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산과의사
미셀 오당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저자는 산업화된 농업과 산업화된 출산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산업화된 농업은 대량의 살균제와 화학비료, 제초제등에 의존한다.  수확량은 예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지만  땅은 자연의 힘을 잃어가고 우리가 먹는 음식은 농약에 찌들어 버렸다.  농업에서 뿐만이 아니다. 구제역이니 광우병이니 하는 것들이 생겨날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산업화된 출산은 산모로부터 자연스럽고 자기의지적인 출산의 자유를 빼앗아  모든것을 의사의 권위 밑에 두었다.  산모는 환자로 분류되고 출산은 수술대 위에 누워 환한 조명 아래 의사와 간호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된다.  의사는 언제든 필요하면 제왕절개 진통유도 약물 투입에 개입한다. 사실 산모나 다른 가족의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저자는 출산시에 기술적인 개입이 많을수록  그 아이는 공격적인 성향의 아이로 자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아이들이 많이 태어난 문화권은 그만큼 더 폭력적으로 될 가능성 또한 높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늘어나는 십대들의 약물복용 ,자살, 폭력, 범죄, 알콜중독등도 산업화된 출산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 역시 간단하다.
산업화된 농업의 대안은 유기농업이다.  땅의 힘을 살리는 농업이 인간이 사는 길이라고 보는 것이다.
산업화된 출산의 대안은 최대한 기계나 의사가 개입하지 않는 자연분만이다.
저자는 특히 자연분만을 위해 지켜져야 할 요소로 산모의 프라이버시, 흐릿한 조명,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아버지가 참석하지 말 것을 권유하고 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산모의 진통이 시작되면 마을에서 아이를 받아본 경험이 많은 나이 지긋한 여자 어른을 데리고 왔다. 그 여자 어른은 때로 할머니가 될 수도 있고 어머니가 될 수도 있었다.
산모는 익숙하고 편안한 자기 집에서 어머니나 할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다.  예비 아빠는 밖에서 기다려야만 했다.  출산은 전적으로 여자들의 문제였다.
지금이라면 집에서 아이를 낳는 일은 위험하고 감염 가능성이 큰 모험으로 여겨진다.
수천 년 여자들은 집에서 아이를 낳아 왔는데도 말이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오늘날 산업화된 출산이 태어나는 아이들을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의 아이들로 만든다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감하지는 않는다.  다소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렇다고 전혀 영향이 없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태어날 때의 환경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일 뿐이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정성으로 대움받고 태어난 후 사람의 정성과 사랑 속에서 자란다면  병원에서 출산했든 제왕절개로 출산했든 바르게 자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연스런 분만으로 태어난 아이라도 얼마든지 잘 못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각성의 의미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내가 아이를 갖게 되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병원은 싫다. 편안하게 꾸며진 방에서 내가 원하는 자세로 아이를 낳고 싶다. 그럴 수 있는 곳들이 요즘은 하나 둘 생기고 있다. 자연스럽고 조용한 출산의 바람은 이미 불고 있다.
오늘날처럼 과학과 물질문명이 발달한 시대에 모든 것을 옛날처럼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또 그것이 다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아이가 행복한 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온다면 이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바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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