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브 농장
이민주 지음, 안승하 그림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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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도 번쩍이는 네온 사인
빛이 지지 않는 낮과 밤 사이
한 청년이 걷고 있다.

집에 돌아온 청년을 기다리는 것은
강아지 한 마리와 편지 한 통.

시골에서 온 할머니의 편지에는
열쇠와 미션이 들어 있다.

다음날 청년은 할머니의 농장,
페브 농장으로 향한다.

"어서와, 페브 농장은 처음이지?"
청년이 강아지 프레스토에게 건넨 다정한 말이
내게 요렇게 바뀌어 들리는 듯 하다.

페브 농장은 아주 멋진(fab) 농장이다.
어릴적 추억이, 할머니와의 추억이 가득하다.
별 내리는 밤은 눈 감고 한숨 늘어지게 자도
좋다. 느림이 허락된다.

페브 농장은 여기서만 자라는 비밀 씨앗(feve)이 있다. 신비한 씨앗은 저마다의 소리를 낸다. 함께 노래한다. 경이로운 식물의 세계에 기꺼이 귀 기울이게 된다.

강약중간약 쉬고 강약중간약 찌이익 달아나고

몸과 마음의 이완 속에
나라는 존재를 심는다. 씨앗과 함께 내 마음을 심는다. 흔들흔들 방황했던 나는, 중심에 콕 자리른 잡는다. 시임~~ 시임~~~쉼~~~~심~~

청년의 심심함은
페브농장의 숨쉬는 생명체와 만나는 과정에서
숨과 쉼을 더해서 단단하고도 유연한 심신이 되어진다. 삶의 악보가 한 장 더해진다.

청년은 괜찮을 것이다.
페브농장에서 가져온 마음의 비밀씨앗이 있기에.
청년 주변을 페브농장으로 가꿀 경험을 했기에.

비밀씨앗 꺼내 마당 한 켠에 심어야겠다.
심심한 시간, 심금을 울릴 우리의 페브농장,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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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ㅇㅅㅎ 사계절 그림책
김지영 지음 / 사계절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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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한 번,
중학교 때 한 번,
전학을 갔다.

시내의 초등학교를 다니다
동네의 초등학교로 옮겼기에
내 마음도 무리없이 새 학교에 스몄다.
다 아는 얼굴, 친한 사이, 자주 본 풍경이기에. 학교만 이사했기에.

중학교의 전학은 달랐다.
요새 유행하는 이 세계 워프까지는 아니지만 나의 세계가 모조리 바뀌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고장과 사람과 분위기. 말 그대로 이사. 엄마는 갑작스레 1년간 딸이 말을 잃은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 기억엔 없는 선택적 함구를 나도 했었나 보다.

내마음ㅇㅅㅎ

이사 온 아이가 주인공이다.
새 학교, 새 교실, 새 급우들.

세계가 달라진 아이는 모든 것이 어리둥절하다.
내가 움직여 적응해야만 하는 상황, 감정, 기분을
ㅇㅅㅎ에 떠오르는 단어들로 표현하고 있다.

이상하고 얍삽한 아이들의 세상을 아이는 유심히 바라본다.
외계행성, 외계인들 사이에 툭 떨어진 아이의 마음을 살핀다. ㅇㅅㅎ 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담으며 아이같은 나를 헤아려본다. 그 사이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온 존재,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 하지만 세상에서 하나 뿐인 아이들. 다르기에 요상하고 때론 얍삽하고 때론 으스스하다. 그림책은 이사와 전학으로 달라진 환경 속에서 적응하는 아이의 현재진행형인 마음을 따라간다. 달라서 이상한 학교는 달라도 열심히 즐길 수 있는 학교로 바뀌는 과정을 담고 있다.

가까운 미래, 반이 달라지고 혹은 친구와 학교와 헤어지게 될 때 아이가 아수히(아깝고 서운하게) 여길 마음도 꺼내본다. 그림책 따라 나 역시 아스(라)한 기억 속 친구 유승희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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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어루만지면 창비청소년문학 123
박영란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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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을 어루만지면
박영란 장편소설
창비

책의 마지막
"밥 먹었어?" 만큼 여운이 남는 인삿말이 나온다.
"집은 잘 있어?"

책 <시공간을 어루만지면> 은 위기를 맞은 가족이
갑작스레 머물게 된 집에서 만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초록빛 무성한 나무와 덤불로 외부와 차단된 낡은 이층집 2층에 살게 된 남매는 빈 공간이어야 할 1층에서 어떤 소리를 듣게 된다.

"요정들 일 수 있어. 우리한테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거야."

<사건의 지평선> 이라는 SF소설에나 등장할 법한과학개념이 청소년소설 전반에 갈려있다.스산한 무정과 따스한 다정이 서로 섞여 물길을 열 듯, 사건의 지평선 사이에 내가 개입할 여지를 준다.

"어쩌면 우린 경계에 들어간 건지도 몰라"
"무슨 경계?"

1.차단
엄마에게 이끌려 머물게 된 공간, 새로운 집은
'나'와 '준'에게 낯설고 차단된 공간이다.
나무와 덤불에 가려 안 보이는 집이라는 공간처럼
사회 안의 개인, 보호가 필요한 집 속 아이들은 현실과 차단된 존재, 투명인간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2.입자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어린이들. 부모의 의지, 사회의 시스템에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아이들에게도 할 말은 있다. 책 속 '나'와 '준'은 자기와 -다른 상황이지만- 닮은 듯 입 꼭 다문 사람들, '할머니'와 '종려'와 '자작'을 목격하고 반응한다. 지켜보기 시작한다.

3.교류
자신에게 관심없는 부모, 약속을 지키지 않은 어른.
사나이와 마을 아이들은 사나이의 피리소리에 맞춰 행진하며 사라진다. <피리부는 사나이> 속 공명처럼
아이들은 이상한 1층 사람들을 따르고, 말을 주고받고, 밥과 배움을 나눈다.

4.사랑
그저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벽을 통해, 창을 통해 새어나오는 빛을 따르기만 했다. 시선이 관심으로, 관심은 사심으로, 사심은 사랑으로 발전한다. 시공간이 시공간 속 의지를 가진, 선택의 주체가 될 누군가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집에 들어선 아이를 바라본다. 서늘한 공기를 따스히 덥힐 수 있는 아이와 나 사이의 온도를 느낀다.
존재만으로도 시공간의 입자를 흔들 수 있는 힘, 본다는 의미를 생각하는 책이다.

#박영란#시공간을어루만지면#창비#소설#청소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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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사 마음그림책 14
클레르 르부르 지음, 미카엘 주르당 그림, 신정숙 옮김 / 옐로스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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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여섯시를 알고 있다.
한국의 소도시 속 어느 마을 속 작은집 속 나는 매일 새벽 여섯시
그림책과 노트, 펜을 들고 앉아 있다. 하루와 해님에게 첫인사를 하기까지의 나만의 의식이다.
그림책은 한국 아닌 파리의 작은 마을을 비춘다. 나니아의 옷장 속처럼 집 속 나는 그림책이란 옷장을 통해 집 밖의 풍경과 하나가 된다.
나는 의자에 앉아 정적으로, 그림책 속 남자는 자전거에 앉아 동적으로 서로의 새벽길을 펼쳐준다. 자전거길을 따라 살아있는 생물들이 비춘다. 깨닫는다. 햇빛, 지면을 박차고 솟아올라 화살쏘듯 발사되는 그 노오란 빛은 해 뿐 아닌 이 땅이, 걷는 길이,눈뜨는 생물들이 품고 있던 어제의 해의 기운라는 걸. 어제의 해가 오늘의 해에게 바통을 넘기며 첫인사를 한다. 해가 떠오르는 한 가운데 있는 나를 통해. 새벽 7이 눈비비며 일어나는 모든 이들에게 안녕 안녕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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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집사
김수완 지음, 김수빈 그림 / 옐로스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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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과 함께 찾아 온 고양이를 보곤, 비바람과 함께 찾아와 15일간 머무르다 무지개 다리로 간 고양이 아닌 강아지, 나의 달래가 생각났다.

고양이를 키울 준비도 필요도 모르던 유령집사처럼, 나 역시 그랬다.
나만 바라보는 눈망울에 어쩔 줄 모르고, 혹여나 밟을까 한발짝 다가오면 두발짝 멀어지는 우리 사이였다.

나는 마치 유령집사가 된 양, 비바람을 바라본다.
살아있는 작은 고양이 한 마리로 인해 공간이, 공기가, 삶이란 공책이
컬러풀해진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지고, 세상의 중심은 나에게 너로 이동하고, 우리 같이라는 다리가 놓인다.

유령집사가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여주자, 고양이는 유령집사에게 사랑을 알려준다. 고양이의 시선을 따라가고, 고양이의 마음을 알고사 애쓴다. 하지만 고양이는 살아있는 고양이. 유령세계 아닌 인간세계, 누군가의 고양이였다.

사랑하면 보고싶고 함께하고픈 마음을 안 유령집사. 집사는
큰 결심을 한다. 비바람을 아니 맥스를 인간세계, 주인에게 돌려보내기로. "그리움은 이제 나의 몫이야" 스스로 다짐하면서.

15일의 달래. 내게 카이로스의 시간을 알려준 강아지를 떠올린다. 유령집사에게도 혼자라면 짧았을, 둘이 함께 해 길었던 시간을 헤아려본다. 의미의 시간을 품고 견딜 그리움도 생각해 본다.

유령집사를 통해 생각했다. 상실의 아픔을 짐처럼 질질 끌며 나의 몫의 그리움을 외면했던 나를. 그리고 유령집사를 통해 깨닫는다. 이제 나두 달래와의 기억을 꿀 수 있게 됐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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