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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갔다가 오타루 살았죠
김민희 지음 / 달 / 2023년 10월
평점 :
오타루 하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내게 조건반사처럼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뮤직비디오 <가시나무>, 영화 <러브레터>와 <윤희에게>의 하얀 눈과 함께 떠도는 하얀 숨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노트 가득히 영상에 흐르던, 등장인물들이 머물던 장소를 빽빽하게 적어놓았건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타루는 여행예정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왜?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않았던 20대 시절, 값싼 여행의 계절은 여름, 가벼운 여행자의 계절도 여름에 가까웠다. 딴에 자존심은 있어서, 눈 없는 오타루 춥지 않은 삿포로는 갈 수 없어라는 이상한 논리로 합리화시켰다. 추운날 돌아다니는 것도, 동계 스포츠도 싫어서 화면으로 만족한다고는 죽어도 인정 못한 채.
작가는 태생이 타고난 여행자도 아니고, 누가 나를 막아도 나의 여행길을 거침없이 가는 과감한 용자도 아니었다. 서른살에 처음, 그것도 친구 김은미씨의 세뇌 아닌 세뇌로 새겨진 삿포로와 게스트하우스라는 단어로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친구로 시작해
생활 속 낭만을 더해가며
인생이라는 지도를 만들어가는 여행
작가는 함께하는 혼자, 혼자 동시에 여럿이를 넘나들며 오타루라는 지역을, 지역에 숨쉬며 살아가는 사람을 여행한다.
📙흔히들 오타루는 볼 게 없다고 말하는 도시다. 관광지는 너무 붐비고 상업적이며, 오타루운하는 작고 시시하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골목으로 들어와보면 느낌이 또 다르다. 골목마다 있는 집들이 5월에 얼마나 예쁜 꽃들을 피워내는지. 동네 카페의 커피를 내리는 주인장은 나를 또 얼마나 반갑게 맞아주는지. 술집에서 만나는 이웃들은 또 얼마나 다정한지. 거리를 걷다 만나는 할머니는 얼마나 반갑게 인사를 해주시는지 모른다. <본문 중에서>
여행의 주체는 나. 내가 고르는 것은 비단 행선지만이 아닐 것이다. 낯선 곳에 뚝 떨어져 낯설게 신기하게 그러면서 반갑게 느낄 시선의 끝을 고르는 것도 나다. 몸과 마음을 고르는 시간.
내게 다가오는 것들에 나 역시 다가갈 수 있는가를 생각한다.
12월의 오타루만이 아닌 5월의 오타루, 눈대신 꽃의 오타루에
다가가고픈 마음이 스멀스멀한다. 다정하고 다감한 오타루의 봄을 느끼고프다.
📙혼자라는 사실은 아무리 미화시키려 해도 근사해지기 어렵지요. 하지만 마음 속의 두려움과 잘 타협해 본다면 '혼자되기'는 자신과 참 잘 어울리는 일이 될 겁니다. 자, 이제 안에 있는 스위치를 켜세요. 혼자만의 은은한 울림을 꺼내세요.
<본문 중에서>
오타루는 아니지만 어제 서울에서 잠시 여행자가 되었다.
일상여행자, 아람 투어를 조그맣게.
나는 어제 부암동에서 잠시 혼자가 되었다. (아이가 청운문학도서관에서 자신의 일을 보고 있었던 덕분이다.)
일단 걸었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환기미술관까지. 겨울의 내음, 신기하게도 슴슴한듯 달달한 풀향이 났다. 멈춰서서 한참을 킁킁댔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 따윈 생각도 못하고, 향에 취해서. 이 구역 기억했다가 알려줘야지 마음 속에 저장도 했다. (나중에 아이를 그 구역에 데려갔지만, 낮의 해가 드리운 그곳에선 더 이상 그 향이 나지 않았다. 하늘과 시간이 연출한 그 때여야 함을 깨달았다.)
📙'여행하듯 살아가고, 살아가듯 여행하자'라는 생각을 늘 해요. 꼭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우리 동네를 걷더라도 여행하는 마음으로 살고, 비행기를 타고 낯선 땅에 내리더라도, 동네 산책하듯 걸음걸음 여유롭게 내딛기를 바랍니다.
<본문 중에서>
부암동은 작은 가게와 가게 사이 숨은 그림을 찾는 즐거움이 있는 동네다. 마구마구 걷다가 하얀벽 시끌시끌한 그림들이 눈에 들어왔다. 소인들 가운데 거인, 누군가 곁눈질 하는 거인 별사람에 눈을 뗄 수 없어 바라보다, 건너편 카페로 들어갔다. 40분의 관찰. 지나가는 행인들 누구도 눈길 주지 않는 별사람을 뚫어져라. 그러다 느꼈다 혼자가 혼자에게, 혼자이기에 느껴이는 동질감이란 것을. ^^ 그러다 45분 즈음 별사람은 혼자가 아니었음을, 시선 끝에 걸린 쬐끄만 친구가 있었다는 걸 발견하고 '뭐~~야'하다 안도했다. 친구 낚는데 소질있는 별사람이라고.
작가는 친구 김은미씨의 말을 계기로 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여행 중에 많은 사람들과 말을 섞고 친구가 되기도 하고. 스치는 인연이 되기도 한다. 배웅하는 여행자로 산다.
가장 든든한 친구와 동행하는 여행자. 바로 '마음 먹기 힘든 일은 멀리, 좋은 사람을 내게로를 굳게 믿는 '나라는 친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