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시대 - 로마제국부터 미중패권경쟁까지 흥망성쇠의 비밀
백승종 지음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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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승리란 없다. 영원한 승자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었다가 머지않아 멸망이라는 나락에 빠지는 극적인 장면은 역사라는 무대 위에서 여러 차례 재현되곤 했다. 이러한 전승불복(戰勝不復)의 진리는 제국의 흥망성쇠에도 동일하게 적용돼왔다. 과연 무엇이 제국의 운명을 결정짓는가?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역사가 백승종 교수의 <제국의 역사>로 역사를 움직이는 힘과 원리에 대해 알아보자!


 


인류의 역사에 영원한 제국은 없다. 역사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처럼 밀물이 있는가 하면 썰물이 있다. 흥망성쇠는 마치 자연현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시간과 공간을 두 개의 축으로 삼아 끊임없이 일어난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의 운명을 바꿔놓았을까. 혹시 하나의 제국이 성장하고 붕괴하는 것은 생태계의 철칙일까. 우리는 지금 긴 역사의 흐름에서 어떠한 좌표에 위치하는 것일까.

 p.13



제국이란 무엇일까. 보통 한 명의 군주가 여러 언어를 사용하거나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다민족을 통치하는 국가 형태이지만 역사를 보면 실로 다양한 형태의 제국이 존재했었다. 세계사책 <제국의 시대>에서는 로마제국, 몽골제국, 오스만제국, 대영제국, 독일제국, 일본, 현대의 패권국가인 미국과 소련, 중국의 역사를 하나씩 살펴보며 제국의 흥망성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중요한 사건과 인물에 대해서 알아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가장 궁금한 제국의 부분부터 먼저 읽어보아도 무리가 없다. 



몽골제국은 세계사에 혜성처럼 등장하였으나, 갑작스레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한때 세계 최강의 초월적인 대국이었던 몽골제국. 제국의 흥망성쇠를 좌우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p.87



역사책 <제국의 시대>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제국은 몽골제국이다. 힘도 세고 민첩한 동물인 말은 상품을 운반할 때나 농사를 지을 때 사람을 도와 힘든 일을 척척해낸 가축이다. 말이 가장 극적인 효과를 낸 분야는 바로 전쟁이었는데 말이 투입되면서 전쟁의 규모와 전개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한다. 말이 끄는 전차나 기마 전사보다 위력적인 병기가 없었던 고대에는 기병대를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나라가 승리를 거두는 경우가 많았다. 말의 가장 잘 활용한 나라가 바로 몽골제국이다. 몽골은 기병 전법을 무기 삼아 세계 정복에 성공했고 동서양을 잇는 비단길에 많은 역참을 건설하여 교역에 질적 변화를 가져왔다. 


 


칭기즈칸은 단숨에 몽골족을 통일하였고 역사상 어느 왕조와도 비할 수 없이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2,300만 제곱킬로미터의 영토에 1억 명의 인구를 거느린 몽골제국은 기병대를 이끌고 러시아로 쳐들어가 대승을 거두었고(1236~1242) 헝가리, 아드리아해까지 진격했다. 지칠 줄 모르는 정복 사업으로 사상 유례없이 넓은 영토를 정복한 몽골 대제국은 잔혹한 정복자이자 억압적인 통치자였지만, 여러 민족이 고국에서 평화롭게 사는 것을 허용했다. 또한 비단길을 통해 다양한 방식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중국제 비단과 한혈마, 향료와 보석 등 다양한 상품을 서로 교환하기도 했고 동서양의 사상과 철학, 종교도 쌍방향으로 전파되었다. 



마르코 폴로 Marco Polo(1254~1324)는 용감한 베네치아 상인으로, 산맥을 넘고 사막과 대초원을 가로질러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그는 17년 동안 몽골의 쿠빌라이 칸을 섬겼다. 그는 중국에서 유럽보다 우수한 문화를 목격하고 돌아왔다고 확신하였다. 

 p.102


마르코 폴로는 허풍쟁이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하지만 모험적인 사람들은 <동방견문록>을 손에 들고 동방무역의 꿈을 키웠다. 크리스토프 콜럼버스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이 책의 애독자로서 동양으로 가는 직항로를 개척하는 데 사실상 목숨을 걸었다. 만약에 폴로의 책이 없었더라면 콜럼버스가 대서양 횡단을 실천에 옮길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스페인 세비야에는 콜럼버스가 애독한 <동방견문록>이 아직 남아 있다. 그는 책장을 넘기며 곳곳에 줄도 긋고 메모도 남겼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야말로 15세기 말에 시작된 서양의 '대항해시대'를 가져왔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영향력이 컸다.  

 p.107

 


세계사책 <제국의 시대>에는 제국의 흥망성쇠를 결정지었던 힘과 원리의 비밀과 더불어 다양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겼다. 역사에 허풍쟁이로 기록된 마르코 폴로가 언급한 화려하고 규모가 큰, 세계 어디에도 없을 번영한 나라가 바로 몽골제국이었다. 청년 마르코 폴로는 쿠빌라이 칸의 호의로 원나라의 관리로까지 임용되어 지금의 항주를 통치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용감한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 폴로가 직접 보고 세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며 번영한 국가가, 14세기 유라시아의 최강대국이 왜 무너졌을까? 내부 갈등, 흑사병 창궐, 한족에 대한 차별 등의 원인을 꼽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원인은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의 신무기 총포였다. 몽골제국이 흥했던 이유가 당시 다른 나라보다 빨리 말을 전쟁에 투입시켰던 것을 생각해 보면 몽골이 일어설 때도 그러했고 다른 강대국이 등장할 때도 군사력은 국가의 흥망에 결정적인 요소이다. 


 


세계사책 <제국의 시대>는 과거 제국의 흥망성쇠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에 이어 세계 경제 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현재까지 조명한다. 다음 패권을 두고 다투는 미국, 중국 중 세계를 이끌어갈 제국은 어느 나라가 될 것인가! <제국의 시대>를 읽으며 점쳐보는 것은 어떨지, 흥미로운 세계사책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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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장혜경 옮김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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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아온 명저 <사랑의 기술>에서 상실된 '사랑의 회복'을 위해 사랑하기를 멈추지 말라고 역설했던 에리히 프롬은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를 통해 보다 더 근본적인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은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미발표 작품으로 그의 마지막 8년을 함께한 조교인 라이너 풍크 박사가 엮어냈다. 생의 마지막까지 사랑에 천착했던 에리히 프롬, 과연 그가 공허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현대인에게 던지는 마지막 메시지는 무엇일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것을 향한 이런 사랑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인가? 프롬이 생각하는 사랑은 "항상 성장을 향한 적극적 관심을 담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이란 하나가 되고 온전하게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생명력 넘치는 모든 것을 향한 사랑은 이런 성장을 촉진하고픈 열정적 욕망으로 표현된다."

> p.6



언제부턴가 존재보다 퍼포먼스가 중요한 것으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처럼 연출하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살아 있다는 것은 사실을 경험하고 삶을 사랑하는 것 그 자체이다. 프롬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힘에서 '소외되어' 버렸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리히 프롬이 던지는 질문 '우리는 정말로 여전히 삶을 사랑할까?'은 큰 울림을 갖는다. 에리히 프롬은 경제, 사회, 정치 등의 현상을 깊이 들여다보고 우리가 스스로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탐색하고 우리의 삶을 여전히 사랑할 수 있도록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의 삶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살아 있음'의 감각이 중요하다.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되 잠시 멈추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우리의 세계에 두 발을 안정하게 딛고 서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자. 당신은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더 이상 우리 자신을 사물로 바꾸어서는 안 되며 우리는 사물의 주인으로만 존재해야 할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을 조정하지 않고 사랑할 때, 화가처럼 생명을 부여하는 관계 맺음을 통해 유리잔 같은 사물조차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사람이나 사물을 충분히 오래 바라보기만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말을 건다는 사실을 배운다. 하지만 어떤 것을 얻어내려 하지 말고 그것을 진정으로 바라봐야 한다. 진정으로 고요할 수 있어야 한다. 

 p.43



대량생산 체제하에서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끊임없는 소비로 채우려 하지만 그것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공허함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를 사물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사물의 주인으로 존재해야 하며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 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생명과 사물의 차이, 행복과 흥분의 차이, 수단과 목적의 차이,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과 폭력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삶에 대한 사랑을 향해 첫걸음을 뗀 셈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이다. 살아 있음을 감각하는 것이다. 공허함과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의미 없는 분주함이 아닌 자유롭고 자발적인 내적 활동성을 되찾아야 한다. 


활동적 인간, 생산적 인간에 대해 한마디 하고 넘어가야겠다. 그는 흔히 말하는 분주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내면에서부터 활동적인 사람, 활동적으로 세상과 관계 맺는 사람, 세상과의 관계 맺음과 연결이 내면의 필연성인 사람이다. 그는 삶의 과정에서 쉼 없이 변하고, 모든 행위에서 같은 사람이 아니며, 정반대로 모든 행위가 동시에 그의 인성 변화다.

 p.227



활동성은 강제된 분주함이 아닌 잠시 멈추어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힘을 의미한다. 잠시 멈추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홀로 고립될 염려 때문이다. 하지만 활동성을 되찾은 사람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활동적 인간이란 내면에서부터 활동적인 사람, 활동적으로 세상과 관계 맺는 사람, 세상과의 관계 맺음과 연결이 내면의 필연성인 사람이다. 우리가 변함없이 삶을 사랑할 수 있는 힘, 그것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의 모습을 깨닫고 진정한 창의성과 활동성을 되찾기 위한 연습을 시작하면 삶을 사랑하는 능력을 회복할 수 있다. 우리는 삶을 사랑하는 '삶'을 선택할 권리와 자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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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욕심이 생겼어
요시타케 신스케 지음, 고향옥 옮김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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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타케 신스케의 그림책을 좋아한다. 삽화도 귀엽고 무엇보다 기상천외한 발상은 매번 나를 놀라게 만든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번뜩이는 재미를 포착해 내는 요시타케 신스케, 이번에는 욕심에 대한 에세이다. 에세이 <살짝 욕심이 생겼어>는 인간이 느끼는 '욕심'이라는 감정을 그와 아주 가까운 곳에 서서 자세히 들여다본다. 욕심이 가진 솜털(?)과 땀구멍(?)까지도 볼 수 있을 근거리에서 애정을 듬뿍 담은 눈으로 말이다. 욕심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감정이었나, 스스로 어쭙잖은 개똥철학의 끝판왕이라고 했지만 <살짝 욕심이 생겼어>을 읽고 나니 어쩐지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더 욕심내며 살아가야겠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애정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좋은 일이 없더라도 '행복 예감'만 있다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이란 말이에요, 실제로 좋은 일이 전혀 없어도 '오늘의 운세'에서 나온 '대길'만으로도 '이야, 오늘 운세 좋군'이라며 행복해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대길이란 두 글자만 봐도,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어, 내일 갑자기 멋진 사람이 나를 안아줄지도 모르지, 하며 긍정적으로 사고하게 되니까요. 

에세이 베스트셀러 <살짝 욕심이 생겼어> 짧고 좋은 책구절 / 글귀 p.45



 


행복이란 실제로 마음이 행복한가, 충만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충만해질 수도 있다는 예감이 발동하는가의 여부로 결정될지도 모른다(p.45)는 대목에서 무릎을 탁 쳤다. 끝이 없는 긴 터널 같은 코시국에 세 아이를 가정 보육하다 보면 정말이지 인내심이 바닥이 나버리기 일쑤다. 엄마는 엄마대로 식사 세 끼를 챙겨 먹이는 것도 힘들고 답답한 세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온종일 서로 장난감을 두고 괜히 투닥거린다. 이렇게 몇 년을 더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눈앞이 깜깜하다. 매일매일 행복한 시간이 아니라 매일매일 행복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나는 정말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때 앞으로는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고 '행복 예감'을 발동시켜 보자. 상황은 나아지고 있고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 보자. 그렇지 않으면 어떠랴. 요시타케 신스케의 마법은 장난 같지만 효과는 제법 좋다. 



 


마음에 끼는 장갑이 필요합니다.

일단 쿠션 역할을 할 만한 것을 마음속에, 생각 속에 넣어둔다면 의외로 많은 것을 쉽게 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만일 장갑을 꼈을 때 생기는 감각의 변화가 마음속에서 일어난다면, 대하기 껄끄러운 사람도 조금은 편하게 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장갑을 끼면 만질 수 있는 것이, 정말이지 훨씬 많아질 거라고 봅니다.

 p.51



 


제 아이와 동료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실패해도 괜찮다고. 그리고 저도 누군가에게서 이런 말을 듣고 싶고요. (...)

실패를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못 한다, 일단 해보자, 라고 마음먹었을 때 담당자에게 어느 선까지 실패해도 되는지를 미리 물어 분명하게 알 수 있다면 마음이 좀 편해지지 않을까요? 솔직하게 소통할 수 있다면 저는 용기를 낼 수 있을 거 같거든요. 마음이 놓일 것도 같고요.

 p.109



내 마음이 상처받지 않도록 쿠션 역할을 해주는 마음에 끼는 장갑이 있다면 어떨까? 실패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어느 선의 실패는 괜찮다고 미리 이야기해 주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욕심을 좀 부려 볼까? 마음에 끼는 장갑을 착용한 것처럼 마음을 내려놓고 나 스스로에게 관대해지자.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런 너그럽고 넓은 마음을 가지도록 스스로에게 욕심을 부려보자.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의 행복이 아닌 오로지 내 행복만을 욕심내 보자. 이렇게 욕심을 내는 것이 탐욕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요시타케 신스케 덕분인 것 같다. 에세이 <살짝 욕심이 생겼어>에 사랑스러운 그림과 문장들이 가득한 덕분인지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행복하고 싶은 욕심이 친근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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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집을 갖추다 - 리빙 인문학, 나만의 작은 문명
김지수 지음 / 싱긋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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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직장인들이 52시간 근무제로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 워라밸이라는 것에 전혀 무관심하거나 혹은 수용 자체를 거부하던 기성세대와,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MZ 세대 사이에 껴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던 나는 두 세대 사이에 그야말로 '낀 세대'다. 솔직히 워라밸에 대해서 살짝 어정쩡한 입장이다. 나는(라떼는!!ㅎㅎ) 신입 시절부터 팀장이 야근을 하면 할 일은 다 마쳤어도 눈치 보며 동반 야근을 했었는데 후배들은 일이 아직 남았어도 "선약이 있어서요."라며 당당하게 퇴근을 했더랬다. 그런 모습을 보며 한편으론 억울하기도 또 다른 한편으론 쿨하고 멋져 보여 '브라보!'하고 감탄했다.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은 사랑하지만 내 손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해 내는 수고로움은 즐기지 않는 성격도 특별한 라이프 스타일이랄 것을 가지지 못하는데 한몫했다. 그런 나에게 <가구, 집을 갖추다>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가구는 사람이 사는 집이라면 응당 갖추어져있어야한다고 생각했기에, 또 너무 익숙하게 자리 잡아버린 존재라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인문학책 <가구, 집을 갖추다>로 가구의 역사와 트렌드의 변화 그리고 숨은 이야기들을 만나보았다.



 


노위전 우드(Norwegian Wood)라는 표현의 애매한 울림이 이 음악과 그 가사를 지배하고 있다. 그 불가사의한 깊이야말로 이 노래의 생명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가구, 집을 갖추다>p.89


하루키의 작품들은 고독하고 우울하다. 때론 절박할 정도로 외로워서 몸부림을 친다.(...) 가장 대표적인 허무의 감성은 작품 <상실의 시대>에 녹아 있다. 원래 원제가 '노르웨이의 숲'인데 국내에서 일부러 제목을 바꿨다. 많이 알려진 사실이자 소설 속에 노골적으로 나타나 있는 부분인데,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스의 곡 <노위전 우드>에서 가져온 것이다. 

 <가구, 집을 갖추다> p.90



 


며칠 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한번 읽었다. 고등학교 때 이후로 삼십 년 만이다. <가구, 집을 갖추다> 덕분에 학창 시절에는 몰랐던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 책의 제목에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으로 이 제목은 비틀스의 노래 <노위전 우드>에서 가져온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wood를 숲으로 해석했는데 우드를 단수로 쓰면 가구라는 의미도 갖는다. 이 때문에 한때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은 오역 논란이 있었고 그전에 이미 비틀스의 팬 사이에서도 원곡에서 의미하는 것이 숲인지 가구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한다. 노래의 가사를 직역하면 숲보다는 가구가 문맥상 맞는다. 이야기는 숲이 맞느냐, 가구가 맞느냐가 아닌 노르웨이산 가구의 의미로 넘어간다. 비틀스가 노르웨이산 가구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세련된 북유럽 가구가 아니라 범용적으로 판매되는 소나무 가구를 의미한 거라고 한다. <노위전 우드>가 숲도 아니고 노르웨이의 세련된 가구도 아닌 싸구려 소나무 가구를 의미하는 거였다니! 놀랍고도 재미난 가구 이야기다.



황제로 즉위한 고종을 살펴보면, 곤룡포와 익선관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서구식 두발에 양복을 입었으며, '화'라 불렀던 왕의 신발 대신 광택이 나는 구두를 신었다. 고종이 앉은 의자는 신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좌측은 일월오봉도 앞에 늘 위치했던 위엄스러운 왕좌인 반면에, 우측의 의자는 웅장함보다는 격조와 품의가 느껴지는 서구식 의자로 유추된다. 

 <가구, 집을 갖추다> p.198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으로 전환되면서 맞은 리빙 문화적 관점에서 가장 큰 변화는 좌식 문화에서 부분적 입식 문화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라고 한다. 황제로 즉위한 고종은 조선 왕실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나전칠기 가구가 아닌 서구의 앤티크 가구를 들이기 시작했다. 조선 왕실의 단아하고 절제적이었던, 심지어 소박했던 좌식 가구들은 사라지고 대한제국 황실이란 개명된 이름을 갖자 입식으로 거듭나면서 무척 화려해졌다. 고종황제가 썼던 화장실의 세면대, 다이닝룸의 식탁은 물론 침실의 침대까지 모두 경복궁의 석조전에 전시되어 있다고 하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찬찬히 둘러보아야겠다.


 


인문 교양 에세이 <가구, 집을 갖추다>에는 가구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부터 요즘 유행하는 인테리어 스타일까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흥미로운 이야기와 유익한 정보까지 담겼다. 재미있는 가구의 역사를 쫓아가다 보면 당대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까지 모두 섭렵하게 될 것이다. 리빙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에게 추천하는 인문 교양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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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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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스퀘어>는 나조차도 내가 원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잘 모르겠던 시절, 아마도 '청춘'이나 '젊은 날' 정도로 이름 붙일 수 있을 그때의 모든 것이 담긴 소설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랑했음이 틀림없지만 당시엔 감히 사랑한다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그 시절에 느꼈던 감정과 감각 들이 모두 되살아났다. 아름답지만 돌아갈 수 없는 여름날, 아니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그 시절은 가슴 한 편에 뭉근한 통증으로 남아 있었다. 그 통증은 <하버드 스퀘어>를 읽으며 나에게 다시 찾아왔다.


아버지는 여길 좋아했었어요?

나는 그랬다고 대답했다. 아주 좋아했었다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좋아했었다는 뜻이었다.

"졸업하고 나서야 이곳을 좋아하게 됐지."

 <하버드 스퀘어> p.17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아들과 함께 여름 캠퍼스 투어 중이었다. 푹푹 찌는 여름날 함께 하버드 캠퍼스를 둘러보던 아들이 '나'에게  묻는다. "아버지는 여길 좋아했었어요?"  모든 게 신기루일지 모른다는 불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모래에 그린 선이 아니라 산골짜기처럼 느껴졌던 그때, 눈앞에 파티가 펼쳐져 있는데 초대받지 못한 느낌에 괴로워하던 과거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곳은 그에게 삶의 터전이 아니었고, 그의 고향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자신이 아니었고, 그가 될 수도 없었던 곳이다. 1977년의 케임브리지, 그곳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누군가를 생각해낸다.



7월 말 방학을 맞아 텅 빈 하버드 캠퍼스에 거의 홀로 남겨지다시피한 '나'는 영문학 박사 학위 취득을 위한 첫 번째 종합시험에 떨어졌고 딱 한 번의 재시험 기회가 남아 있었다. 17세기 문학에 관한 모든 책을 육 개월에 걸쳐 다시 읽기로 결심한 뒤 어느 날, 카페 알제에 죽치고 앉아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고 있을 때였다. 무슨 주제든 상관없이 랩을 하듯 따다다다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주머니가 많이 달린 빛바랜 군복 윗도리를 입은 많아야 서른네 살 정도 돼 보이는 남자의 이름은 칼라지였다. 그는 노란색 체커 택시를 모는 택시 운전사로 낮 동안은 카페 알제를 비롯한 하버드 광장을 돌며 여자를 꼬시고 밤에는 택시 운전대를 잡으며 돈을 벌었다. 


그는 택시운전사였고 나는 아이비리그 학생이었다. 그는 아랍인이었고 나는 유대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린 즉시 역할을 바꿔서 살아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등 떠밀려 시작한 방랑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행성에 속해 있었지만 나는 이 행성에 속해 있다는 확신이 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세상을 사랑했고 사람들을 이해했다. 누군가 그를 힘껏 밀쳐도 그는 곧 중심을 잡고 자기가 갈 방향을 찾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도 항상 제자리를 벗어나 있었고 항상 뒤처진 느낌이었다. 

 <하버드 스퀘어> p.74



칼라지와 함께 하는 동안 늘 그는 양가적인 감정에 휩싸였다. 뭔가에 길들여지고 억눌려 있었던 그와 달리 제멋대로인 칼라지가 부러웠고 항상 그를 배우고 싶어 했다. 한편으론 그와 함께 하는 모습이 남들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다. 열네 살 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이집트에서 추방되었던 '나'는 튀니스에서 자랐지만 열일곱 살이 되던 해 프랑스로 쫓겨난 칼라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서로 거울을 보듯 비슷한 면이 많은 그들이 다른 점이라면 칼라지는 택시운전사였고 '나'는 아이비리그 학생이었다는 것이며 칼라지에겐 없는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칼라지는 곧 추방될 위기에 몰려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내가 물었다. "말해봐요."

칼라지는 숨을 가다듬었다.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을 위해 내가 요리를 해서 상을 차렸어. 다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고. 근데 나는?" 그가 잠깐 망설였다. "에 무아(나는)?"

<하버드 스퀘어> p.271



칼라지와 '나'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조촐하게 파티를 열었다. 칼라지가 만든 고기 스튜와 나머지 친구들이 가져온 술과 음식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중 칼라지가 갑자기 문을 쾅 닫고 침실로 들어가 버렸다. 어둠 속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칼라지는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을 위해 내가 요리를 해서 상을 차렸어. 근데 나는? 나는 뭐냐고?"라고 말하곤 흐느껴 울었다. 그는 곧 추방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고, 튀니스를 떠나기 전보다 더 가난한 상태였다. 그 어두운 침실에서 흐느껴우는 칼라지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칼라지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생각, 그가 여기서 모든 것을 망치고 모든 것을 잃는 모습은 자기 자신보다 딱 세 걸음 앞서가는 자신의 운명이라는 생각. 주인공이 두 번째 종합시험에 떨어지면 칼라지와 동일한 운명에 놓이게 된다. 


"알겠어? 난 자신이 죽어가는 걸 알면서도 만찬을 준비한 요리사가 된 기분이야. 다들 즐겁게 먹고 마실 뿐, 이 식사가 끝나면 요리사가 사라질 거라는 사실은 잊고 있지. 나는 그렇게 죽어가는 요리사가 되고 싶지 않아. 난 여길 떠나 다른 데로 가고 싶지 않다고. 난 도움이 필요한데,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아무도.

 <하버드 스퀘어> p.272



<하버드 스퀘어>를 읽는 동안 미래의 내가 잊지 않길 바라며 모서리를 접어두었던 어떤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오직 나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손 끝에 힘을 주어 모서리를 접었던 이유가 나에게 잊힐까 두려워서만은 아니라는 것은. 그것은 너무나 그립지만 결코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은 기억에 대한 표식이기도 했다. 뜨겁고 아름다웠던 여름, 청춘. 그 한 시절이 오롯이 담긴 소설 <하버드 스퀘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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