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서로의 강렬함에 이끌려 사랑에 빠졌던 두 사람 폴과 수전, 그리고 그렇게 불타올랐던 사랑이 점점 변해감을 느끼게 되고, 마지막에 가서는 서로에게 깊은 상처만을 남긴 연애의 아픔으로 남았을 소설이 줄리언 반스의 《연애의 기억》이다. 그들이 했던 사랑의 기억 속에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 사랑의 달달함과 함께 첫사랑에 임하는 순수와 열정도, 남편의 폭력에 상처받은 깊은 슬픔도, 사랑이 계속 지속될 거라는 행복과 그 행복이 얼마 가지 못하고 파멸해가는 고통도 함께였다. 하나 이 모든 것들이 쌓이고 쌓이다 마지막에 가서는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그들의 사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는지 도통 모르겠다. 소설을 읽었음에도 뭔가 찝찝한 이 기분을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참, 좆같다.


《연애의 기억》을 전반적으로 흐르고 있는 테마는 남녀 간의 사랑이다. 그 사랑이 나이 차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 얘기가 이 소설의 기본적인 플롯인데, 과연 줄리언 반스는 풋내 나면서 실수투성이인 첫사랑을 기억하고자 이 소설을 쓰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 그(줄리언 반스)가 이 소설을 쓴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행복할 줄만 알았던 결혼생활이 두 딸을 낳고부터 점점 힘들어지더니 남편이 가하는 폭력성은 나날이 더 심해져만 가고, 그 폭력을 통해 여자로서의 수전은 생이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으리라. 이런 상처 덩어리들이 그녀를 비참하고 더 우울하게 만들었을 테고, 그 괴로움으로 인해 잠 못 드는 밤을 약간의 알코올이 그녀를 잠들게 만들었겠지. 그러다가 우연히 나간 테니스 클럽에서 풋풋한 폴을 만나게 되면서 수잔 그녀에게 사라졌던 여성의 아름다움을 되찾았을 것이다.


불처럼 훨훨 타오를 줄만 알았던 폴과 수전은 살아온 방식과 나이차에서 오는 세대 차이, 사랑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조금씩 차이를 보이게 되고, 그 차이가 점점 벌어지면서 영원하기만을 바랐던 그들의 사랑은 삐걱대기 시작한다. 돈이 없어도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폴과 사랑을 하며 같이 살려면 방 한 칸이라도 빌릴 수 있는 돈이 있어야 한다는 수전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이 그들을 점점 멀어지게 했으며, 그 괴리감을 좁히기 위해 술을 마셔야 했던 수전은 다시금 우울증과 알코올 중독이라는 깊은 늪 속에서 점점 파멸되어 가는데...


책 본문을 읽다 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그는 자살을 하는 사람처럼 사랑에 빠졌다.” (298쪽)

이 문장만으로도 폴이 얼마나 맹목적이면서 위태위태한 사랑을 했을지 짐작이 간다. 자살을 하는 사람처럼 사랑을 했다면 그 사랑은 분명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수전은 폴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했다. 그녀는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를 있는 그대로 보았고, 그를 있는 그대로 믿고 사랑했다. 그렇지만 폴은 달랐다. 처음엔 수전의 마음과 같았을지 모르겠으나 나중에 가서는 자살을 하는 사람처럼 사랑에 빠졌으니 폴이 했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에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중년 여인에 대한 연민이 아니었을는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 자신의 미래를 보면서 확률을 평가한 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 가운데 어느 것이 어울리는 전망인지 결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기질에 삶을 갖다 놓았다. 반면 그녀는 삶에 자신의 기질을 갖다 놓았다. 물론 그것이 더 위험했다. 기쁨은 더 주지만, 안전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본문 295쪽 中)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가 ‘은수’에게 외쳤던 저 한 마디가 수전이 폴에게 전하는 메시지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서로가 사랑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 사실 속에서 폴과 수전이 거짓 없는 사랑을 했다면 그들의 사랑은 그 누구에게도 손가락질 당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사랑은 두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그 사랑의 한 축인 수전의 목소리가 이 소설에 반영이 안 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수전이 이 소설에 화자로 등장한다면 과연 그녀는 무슨 이야깃거리를 우리에게 풀어놓을까? 이런 여운을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놓는다는 게 줄리언 반스의 필력이고, 그의 소설이 많은 분들께 사랑받는 요소일 것이다. 줄리언 반스의 사랑을 이 책 《연애의 기억》을 통해 확인했으면 좋겠고,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등장했던 문구를 통해 우리들의 연애의 기억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다시 한번 떠올렸으면 한다.


사랑에서는 모든 것이 진실인 동시에 거짓이다. 사랑은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한 가지 주제다.

(본문 304쪽, 331쪽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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