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녀 - 꿈을 따라간 이들의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김남주 옮김 / 이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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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어린 소녀였을 때부터 사람들은 줄곧 나를 별종으로 여겼어요. 난 원하는 대로 살고자 했을 뿐인데 사람들은 나를 '미친 여자'라고 부르더군요. 이제 그런 것에 익숙해요."

<새소녀> p.217



 '다구' 그리고 새소리를 똑같이 흉내내 '새소녀'라는 애칭으로 불린 '주툰바'와는 그위친족 무리 속에 좀처럼 녹아들지 못하는 유별난 반항아들이었다. 새소녀는 부족의 여느 여자들처럼 바느질을 하거나 음식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없었지만 부족 내 다른 남자 아이들보다 더 용맹하고 재빠른 뛰어난 사냥꾼이었다. 그녀는 나이가 들어 사냥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사냥한 고기를 가져다주었고, 그녀의 아버지 조흐는 그런 주툰바가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주툰바는 '응당 그래야만 하는 무언가'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어버렸고 무리의 수장은 부족의 평화를 위해 그녀에게 혼인할 것을 명령한다. 



 


"아버지, 저는 이 땅과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요.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고 싶어요. 우리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들이 저는 궁금해요. (...) 저는 멀리 떨어진 산들을 보면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요. 아버지는 궁금하지 않으세요?"

 <새소녀> p.19



다구는 전설 속에 존재하는 남쪽의 따듯한 나라 '해의 땅'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아주 오래전 그의 조상들이 해의 땅을 찾아 떠나 몇몇은 그 땅에 이르렀고 몇몇은 중간에 돌아왔다고 한다. 한 노인이 자신의 증조할아버지에게서 전해 들었다며 해의 땅으로 가는 옛 지도를 하나 그려주었고, 다구는 그것을 소중한 보물처럼 품에 안고 다녔고 언젠가 해의 땅을 찾아 떠나리라 마음 먹었다. 그는 부족의 남자라면 응당 해야할 의무를 수행하기보다 주변을 탐험하고 동물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무리의 수장과 부족회의의 남자들은 이런 다구에게 불만을 표했다. 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사냥을 하는 것은 부족 내 남자들에게는 하나의 의무였다. 다구는 그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그의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거라. 그러지 않으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을 거야."

 <새소녀> p.152



결국 다구와 새소녀는 각자 무리를 떠난다. 둘은 자신의 꿈을 이루었을까? 거친 평원에서 자신의 무리를 떠난다는 것은 스스로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을 걸고 떠난 다구와 새소녀는 무엇을 얻었을까?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믿어야 해." 

그들은 믿음 없이는 나아갈 수 없음을 알았다. 

"난 나의 미래를 믿어야 해."

다구는 이제 자신에게 말했다. 

<새소녀> p.208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가진 것을 내려놓고 떠남을 선택하는 것이 위태로워 보이고 심지어 천지분간 못하는 행동으로 평가받는 것에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안락한 삶을 포기할만큼 그것이 가치를 가졌는가, 내려놓은 것만큼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겠는가. 다양한 각도로 인생의 가능성을 저울질하다보니 이제는 '행복'의 감각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요즘 나는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 어떨 때 가장 행복했는지 전혀 모르겠는 상태였다. <새소녀>를 읽고 깨달았다. 모험을 떠나는 것은 현재의 삶을 대체할만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무엇을 새로이 얻어야만 가치롭다는 기본 전제부터 잘못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모험을 떠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이고 모험을 떠나 무엇을 얻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인 것이다. 모험을 떠난 후 돌아온 나의 손이 빈털터리일지라도 모험을 떠났다는 것 자체로 이미 훌륭하다. 당신의 미래를 믿어라, 당신의 미래를 믿는 능력을 잃지 마라. 벨마 월리스의 <새소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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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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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디야르와 사는 전혀 예상도 못한 상태에서 죽음을 선고받은 듯 멍했지만 족장에게 한마디 말이나 행동도, 자신을 방어할 그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었다. 무리 중 칙디야르의 딸 오즈히 넬리와 손자 슈러 주 역시 족장의 결정에 순응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죽끈과 손도끼만을 남겨둔 채 무리와 함께 떠나버렸다. 굶주림에 지친 부족 사람들이 조금씩 멀어져가고 남겨진 두 늙은 여자는 모욕감과 수치심, 애통함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여든 개의 여름을 본 칙디야르와 일흔 다섯개의 여름을 본 사. 그들은 여전히 걸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도 버림을 받았다.



"그래, 사람들은 우리에게 죽음을 선고했어! 그들은 우리가 너무 늙어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여기지. 우리 역시 지난날 열심히 일했고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잊어버렸어! 그래서 지금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친구야.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고.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게 아니라면 말이야."

<두 늙은 여자> p.29



사는 칙디야르에게 말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고.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게 아니라면 말이야." 두 여인은 오즈히 넬리가 남긴 가죽끈으로 올가미를 만들고 토끼덫을 만들었고, 슈러 주가 남긴 손도끼로 나무다람쥐를 사냥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수많은 계절들 전에 사용했던 기술과 지식을 기억해냈다. 둘은 자신들이 약점을 보이는 순간 자신들을 움켜쥘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을 존재인 죽음이 두렵지만 생존을 위해 한발 한발 내딛기 시작했다. 둘은 아주 오래전 물고기가 풍부하게 잡혔던 곳을 기억해냈고 그곳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뻣뻣한 관절과 온몸의 통증을 무릅쓰고 무시무시한 추위를 뚫고서 오래도록 걷고 또 걸었다.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우리가 가려는 곳에 가까워지는 거야. 오늘 나는 몸이 좋지 않지만, 내 마음은 몸을 이길 힘을 갖고 있어. 내 마음은 우리가 여기서 쉬는 대신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해.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

<두 늙은 여자> p.69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우리가 가려는 곳에 가까워지는 거야.(p.69)" 칙디야르와 사는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몸이 좋지 않지만, 몸을 이길 힘을 마음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 결국 찾고자 하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 도착한 두 늙은 여자는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땔감를 모았고, 먹을 거리를 사냥해 저장고에 모아 두었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었고, 아마 그 다음의 겨울도 그랬을 것이다. 



"내 마음은 우리가 여기서 쉬는 대신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해.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p.69)" 라고 했던 사의 말처럼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우리는 원한다면 계속해서 성장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제 서른아홉 개의 겨울을 보았다. 내가 막 통과하고 있는 서른아홉 개째의 겨울과 곧 마주할 마흔 개째의 겨울은 분명 다를 것이다. <두 늙은 여자>를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는 같지 않을 것이다. 칙디야르와 사가 불가능에 도전해 무엇을, 어떻게 쟁취해냈는지 이제 나는 알기 때문이다. 내가 보낸 시간들은 분명 내가 나아가려는 길의 변곡점마다 잊고 있었던 가치로운 무언가를 꺼내놓을 것이다. 내가 보낸 시간들의 의미와 가치는 언제고 유효할 거란 걸 두 늙은 여자를 통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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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생이 간다 15 : 그리스 - 세계 문화 여행 용선생이 간다 15
사회평론 역사연구소 지음, 김지희.전성연 그림, 홍수연 감수, 이우일 캐릭터 / 사회평론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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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과과정과 연계되어 재미있게 읽다보면 어느새 쑥쑥 역사와 세계사 지식도 쌓이고 공부도 되는 학습만화 <용선생이 간다>로 요즘 정말 즐겁게 독서하는 중이랍니다. 다양한 나라의 사진과 귀엽고 개성있는 캐릭터와 스토리로 초등독서를 위한 책으로도 너무나 추천해요! 오늘은 학습만화 <용선생이 간다>와 함께 그리스로 떠나봅니다! :)



신들의 나라라고 불리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는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오래된 도시인데요,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해요. 아테네의 모습이 한 눈에 보이는 사진을 보니 정말 유구한 역사를 느낄 수가 있네요. 정말이지 코로나가 종식되면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나라 중 하나예요.



바나나 우유 한 잔씩들 하며 학습만화 <용선생이 간다> 읽는 우리 아이들, 실사와 만화가 함께 수록된 책이 더 재밌다며 요즘 용선생에 푹 빠진 아이들이에요.



그리스는 예로부터 섬과 산이 많아서 뿔뿔이 흩어져 살며 크고 작은 '폴리스'를 이루며 살았는데요, 폴리스 언덕 위에는 외적으로부터 도시를 지키는 요새인 '아크로폴리스'도 있었어요. 그 아래에는 '아고라'라는 광장이 있어서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국가의 중요한 일을 의논하고 토론하기도 했지요.



아크로폴리스에는 신을 모시는 신전이 많이 있는데요, 에레크테이온 신전, 아테네 니케 신전, 파르테논 신전 등이 있어요. 그중에서 에레크테이온 신전은 아테네의 수호신이 왜 아테나가 되었는지 그 이야기가 남겨져 있답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약 2,500년이나 된 신전인데요. 기원전 5세기 황금기를 이끌었던 정치가 페리클레스가 당시 최고의 조각가들에게 만들도록 했다고 해요. (학습만화 <용선생이 간다> p.16) 예전에 얼마나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을지, 지금 남은 흔적만으로도 충분히 상상할 수가 있네요.



그리스는 6천여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로 인구는 우리나라의 5분의 1밖에 안 된다고 해요. 먼 옛날부터 전해지는 신들의 이야기인 그리스 신화는 지금 읽어도 참으로 흥미롭답니다. 서양 문화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신화가 만들어진 그리스, 정말 매력적인 도시네요. 즐겁게 읽기만 해도 세계사, 문화 지식이 차곡차곡 쌓이는 학습만화 <용선생이 간다>, 초등독서용 도서로 강추하는 이유네요 :) 해외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학습만화 <용선생이 간다>와 함께 재미있게 독서 여행을 떠날 수 있어요! 초등독서를 위한 학습만화로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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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 박서련 일기
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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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손대는 일마다 실패하는 참담한 시기를 겪었다. 결혼은 이혼으로 끝났고, 글 쓰는 일은 수렁에 빠졌으며, 특히 돈 문제에 짓눌려 허덕였다."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의 시작 부분이다. 언젠가 산문집을 내게 되면 이 단락으로 시작해야지 하는 결심이 있었다. 꽤 오랫동안. 이십 대 초반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첫 몇 문장을 보자마자 울어버렸다. (...) 한동안은 소원했으나 그전까지의 나를 낱낱이 알고 있는 나의 일기는 내가 왜 우는가를 정확하게 이해해줄 것이다.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p.8~9



작가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작가 그 자체라던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는 작가 박서련이 써온 일기 중에서 일부를 엮어낸 에세이다. 작가의 좀 더 내밀하고 솔직한 모습을 만날 수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원래 남들 읽으라고 쓴 일기보다는, 남들이 읽을 줄 모르고 쓴 일기 보는 재미가 쏠쏠한 법! 예전에 <더 셜리 클럽> 출간 기념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진행자였던 편집자가 질문을 하면작가의 대답이 시작하기까지 평균적으로 약 8초의 시간이 걸렸는데 에세이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을 읽고 나니 살짝 납득이 가더라는. 일단 일기에 비속어가(ㅋㅋㅋㅋ) 적지 않게 등장한다. 아마 라방때 자체 필터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추측하고 있다. 아무튼 작가의 정말 사적인 사생활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에세이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다.


 에세이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는 시간이 날 때 뭘 하는지, 어떤 연애와 이별을 했는지, 술자리에서는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그리고 가보지는 않았지만 작가님의 방이 주기적으로 얼마나 엉망이 되는지 이미 가본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웃음이 빵 터지는 문장들이 아주 많았는데, 몇 가지만 발췌해보자면...


"없었던 일로"는 소위 '칼로리컷' 다이어트 보조제다(나는 기본적으로 소화제라고 믿고 있다). (...)제품명이 멋지다. 머음껏 먹고, 그것을 "없었던 일로" 만든다는, 참으로 멋진 사고방식에서 나온 작명이 틀림없다. 물론 어떤 일도, 이미 일어난 일들은, 심지어는 상상된 일들 중 일부 또한, 결코 없었던 일이 되지 않는다.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p.39



웬 남자한테 잡혀 수박 모자이크병에 관한 인터뷰를 '당했다'.

(사진을 보여주며) 이런 무늬가 있는 수박을 보신 적이 있나요? 아마 인터넷에서 본 것 같네요. (...) 이런 수박을 먹으면 병에 걸리지 않을까요? 걱정되지 않으세요?뭐, 맛만 있으면 그만이 아닐까요......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p.169



충격파치료사 선생님은 치료 도중 "앗, 여기가 특히 안 좋으시구낭. 그럼 이 부분 위주로 지질게요?" 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는데 '지질'이 너무 자연스럽게 '조질'로 들렸기 때문에('조지다' 역시 표준어라도 하지만) 정말로 으스러지도록 조져지는 기분이 들었다. 

천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p.291



그녀가 기본적으로 소화제라고 알고 있다는(ㅋㅋ) 다이어트 보조제의 작명에 대한 생각, 모자이크병에 걸린 수박이라도 맛만 있으면 그만 아니냐고 반문하는 모습, 아픈 허리를 치료하던 도중 '지진다'는 말을 '조진다'로 들린다는 에피소드 등 <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를 읽다가 여러 차례 빵 터졌다. 


 


나는 평소에 작가들이 글쓰기적 시간의 바깥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참 궁금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여느 사람들처럼 배달 음식을 먹고, 게임을 하고, 사랑을 하고 이별도 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웃고, 울고, 또 기쁘고 행복해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글쓰기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고, 노력도 하는 모습을 보며 세상의 모든 책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사이사이 쓰는 일에 대한 고민과 힘듦에 대해 언급될 때면 살짝 경건한 마음까지 들기도 했다. 한 글자, 한 문장, 한 단락...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집을 만들어가듯 문장을 지어내고 단어를 쌓아올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독자의 자리에 서서 상상하는 것조차 참 어렵다. 작가들의 노력에 비해 책들이 너무 쉽고 소비되고 평가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지인인 혜언니는 소설 한 편을 완성하는 일이 왜 어려운지를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 "지금 쓰는 이 소설을 내가 완성하길 바라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세상에 원치 않는다고. 그러니까 안 좋은 일들이 자꾸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p.146)"라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끝까지 써내야 한다고, 아무도 원치않는 이 글을". 부디, 이 세상의 모든 작가가, 아무도 원치 않는 그 글들을 끝까지 써내길 바란다. 그리고 나도 이런 일기를 써보기로 결심했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할 글을, 가장 나 자신인채로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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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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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 동안 천천히 일어난 기적을 만지는 것이다.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시간의 형체가 바로 내 앞에 있는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재> p.11"



겨울과 너무도 잘 어우러지는, 쓸쓸하고 황량하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소설 <재>를 만났다. 느리게 흐르는 이야기 속 꿈을 꾸는 듯한 시어들은 둔중한 속도로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시간을 좇는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재>를 펼쳐들면 내 시간도 따라 더디게 흘렀다. 등장인물은 주인공 '나', 그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였던 '모', 모의 누나인 '현'과 현의 아들 '섭', 그리고 주인공의 연인 '수'이다. 주인공 '나'의 독백으로 이어지는 소설은 모진 마음을 먹은 가시가 돋힌 아름다운 문장으로 이야기의 집을 쌓는다. 이 집은 황량하고 슬프지만 아름답다!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인덱스 테이프로 표시를 해두는데 <재>는 그런 표식이 의미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아름다웠기에. 



"젊음은 때로 실패와 낭패를 미리 살기도 하는데 그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잠깐씩 나이 밖의 시간을 빌리는 친구들 말이다. 

나 역시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없었다. 나는 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청소년이었으니까. 흔히 찾는 이유처럼, 나 자신이나 가족에게 특별한 사건이나 사연, 그로 인한 난감함과 난처함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그 나이 때 친구들이 대개 그렇듯이 뜻대로 되는 것이 있을 리 없었고, 또 다들 읊어대는 그 삶의 뜻이란 게 무엇인지도 모르겠는, 그래서 조금은 우울하고 그래서 어눌한 학생이 나였다. 

 <재> p.40"



소설의 화자 '나'는 조금은 우울하고 어눌한 학생이었다. 뜻대로 되는 것도 없고 그 삶의 뜻이란 것도 모르겠는. 반대로 모는 중학교 때까지 축구 선수로 뛰었고 전교 석차 상위권에 머무를 정도로 성적도 좋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우연힌 기회로 모와 친해졌다. 모와 함께 지금은 빈 집인 그의 본가를 찾아 술을 잔뜩 마시는 일탈을 저지른다. 그저 잠깐 나이 밖의 시간을 빌려 술을 마시곤 대화를 나눈다. 가족이나 진학, 진로, 성적 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계절 이야기, 꽃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라도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모는 "걔는 뛰는 걸 보면 있잖아. 이상하게 모든 게 다 납득이 돼. 뛰어나구나, 영리하구나, 천재적이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저 사람은 정말 저것밖에 모르는구나.(p.48)"라고 말한다. 단 하나의 불로 세상 전부를 태우는 사람. 마라도나 이야기는 축구에 관한 이야기이자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정말 인간은 남의 불행을 통해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한 사람들은 더 불행한 사람을 필요로 하고, 부정한 사람들은 더 부정한 사람을 필요로 하며, 마음에 치부가 있는 사람들은 다른 이의 사랑을 치부로 만든다. 그런 사람들은 이야깃거리가 필요하지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이야기 밖으로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그저 적당히 멀리,보일 듯 말듯한 곳에 있어야 한다. 사라지기를 원하지도 않으며 잊을 용의도 없다. 자신의 레이더가 닿는 딱 그만큼의 거리에 남아 자신들에게 포착되어야 하고, 그로써 뒷담화 소스를 언제든 제공해야 한다. 

한국소설추천 <재> p.54"



이야기는 전환되어 모가 세상을 떠나고 장례식장에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인다. 모의 누나인 현은 미혼모이고 그녀의 아들 섭은 발달장애아이다. 섭의 특별함은 현을 불편한 사람에서 불행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현은 속 모를 미혼모에서 아픈 애 엄마가 되었다.(p.53) 장례식장 자리에서조차 모자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현은 누군가 자신을 애처롭게 볼 때 "동정할 거면 차라리 돈을 줘."라며 자신을 통해 뭔가를 얻었다면 대가를 지불하라고 했다. 남의 불행을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 불행한 사람은 더 불행한 사람을 필요로 하고, 부정한 사람들은 더 부정한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기에.


"훗날 수는, 내가 이 사랑에 더 성실했으니까 괜찮아, 라고 말했다. (...)

처음 나는 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랑에도 성실과 불성실이 있어서 어떤 사랑을 부지런하고 어떤 사랑은 게으르다는 말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성실이 필요하다면 그것이 사랑일까. 저녁마다 나에게 오기 위해 수에게는 성실함이 필요했을까. 성실해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 말하자면 사랑은 이미 성실을 속성으로 가지는 것은 아닐까.

<재> p.81"



"결혼은 사랑을 의무로 만드는 것이라고, 의무가 된 사랑이 사랑일 수 있느냐고, 수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제도가 된 사랑은 관계에 대한 권력으로 작동될 뿐이라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재> p.82"



주인공과 수는 9년을 사귀고 4년 동안 함께 살았다. 수와 함께 있어도 더는 수와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들이 함께 알고 있던 단어들이 다 옛말처럼 무용해져버렸고 둘은 헤어졌다. 헤어지면서 수는 주인공에게 말했다. "내가 이 사랑에 더 성실했으니까 괜찮아." 그는 사랑에도 성실과 불성실이 존재하고 어떤 사랑은 부지런하고 어떤 사랑은 게으르다는 그녀의 말에 납득하기 어려웠다. 수는 설치미술가로 마지막 고별 파티를 하고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목재로 만든 수의 작품을 태워 고기를 구워기로 한 고별파티에서, 주인공은 모와 비슷한 사람을 본다. 열아홉의 모가 서른을 넘기면 영락없이 그 얼굴이었을 사람을 보지만 이유없는 망설임 때문에 그를 외면한다. 그런 다음 모를 재회한 건 모의 영정사진이었다. 모는 그 다음날 재가 되었다. 주인공은 '탄생은 지나간 폐허를 시연하는 것이고, 생명은 끝없이 죽음을 확인하는 과정(p.152)'이라고 탄생, 생명,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실은 <재>의 절반 정도를 읽고나서야 이 작품이 소설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에세이인줄 착각했던 것이다. 그만큼 이야기가 내밀하고 사적이다. 사랑과 사랑 후에 남는 것들, 만남과 이별 후에 남는 이야기, 탄생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름답고 쓸쓸한 시어들로 그려져있다.. <재>의 문장들이 다 좋았다!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읽고 또 다시 읽을만큼, 넘겼던 페이지를 다시 돌아와 또 한 번, 다시 한 번 읽을만큼. 너무 좋아하는 책을 만나면 이상하게 더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가 어려워진다. 얼마나 좋고, 무엇이 좋은지 이야기하는 게 무용하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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