 슬픔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모든 게 물건 속에 들어있는 의미가 가볍지 않아서일 것이다. 죽은 사람의 물건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는 우리의 중요한 일부이자 흔적이기에 떠난 사람의 소지품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런 물건들이 내 손을 떠나 바깥세상에 나간다면 나만큼 그 물건들을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물론 그 물건이나 소지품이 나에겐 무척이나 소중하겠지만 그 물건들을 언제까지 내 곁에 둘 수 없을 테니 죽은 사람의 물건이나 소지품에 그렇게 큰 미련을 두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바로 ‘탐닉’이었다. 그 중에서도 사별이나 죽음을 경험한 사람에게 탐닉은 큰 위안이 될 수 있다는 부분에서는 큰 충격이었지만 이 부분을 읽고 난 후엔 탐닉도 위안이 될 수 있다는 말에 공감을 하게 됐다. 사별이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로하는 흔한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탐닉’이다.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 속에서 불현듯 식욕에 대한 욕구가 찾아오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빠져들고 싶은 탐닉의 또 다른 영역이 충격적이게도 섹스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테지만 먹는 것이나 성적 욕망을 품는 것, 사랑하는 것 ,무언가를 미치듯이 탐닉하는 것들은 인간의 육체적인 본능임과 동시에 영혼의 본능이기도 하다는 것을 전제로 두자. 그리고 그 전제를 바탕으로 죽어가는 누군가를 보살피고 있거나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고 있다면 죽음과 멀리 있다고 느끼려는 이 탐닉을 정상적으로 이해하고 바라봐달라고 책에서는 당부하고 있다. 슬퍼하는 사람에게 여유를 주면서 그 슬픔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그 무언가에 집중하는 그들의 탐닉 속에는 죽음에 대한 분노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길 바라면서.


음식과 달리 오명이 따를지 모르지만 사실 섹스에 대한 탐닉은 음식에 대한 충동과 그 뿌리가 같다. 생명에 대한 갈망이자 생명의 힘을 손끝으로, 온몸으로 느끼고자 하는 욕구인 것이다.( 책 본문 中)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죽음을 경험한다. 그 죽음을 통해 슬픔이 발생하고, 그 슬픔의 무거움과 가벼움 속에서 우리는 슬픔이라는 여행 속에 빠져든다. 책에서처럼 슬픔의 무게를 경험하고, 슬픔과 맞닥뜨려서 슬픔에도 빠져보고, 슬픔에서 빠져나오면서 지난 슬픔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는 리허설이 없고, 그 죽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오기에 슬픔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슬픔의 위안》이 죽음 때문에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분들께 그 슬픔을 반감시킬 순 없겠지만 책 제목처럼 슬픔을 위로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큰 힘이 될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분들이 슬픔의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고, 그 위로를 통해 직면한 슬픔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났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다른 책을 읽다가 책 속에서 작가에게 소개받아 읽은 책이 바로《슬픔의 위안》이었는데 죽음에 대해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들게 한 책이고, 우리말로 번역도 잘 돼 있어서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음에 관계자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렇게 괜찮은 책을 읽고 나면 책을 출판한 출판사가 괜히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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