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말해요
조지 섀넌 지음, 유태은 그림, 루시드 폴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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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나요>

루시드 폴의 곡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외치는 나 지만
그의 곡 <보이나요>처럼

내 마음이 보이나요라는 가사처럼

말이 아닌 몸짓 표정 시선으로
내 마음이 전해지길 간절히 원하고
알아봐주길 바라는 마음

그런 바램이 담긴 곡이라
그 노래를 그 노래를 부른 가수를 좋아했다.

그 루시드 폴

제주도서 감귤을 키우며
홈쇼핑이라는 특이한 시장을 통해
자신에게서 나온 곡이 담긴 앨범과
자신이 키운 감귤을 담아 나 놓은 아티스트가 좋았다.

루시드 폴이 번역한 그림책

작가에겐 미안하지만
루시드 폴이란 이름으로
나도 모르게 끌린 그림책 <손으로 말해요>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손
모든 걸 하는 손.

잠을 깨우고
얼굴을 깨끗히 하고
몸에 기운을 돌게 하는 손

가끔
심심할 때
코를 청소하는 손

싫어 좋아 미안해
함께 해
혼자 있고 싶어
나의 마음을 대신 전하는 손

스스로 하는 손
도움을 주는 손
도움을 받는 손

매일 여러번
주고 받는 손

할머니 할아버지를 즐겁게 해주는
연주하는 손
춤 추는 손

스스로를
상대방을지켜주는
힘찬 손

나를 깨끗히 해주는 손
첫찌의 손

아이들과
손에 관해
손이 전하는 메시지와 느낌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 나누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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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 일러스트레이터미네이터 키크니의 주문제작 만화
키크니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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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노란 표지
저 멀리 들려오는 텔레파시를 감지하려는
미간의 주름, 신호를 받으려 머리 쪽으로 간 손가락의 주인공, 달걀 남자

책 키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여러 장르 중에서 만화도 무지 좋아하는 나.
결혼 전 내방의 수 천권이 넘는 만화를 보며 만화방 차리라 했던 우리 엄마.

주옥같은 만화와 만화가들의 생각과 표현에 울고 웃었다.
그렇지만 이 만화는 출발이 조금 달랐다.

작가의, 작가에 의한, 작가를 위해 만들어진 만화가 아니라
독자의, 독자에 의한, 독자를 위해 오로지 주문 제작한 만화라
어떤 만화일지 궁금했다.

사람들이 요청하는 질문을 통해 어떤 고민과 감정,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고
아 나도 그런데 하면 공감과 안도를 얻었다.

그리고 키크니가 주문 제작한 다음 장의 만화를 보며 처방전을 받는 묘한 기분도 느꼈다.
아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할 수 있다니 감탄하기도 하고,
급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위로와 위안을 얻기도 했다.

처음에는 한 장 두 장 페이지를 넘기며 질문과 작가의 만화를 살피다가
어느새 질문을 읽고,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거나 나라면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상상하는 나를 발견했다.

봄인 듯 봄 아닌
얇은 코트 입고 나왔다가 씽씽 부는 칼바람에 오돌오돌 떨다가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 묘한 계절

민들레 홀씨와 함께 불어오는 봄바람 같은 만화
할머니집 아랫목에 누워 점점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를 주는 만화

투박한 그림체지만
온갖 감정이 전달되는 만화

혼자만의 시간.
조금은 쓸쓸하고, 슬픈 시간
펼치면

크큭 하고 소리 내어 웃거나
시큰 하고 코 끝을 찡~하게 울려주는

메마르고 무미건조한 감성을 건드려주는 책
크니의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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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도 계약이다 - 안전하고 자유로운 사랑을 위하여
박수빈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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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자주 눈에 띄는 무시무시한 사건들

그 중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이야기도 섞여 있다.

​

데이트
자기만의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이
설레임과 두근거림을 안고
서로의 시간을 만들어 가는 일
눈이 부실 아름다운 작업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 폭력

아직은 어린 나이지만
자매와 함께 살아가는 나는
요즘 언니가 이야기하는 연애를 둘러싼 이야기가 알고 싶어졌다.


연애와 계약
참 안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달달하면서도 뜨거운 연애와 무미건조하고 차가운 계약이라니 말이다.

​

책과 함께
민망하지만 손에 꼽을 만큼의 썸과 연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

가장 선명한 우리집 남자와의 연애


연애 시작 전
연애 시작과 점화 최고조의 시기
결혼하기로 약속하면서 시작된 갈등과
동굴 안팎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초반에는 약간의 분노를 느꼈다.

(전문용어로는 ‘빡침’이라는 딱 들어맞는 표현이 있지만, 일단 나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바른 생활, 바른 언어!)

휴식을 즐기는 그에게 달려가, 분노의 문장을 읊었다. 당신은 알아야한다고….



하지만 어느새
우리집 남자 말고
나는 어떠했는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초반 동등했던 그와 나의 관계가
갈등이 시작되자 ‘나’와 ‘내 생활’이 흔들리고,
온 신경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흔들렸다.
이 사랑이 끝날까봐 초조해했었다.

P230
자나친 의존은 나 자신을 잃게 되고 상대방에게 종속 되게 한다.​

그러면서도
나의 심리와 나의 생각을 말로 전달하지도 못했다.
나 같은 마음으로 헤아려주길 바랬고,
내 맘 같길 바랬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는 없는데 말이다.

P109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우리의 관계에서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어렸고,
사람간의 관계에 대한 경험의 폭도 작았고,
무엇보다 나에게 여유가 없었다.

그건 연애 뿐 아니라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단 남 녀, 남 남, 여 여 간의 연애 관계 뿐 아니라
살아가면서
자의로든 타의로든 누군가와 관계 맺기를
피할 수 없는 나날 속에서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도 생각하게 되었다.

P126
결혼은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매우 특별한 결정이며,
내 인생의 여러 행로에서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하다고 여기게 되었다는 말이
조금 더 적절할 것 같다.
결혼을 할지 말지는
온전히 개인의 몫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혼의 시기도 상대도
부모나 사회가 아니라
나 자신이 정하는 것이다.



나를 사랑할 것
관계에 있어 나의 기준과 원칙을 세울 것
관계자 끼리 서로에 대한 예의를 다할 것


자기 결정권과 양성평등이란 단어에서
나와 아이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다정하고 좋은 엄마인 척 하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어떤 생각과 행동을 밀어붙이지 않았는지
나도 모르게
아이들의 생각과 말을 무시하거나 못 들은 척 했는지
때리지만 않았지 정신적인 폭력을
나도 모르게 휘두르진 않았는지 말이다.

​

연인이니까
부부사이니까
부모자식사이니까 허용되는 폭력이나 범죄는
없다는 말을 되새긴다.​

P226
어떤 이유로든 맞아도 되는 사람은 없으며,
어느 누구도 타인을 때릴 권리를 가질 수 없다.

​

P229
술이 취했으니 화가 났으니
그럴 수도 있다며 용인하는 순간
그 행동은 두 사람 사이에 허용‘된 것이 된다.

P217
여자 못지않게 남자들도 자기 몸을 지켜야 한다.

​

건강하고 아름다운 관계에 대해
생각과 행동의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책이다.
경험의 중요성도 잊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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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적나라한 민.낯. - 야동 끊은 한 남자의 진솔한 고백
허상 지음 / 에테르니(AETERNI) / 2019년 2월
평점 :
절판


대학시절, 친구와 버스에 올라탔다.
입학하고 얼마 안 되는 날이었다.
우리는 버스 뒷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맨 뒷자리에서 또래 남자애들의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대화의 내용은 서로에 대한 안부나 소개, 일상 이야기가 아니었다.

“예쁘냐?”
“난 걔가 이쁘더라.”
“순위를 매기면….”

그렇다. 그 아이들은 과 여학생(나를 포함해)들의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로 앞이 아니라 우릴 알아보지는 못한 듯 자신들의 얘기에 열중해 있었다.

친구와 나는 아주 불쾌했었다.
“할 얘기가 저것뿐인가?

허상 작가의 <내남자의 적나라한 민.낯.>을 읽으며 문득 떠올랐다.
그 남학생들과는 친해졌고, 대학 생활 내내 좋은 관계를 유지한 친구도 있고,
아닌 친구도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소꿉친구였고 1학년도 같이 보낸 남자 친구와 술래잡기 하다 껴안았을 때
주변 아이들의 반응(얼레리 꼴레리 좋아한대요~노래와 함께)으로 인한 문화적 충격에 이어,
두 번째 문화적 충격이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남자들의 마음? 여자와는 다른 남자의 심리? 그런 걸 느낀 시기였다.

우리집 남자와 생활한 지 10년째.
둘로 시작했지만 넷이 된 나날들.

10년의 세월을 살았고,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겠지만, 아직 그에 대해 잘 모른다.
그 역시 나에 대해 알 때도 있고, 모를 때도 있을 것이다.
서로 스스로의 선택으로 고른 배우자와 살아가면서 깨달은 것은
사람은 다른 게 당연하지만, 특히 남자와 여자를 다르다는 점이다.

생활하며 나와 우리집 남자의 ‘다름’을 알고, 내 나름대로 만든 가이드라인은 요 정도이다.

내가 받고 싶은 만큼 상대도 받고 싶어 한다. (마음이든, 도움이든, 선물(^^)이든)
내가 받고 싶은 만큼 상대에게 해 주면 나도 그도 좋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초코파이가 외친 ‘정’은 없다. 말해야 상대에게 전해진다.
의사표현은 직접적으로 확실하게 한다. 범위를 정해준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집 남자를 모른다. 어느 부분 알고 있다 정도?
(내가 이렇게 공들이고 알려하는 걸 그를 알고 있을까도 살짝 의문이 든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에
더욱 남자에 대해 알고 싶고,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종 성범죄가 범람하고,
남녀의 아름다운 연애시절에서 데이트 폭력이나 리벤지 포르노가 등장한 이 시점에서
더 그랬다. (청소년 소설 <나쁜 연애, 썸>을 읽은 영향도 있다. 좋아하는 사람(사랑, 연애)을 원하는 어린 아이들이 SNS로 성범죄에 노출되는 사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우리는 본래 동물이지만, 동물이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당신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에겐, 더 많은 ‘생각’이 필요해졌다.


작가 허상은
남성의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를 통해 여성이 스스로 위기 상황에 대해 미리 예방할 수 있는 처방전을 제시한다.

미투 운동, 여혐, 남혐 등 중도 없이 극과 극으로 성이 대립하는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성 대립에 있어 남자의 본질적인 이해가 없이 문제에 접근하는 현 세태에 대한 비판도 한다.

남자들은 왜 그래?
남자들은 언제부터 그래?
남자들은 다 그래?

영화를 보다, TV와 신문을 보다, 궁금한 것을 우리집 남자에게 묻는 나처럼
허상이라는 남성이, 남성과 남성의 성, 행동패턴이 궁금한 여성들의 질문에 찬찬히 그리고 자세히 이야기해주는 책이었다.

이야기를 전하는 방법으로 책 안에서 다양한 시도도 한다.
르포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성에 관한 남성들의 맨얼굴을 드러낸다.

수필을 통해 동물의 종족본식본능만이 아닌
인간의 연결되고픈 욕구 에로티시즘을 이야기 한다.

p128
아이는, 자신과 어머니가 하나로 연결된 존재인 양 어머니의 품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상대방과 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바로 이 지점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단편소설을 통해 연애할 때(특히 첫 연애 시기의)
남성의 심리와 행동, 남성과 여성의 다름에 대해 심도 있게 묘사한다.

p182
나는 순간적으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혹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 인거야?”
“다른 사람들이요?”
“이를 테면, 나든 누구든.”
“아, 뭐 되도록 있는 그대로 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뭔가를 바란다거나 누군가를 평가하려 든다거나 하진 않거든요.
그게 좋은 태도는 아닌 것 같아서요.“

그리고 여자들과 공생할 수 있는 새로운 남성성도 언급한다.

p93
일방적이지도 단순하지도 않은, 여러 방면에서 잘해가는 남성.
이데올로기에 자신을 가두지 않은 책 단지 자신의 남성성은 사는 남성.
타인의 의견을 충분히 들을 줄 알며 서로 존중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남성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우리는, 이러한 남자들의 미래를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는 제시한다.
1. 남자들의 속마음을 알아 볼 수 있는 관찰력 (남자보는 눈과 대화의 기술)
2. 남자들의 성에 관한 얘기에서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촉 (날카로운 감)
3. 내가 만나고 함께 하고 싶은 남자에 대한 정확한 상

하지만 이건 위기 상황에 대한 예방일 뿐이다.
작가도 언급했듯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남자들이 있다.
그들과 위기 상황 속에 놓여진 여성들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방안은 아쉽게도 없다.

여성들이 알아서 조심하고,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 탈출하는 게 아닌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도록 하는
남성들 스스로의 자제, 자정능력까지 나왔으면 좋았을 거 같다.
이건 여성 뿐 아니라 남성도 읽어야 하는 책이니 말이다.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로서
부모의 안정적인 관계와 가정환경,
가정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단 걸 책 전반에서 느낄 수 있었다.

딸 가진 엄마에겐 내 아이가 나쁜 남자가 아닌 좋은 사람과 이어질 수 있는 지혜를.
아들 가진 엄마에겐 남성, 여성을 떠난 공생가능한 사람으로 성장시킬 팁을 주는 책이다.

하지만
더 많은 남성과 여성이 공생의 길을 걷도록
자신의 생각과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길 시도한 작가의 용감한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

P111
나 역시도 여전히 남성과 여성, 여성과 남성 간의 이상적인 관계 및 서로에 대한 이상적인 태도에 관하여 완전한 해답을 찾았다거나 대단히 특별한 단서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던히, 지금 이 순간에도 남성과 여성의 화해를 꿈꾸며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한 사람이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나에게도, 이 사회에게도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첫발을 뗀 그의 뒤로
나를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어지리라 믿는다.

나는 알고 그를 알고, 그는 나를 알고 자신을 아는 것
남성과 여성의 근본적인 욕망인 연결
아름다운 연결로 이어지는 길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p.s.
언젠가 나올
여성 작가의 내 여자의 적나라한 민.낯.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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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스트라이크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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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며 떠오르는 두 장르의 작품이 있었다.

"어서 더 멀리 날아가. 네가 원하는 만큼, 어디까지든…“ p 300

한편은 뮤직비디오 On your mark
일본 남성 듀오 차게 앤 아스카의 노래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7분짜리 영상이다.
폐허가 된 미래도시. 연구실에 갇힌 날개달린 소녀를 구하는 두 청년.

오래전 모 개그맨의 “그래! 결심했어!” 외치며 두 가지 행동으로 인해 달라지는 결론을 맛보게 한 인생극장처럼 같은 인물, 다른 시간 배열, 구성 그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이야기가 흥미로운 애니메이션이었다.

마지막 빨간 차에 나란히 유영하듯 날아가는 날개달린 소녀의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다른 한편은 타이틀은 생각 안 나지만 공중파의 환경다큐멘터리였다.
서울 하늘 아래 개체 수가 많은 새, 비둘기.
더 이상 날지 않는 새, 먹기 위해 사는 새, 닭둘기 등
88올림픽 평화의 상징, 현재는 거리의 무법자이자 환영받지 못한 새.

“전 비둘기가 싫어요. 징글징글 합니다.
아무거나 주워 먹어서 몸은 뒤룩뒤룩, 깃털은 먼지 색깔에…” p 28

비둘기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

비둘기 포비아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새어 나오는 신음을 입으로 막아가며 봐야했다.
(강의의 참고 영상 중 하나였기에 나에게는 시청 거부권이 없었다.)

하지만 여태의 다큐멘터리와는 달랐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인간의 시선이 아닌 비둘기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들의 일상을 촬영했다.

카메라는 마치 비둘기 인양 땅에 딱 붙거나,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그런 시선으로 비둘기를 담아냈다.

비둘기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
위협이 가득한 무법지대 서울
사람들을 피해서, 경쟁자를 피해서, 도처에 깔린 장애물을 피해서

그러면서도
먹고, 마시고, 자고, 사랑하고, 번식하는
생명체로서의 비둘기의 생로병사에 나도 모르는 몰입했던 작품이다.

공포와 혐오의 존재가 아니라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생명체로서 비둘기를 봤던 거 같다.

비둘기는 비둘기다.
그 자체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나는 이 비둘기가 왜 싫은 거지?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
버드 스트라이크 Bird strike

조류 충돌
항공기의 이책륙 및 순항 중 조류가 항공기 엔진이나 동체에 부딪히는 현상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새도 항공기도 엄청난 타격을 주는 충돌이라고 한다.

책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사건.
버드 스트라이크.

익인들의 청사 습격 사건.
보통의 익인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익인 청년이 사로잡힌다.

익인 청년은 청사의 우두머리 시행의 이복 여동생을 인질로 삼아 탈출한다.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코끝이 시큼해지는 이 소설의 남녀 주인공,
루와 비오의 만남이 시작되는 사건이 제목과 같은 버드 스트라이크다.

1. 공동체 안에서 이질적인 존재였던 소년과 소녀, 그들의 성장 소설

청사 안에서 환영받지 못한 그래서 움츠러들었던 소녀 루는
익인들 사이에서 피도 모습도 조금 다른 혼혈 익인 소년 비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저는 제가 저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 말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었다.
청사의 다른 잘 나신 분들 눈에 자신은 노동자와 같은 신분으로 간주되고 있음을 안다는 것과, 그에 앞서 사람은 누구나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평생 청사에서 부족함 없이 떠받들려 살아오고 정해진 대로 약혼을 한 탄에게 그 의미가 잘 전해졌을지는 미지수였다. p24

청사에서 눈에 띄지 않도록 그림자처럼 생활했던 루는 비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비오에 대한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차별에 맞서 억눌렸던 자신의 생각, 감정, 주장을 꺼내며 스스로 성장한다. 소극적인 자세에서 적극적으로 삶을 개척하는 일인분으로서 성장한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의 휴식처로 남을 마음이 없어. 그래서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땅을 떠나기로 한 거야.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그럼에도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 유한한 인간이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라고 생각하니까. p295

순혈종이 아닌 혼혈, 보통의 익인과는 다른 자신의 날개,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고, 어느 부분 체념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자신을 대변해 주는 루와 루로부터 시작된 작지만 확실한 마을의 변화를 느낀다, 현실 회피가 아닌 진정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고민하며 여행을 떠난다.

얼룩의 자리를 옆은 기대감이 채워 나갔다. 비오는 한 명의 당연한 익인이었다. 도대체 날개가 있는데 익인이 아니라면 뭐란 말일까? p 157

2. SF·미래·판타지를 표방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소설

다른 도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신기하게 여겨질 테지. 좋은 말로는 신기하게, 평범한 말로는 낯설고 어색하게, 서로가 서로를 불길한 이물질로 느끼고 영원히 불가해한 평행선을 그릴 테고, 그 평행선을 잡아 꺽어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당기는 것이 연구자의 본능일지도 모르지만, 너는 무엇보다도 그 임무에 잘 어울리는 자질을 타고 났지만…“ p147

“우리는 우리를 지켜야 하니까요.” p 120

익인들의 모습과 생활은 제3세계의 공동체를 연상시켰다.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 필요한 만큼만 만들고 쓰는 삶,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

도시인들의 모습은 우리 현실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는 삶. 그로 인해 희생되는 동물과 자연들.
값싼 노동력으로 고용하고, 착취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불편한 모습들.

또 정상·보통이란 명목으로 행해지는 각종 차별들이 떠올랐다.
“비오와 같은 아이를 품지 못할 만큼, 초원조의 날개는 그렇게 작은 가요.” p 107

있을 자리가 없는 루와 비오와는 달리
있을 자리를 스스로 없애버리는 건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빌려 쓰는 지구를 망각한
우리 자신이라는 생각을 했다.

개발, 문명화라는 명목으로 시작하는 원치 않는 참견들, 편리와 바꾼 행복들.
이를 다시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 소설이다.

3. 사랑에 관한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다른 환경의 소년,소녀가 만나 경험하는 가슴 아픈 사랑,
벽안인과 익인이라는 종족을 넘어섰지만 헤어져야하는 비극적인 사랑,
사이코 기질이 있는 과학자와 귀족(?) 대학생 아가씨의 터프한 사랑,
냉정한 엄마와 소극적인 딸의 사랑,
익인 가족의 배려 깊은 때론 희생적인 사랑,
익인 공동체의 구성원에 대한 신뢰와 사랑,

슬픔과 안타까움이 있지만, ‘그래서 그들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식의 동화 같은 결말은 아니지만 여러 형태의 사랑과 자기 회복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소설이었다.

4. 버트스트라이크의 장르 : 영어덜트 소설

눈가리고 책읽는 당에게 주어진 단서 중의 하나 영어덜트 소설이다.

영어덜트. 처음 듣는 장르였다.
어리지만 조숙한 청소년을 위한 소설?
아님 어른이지만 소년·소녀 감성을 갖는 사람들을 위한 소설?
일본의 라이트 노벨과 같은 장르를 말하는 것인가?

한 번 소설을 읽었을 때는 느낌이 안 왔다.
두 번 소설을 읽고 보니, 주인공만이 아닌 스쳐 지나갔던 나레이션과 주변 인물들의 관계와 그들의 대화가 쏙쏙 들어왔다.

영어덜트 소설이 무언지 객관적이고 한 마디로 정의 내리는 문장으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감이 왔다.

“사람은 누구나 그 날 그 날의 감정에 충실할 권리.” p98 (내가 나를 대할 때)

“우리는 초원조의 아이들이지 다른 누구 소유가 아니라는 관념이 자리하고 있으니까. 그것이 서로 합의에 의한 일이라면 그리고 동시에 두 명 이상의 사람에게는 다리를 걸치지 않고 서로를 마주 보고 존중하는 관계라면, 오늘 이 사람과 사귀었다가 깨끗하게 헤어지고 내일 다른 사람과 결혼한대도, 관계에 충실히 임한 이상은 그걸 흐린 눈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p 89 (관계 맺을 때) (타인의 관계에 대한 생각)

“나는 비오에게 현실을 꾸준히 주입하여 자신의 위치와 처지를 일깨우는 역할이었고, 다니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우리의 귀한 익인 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고 포용하는 역할이었지.” p 92 (부모의 태도)

그러는 동안 지장은 한 번도 루의 말을 끊지 않고 가만히 듣기만 했다. p 103 (어른의 자세, 경청)

익인들은 나와 미래의 발걸음을 함께해 달리는 의미로, 청혼 상대에게 자신의 가죽신을 벗어 내민다. 대개는 꼭 맞지 앉게 마련인 상대의 신을 신고, 훗날 고난이 닥쳤을 때 배우자의 입장에서 한 번 더 고민하고 이겨내겠다는 다짐을 부탁하는 과정이다, p 58 (결혼의 의미)

신세대(젊은 독자)들에게는 세계를 향한 시선과 경험했고 앞으로 경험할 다양한 관계(자신에 대한 믿음, 존중, 역사 등) 들을 대하는 자세를, 구세대(특히 나와 같이 아이를 키우는 독자)에게는 새로운 세대와의 눈높이와 세대를 앞선 이로서의 자세(아이에 대한 태도, 경청 등)를 재미있는 작품 속에 녹아내린 소설이 영어덜트 소설이 아닐까 한다.

☆
버드 스트라이크

소년 소녀의 여정이라는 이야기 안에 다름의 인정,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새와 부딪히면 새만 부서지거나 엔진에 빨려 들어가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닌, 심하면 추락까지 피할 수 없는 타격. 새와 조종사가 지구 아래의 사람과 사람 일 수도 있고, 사람과 환경 또는 사람과 과학 일수도 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인거 같다.

“그냥 그대로 꼭 안아 주면 돼, 너의 두 팔로, 너의 가슴에…” p 11

“우리의 초원조는 …아기가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든 간에…생긴 그대로 품어 주었네.” p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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