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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평점 :

온 힘을 다해 전력질주를 하는 심정으로 읽어내렸다.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까지 마주하고 나니 모든 것을 소진해버린 철지난 낙엽처럼 말라비틀어지고 바스라질 것만 같다. 작가 정유정의 이야기는 매번 읽는 것만으로도 내가 가진 에너지를 다 써버리게 한다. 상대의 숨통을 끊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폭군같은 장악력과 압도적인 서사력, 유려하고 유연한 문장들과 현실감 넘치는 인물과 이야기, 이 모든 게 그녀의 이야기에 열광하게 되는 이유다.
인간은 자신의 믿음에 따른 우주를 가진다. 결함도 결핍도 없는 완전성이 아내의 우주였다. 행복은 가족의 무결로부터 출발한다고 믿고 있었다. 이 믿음은 신앙에 가까웠다. 타협이 있을 리 없었다.
<완전한 행복> p.117
완전 무결한 행복을 위해 유나는 불행의 가능성을 하나씩 없애야 한다고 믿었고 그녀를 불행하게 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해나갔다. 전 남자친구, 전 남편, 심지어 가족까지 자신의 완전한 행복을 위해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에 맹목적이었다. 어렸을 적 가족의 부재로 인한 생겨버린 완전한 행복에 대한 집착과 욕망은, 그녀가 다시는 불완전한 행복 속에 스스로를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했을 것이고 그 신념 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렸을 것이다.
자신의 행복을 강탈해 완전한 행복을 누렸을 그녀의 언니, 재인을 미치도록 증오했다. 끝없이 제 것을 훔쳐가는 도둑년이라고, 그녀는 진심으로 믿었고 하나의 신념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 신념은 유나를 끝없이 내달리는 폭주기관차로 만들어버렸다. 자신의 행복을 가로막는 것은 그 누구든 거침없이 폭력을 가하고 난도질해버린다. 결국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녀는 방에서 도망쳐나왔다. 아니, 기억으로부터 도망쳤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후에야, 도망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정작 두고 왔어야 할 인형을 손아귀에 꽉 틀어쥐고 있었다. 그녀는 손목 혈관으로 불이 통과하는 걸 느꼈다. 기어코 기억이 열렸다. 송곳니에 덜미를 물린 강아지처럼, 속절없이 끌려갔다.
<완전한 행복> p.152
유나와 재인이 어릴 적, 어머니가 급작스럽게 신부전 말기 진단을 받았고 아버지는 퇴역 후 사업을 막 시작해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다. 가정부를 쓸만큼 여유롭지 않았던 탓에 가평 우혜리에 있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막내인 유나를 잠시 맡아주기로 했다. 하지만 오래도록 유나를 데려올 형편이 되지 못했다. 유나는 언니 재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훔쳐갔다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 그녀의 집까지도.
유나 대신 부모님과 함께 유년시절을 보낸 언니 재인에게도 완전한 행복은 부재했다. 동생을 대신해 가족 곁에 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렸고, 어린 딸을 떠나보냈다는 죄책감으로 재인을 향해 늘 날이 서 있던 어머니와 그런 큰 딸이 늘 안쓰러웠던 아버지 사이에서 긴장하며 살아왔다. 유나와 재인, 그 누구도 완벽한 행복을 누리지 못했지만 유나는 빼앗겼다는 상실감에 괴로워했고 재인은 누리지도 못한 채 빼앗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어느날 재인은 유나의 방에서 마구 잘려나간 오리 인형을 발견한다. 고무줄로 의자 등받이에 꽁꽁 묶여 눈알 한쪽이 뽑히고 배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물갈퀴가 갈기갈기 찢겨나간 오리인형. 마구 난도질당한 인형은 '재인' 이라는 이름표를 차고 있었다. 유나는 자신의 행복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그 오리인형처럼 난도질해버린다.
이제 행복해?
아내는 무표정하게 대답한다.
아니. 나는 참 운이 없어.
<완전한 행복> p.519
완전무결한 행복에 집착하는 유나는 타인의 행복에 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을 조종하고 지배하며 결국엔 가차없이 파괴해버리고 만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도 끝내는 '나는 참 운이 없어.'라는 자조섞인 말을 내뱉는 그녀를 보며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유나가 한장씩 쌓아올린, 완전한 행복이라는 이름을 가진 집은 결국 그녀의 손에 의해 무너져 버렸다. 카드로 지어진 그 집이 공중에 흩날리는 순간, 이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를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또 다른 누군가의 행복이 희생되어선 안된다는 사실, 내가 누리는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을 대가로 해선 안된다는 진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그 자리가 타인의 행복을 대가로 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자고, 그 어떤 행복이라도 타인의 행복을 침범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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