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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집을 갖추다 - 리빙 인문학, 나만의 작은 문명
김지수 지음 / 싱긋 / 2022년 2월
평점 :

회사원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직장인들이 52시간 근무제로 저녁이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 워라밸이라는 것에 전혀 무관심하거나 혹은 수용 자체를 거부하던 기성세대와,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MZ 세대 사이에 껴서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던 나는 두 세대 사이에 그야말로 '낀 세대'다. 솔직히 워라밸에 대해서 살짝 어정쩡한 입장이다. 나는(라떼는!!ㅎㅎ) 신입 시절부터 팀장이 야근을 하면 할 일은 다 마쳤어도 눈치 보며 동반 야근을 했었는데 후배들은 일이 아직 남았어도 "선약이 있어서요."라며 당당하게 퇴근을 했더랬다. 그런 모습을 보며 한편으론 억울하기도 또 다른 한편으론 쿨하고 멋져 보여 '브라보!'하고 감탄했다.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은 사랑하지만 내 손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해 내는 수고로움은 즐기지 않는 성격도 특별한 라이프 스타일이랄 것을 가지지 못하는데 한몫했다. 그런 나에게 <가구, 집을 갖추다>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가구는 사람이 사는 집이라면 응당 갖추어져있어야한다고 생각했기에, 또 너무 익숙하게 자리 잡아버린 존재라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인문학책 <가구, 집을 갖추다>로 가구의 역사와 트렌드의 변화 그리고 숨은 이야기들을 만나보았다.
노위전 우드(Norwegian Wood)라는 표현의 애매한 울림이 이 음악과 그 가사를 지배하고 있다. 그 불가사의한 깊이야말로 이 노래의 생명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가구, 집을 갖추다>p.89
하루키의 작품들은 고독하고 우울하다. 때론 절박할 정도로 외로워서 몸부림을 친다.(...) 가장 대표적인 허무의 감성은 작품 <상실의 시대>에 녹아 있다. 원래 원제가 '노르웨이의 숲'인데 국내에서 일부러 제목을 바꿨다. 많이 알려진 사실이자 소설 속에 노골적으로 나타나 있는 부분인데,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스의 곡 <노위전 우드>에서 가져온 것이다.
<가구, 집을 갖추다> p.90
며칠 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한번 읽었다. 고등학교 때 이후로 삼십 년 만이다. <가구, 집을 갖추다> 덕분에 학창 시절에는 몰랐던 재미있는 이야기가 이 책의 제목에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으로 이 제목은 비틀스의 노래 <노위전 우드>에서 가져온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wood를 숲으로 해석했는데 우드를 단수로 쓰면 가구라는 의미도 갖는다. 이 때문에 한때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은 오역 논란이 있었고 그전에 이미 비틀스의 팬 사이에서도 원곡에서 의미하는 것이 숲인지 가구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한다. 노래의 가사를 직역하면 숲보다는 가구가 문맥상 맞는다. 이야기는 숲이 맞느냐, 가구가 맞느냐가 아닌 노르웨이산 가구의 의미로 넘어간다. 비틀스가 노르웨이산 가구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세련된 북유럽 가구가 아니라 범용적으로 판매되는 소나무 가구를 의미한 거라고 한다. <노위전 우드>가 숲도 아니고 노르웨이의 세련된 가구도 아닌 싸구려 소나무 가구를 의미하는 거였다니! 놀랍고도 재미난 가구 이야기다.
황제로 즉위한 고종을 살펴보면, 곤룡포와 익선관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서구식 두발에 양복을 입었으며, '화'라 불렀던 왕의 신발 대신 광택이 나는 구두를 신었다. 고종이 앉은 의자는 신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좌측은 일월오봉도 앞에 늘 위치했던 위엄스러운 왕좌인 반면에, 우측의 의자는 웅장함보다는 격조와 품의가 느껴지는 서구식 의자로 유추된다.
<가구, 집을 갖추다> p.198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으로 전환되면서 맞은 리빙 문화적 관점에서 가장 큰 변화는 좌식 문화에서 부분적 입식 문화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라고 한다. 황제로 즉위한 고종은 조선 왕실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나전칠기 가구가 아닌 서구의 앤티크 가구를 들이기 시작했다. 조선 왕실의 단아하고 절제적이었던, 심지어 소박했던 좌식 가구들은 사라지고 대한제국 황실이란 개명된 이름을 갖자 입식으로 거듭나면서 무척 화려해졌다. 고종황제가 썼던 화장실의 세면대, 다이닝룸의 식탁은 물론 침실의 침대까지 모두 경복궁의 석조전에 전시되어 있다고 하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찬찬히 둘러보아야겠다.
인문 교양 에세이 <가구, 집을 갖추다>에는 가구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부터 요즘 유행하는 인테리어 스타일까지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흥미로운 이야기와 유익한 정보까지 담겼다. 재미있는 가구의 역사를 쫓아가다 보면 당대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까지 모두 섭렵하게 될 것이다. 리빙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에게 추천하는 인문 교양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