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느낌 - 유전학자 바바라 매클린톡의 전기
이블린 폭스 켈러 지음, 김재희 옮김 / 양문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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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바바라 메클린톡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이름의 바바라 메클린톡은 평생을 옥수수와 함께 하며 유전학을 연구한 유전학자이다.

40대에 옥수수의 세포유전학에서 유전자의 자리바꿈 (특정 기능을 발휘하는 유전자의 한 단위가 통째로 자리를 옮기는 것) 이라는 현상을 발견하지만 그때까지 유전자란 실에 꿰어진 구슬처럼 늘 제자리를 지키는 것으로 믿고 있었던 과학계에서 철저하게 무시되다가 40년이 흐른 뒤에야 정설로 인정받게 된다. 

분자생물학의 발달로 유전자의 자리바꿈 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 40년간 멕클린톡의 주장은 과학계의 이단으로 취급받았고 말도 안 되는 이론으로 폄하되어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는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당했던 것이다.  거기엔 멕클린톡의 사고방식과 연구방식이 기존의 과학계에서 통용되는 방식과 너무나 달라 인정을 받지 못한 부분과 특정 개념에 생각이 묶여 있어 새로운 이론이나 개념을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과학계의 현실, 여성과학자라는 선입견등 여러 가지 요인인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작가

작가는  바바라 멕클린톡이 전혀 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때 이 책을 기획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바로 그 점이 작가가 멕클린톡의 전기를 쓰게 만든 까닭이다. 작가는 훌륭한 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과학계의 주변에 머물 수밖에 없는 멕클린톡의 삶에 주목했고 그녀가 과학을 이해한 방식에 주목했다. 그녀가 과학을 이해한 방식이야 말로 그녀를 과학의 이단아로 살아가게 한 이유이자 주류 집단과의 소통을 어렵게 한 이유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평생 그녀의 방식을 고수했고 그녀의 방식이 옳다는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녀는 평생 스스로 옳다고 믿은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갔다.   작가는 그러한 메클린톡의 일생을 정확하게 포착해서 보여주고 있다. 인물을 채색하거나 여성과학자임을 특별히 부각시키지도 않으면서 작가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방식

일반적으로 과학자들은 연구하는 대상과 감정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절대적인 객관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아이쉬타인을 비롯한 많은 위대한 과학자가 밝혔듯이 과학에서도 정말 핵심을 관통하는 지식은 대상과의 분리가 아니라 일체를 통해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직관과 통찰에 의해 답이 얻어지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는 것이다.   그녀에게 그녀가 실험대상으로 삼은 옥수수는 실험대상이 아니라 친구이자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지극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나의 일부가 되지요. 그러면 나 자신은 잊어버려요. 그래요. 그게 중요해요. 나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것 말이에요. 거기에는 더 이상 내가 없어요."

그녀는 옥수수를 지극한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보았으며 그녀가 연구하는 생명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교류하면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대상이 나에게 와서 스스로 얘기 하도록 마음을 열고 듣는 것. 무엇보다 생명에 대한 느낌을 개발하고 생명이 어떻게 자라는지를 깨우치는 것, 생명과의 교감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멕클린톡의 이러한 연구방식은 연구를 실험과 논리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과 통찰,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까지 동원하는 것이었다. 현대적이고 실증적인 실험을 하면서도 전체를 한꺼번에 파악하는 통찰력에 의존하는 이러한 방식이 사실과 객관성을 중요시하는 과학에서 받아들여지기는 힘든 것이었다.

그녀와 기존의 과학계 사이에 소통 불능이 일어난 것은 바로 이러한 그녀의 방식 때문이었다.   멕클린톡은 자신의 방식을 버리지 않았고 주류 과학계의 남성과학자들은 그들과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멕클린톡의 이야기를 들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녀가 발견한 유전자 자리바꿈이라는 현상은 그것이 분명 옳은 것이었고 실험을 통해 증명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무시되어 왔던 것이다.

돌아보기

어떤 분야든 새로운 시야를 개척해 가는 탐구자들에게 가장 커다란 도전은 자기 스스로의 선입견이 가로막는 한계로부터 벗어나는 작업이다. 자신의  시야를 가로막는 스스로의 선입견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눈앞에 벌어진 실제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 본문 p304 )

이런 일이 멕클린톡이 유전자 자리바꿈 현상을 세상에 발표할 때 일어났다. 그  당시 과학계는 스스로의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선입견은 결국 그들이 오랫동안 고수해 온 이론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깨지게 된다. 그리고 나서야 멕클린톡의 이론이 정설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녀의 이론은 받아들여졌지만 그녀의 과학 하는 방식은 여전히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

나는 모든 과학자가 멕클린톡처럼 자신의 직감이나 통찰력에 근거해서  연구할 수도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통찰과 직감을 통해 대상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으려면 멕클린톡처럼 대상에 대한 지극한 애정과 경외감이 있어야 가능하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멕클린톡이 보여주는 삶은 학문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자연을 혹은 대상을 어떤 마음과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학문하는 사람에게는 그들이 연구하는 대상이 될 수도 있겠고 일반인들에게는 그들이 하는 일이나 대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멕클린톡은 자신이 평생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을 지켜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자신의 일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생명체와의 교감을 통한 생명의 느낌이 방향키가 되 주었다고 한다.

 나에게는 평생 나의 길을 인도해줄 방향키가 있는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스스로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편견에 대해서도, 이 세상 도처에 깔려있는 수많은 벽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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