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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즈데이 북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SF소설에서 시간여행은 여전히 매력적인 소재다. 시공간을 뛰어 넘어 과거나 미래의 어느 시점으로 이동한다는 것이 일상을 뛰어넘는 재미를 가져다주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시간여행이 가까운 미래는 물론 먼 미래에도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어린시절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음직한 시간여행에 대한 환상은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재탄생되고 있다.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다들 어느 시기로 가고 싶은지..
2054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둠즈데이 북은 시간여행을 소재로 하고 있는 소설이다.
2054년 크리스마스 시즌, 위험등급 10인 중세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것에 반대하는 지도교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역사학도 카브린은 중세로 시간여행을 떠나는데 기술자의 실수로 시간설정이 잘못되어 페스트가 창궐하는 시대 한 가운데로 떨어지고 만다.
카브린이 중세로 떠나자마자 2054년의 현재에서는 원인모를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카브린의 시간여행을 담당했던 기술자를 시작으로 하나 둘 사람들이 병으로 쓰러진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현재의 뉴욕과 페스트가 퍼지기 시작한 중세의 한 마을을 중심으로 병과 싸우는 사람들의 치열한 모습이 번갈아 그려진다. 그 와중에 카브린을 현재로 불러오려는 던위디 교수의 시도는 매번 소통불능으로 좌절을 겪는다.
이 책은 3분의 2까지는 지루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마지막에 가서 숨가쁘게 진행된다.
절반 이상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여행이 가능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연락은 여전히 전화로 하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소통의 답답함에 있는 것 같다. 핸드폰 하나면 간단하게 연락이 될 상황인데 전화로만 연락을 주고받는 상항이 되다보니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연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던위디는 끊임없이 카브린을 다시 현재로 데리고 올 기술자들을 찾아 헤매지만 누구 한명과도 제대로 연락이 되지 않는다.
책은 1992년에 쓰였다고 하는데 그 땐 핸드폰이 발명되기 전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소통의 답답함과 고립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싶은 작가의 의도된 설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성공이다. 현재의 뉴욕은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외부와 고립되어 있고 중세엔 카브린 혼자 고립되어 있다. 고립된 상황에서 인간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작가는 시간여행을 과거나 미래를 제한 없이 오 갈수 있는 자유로운 상황이 아닌 엄격한 상황으로 설정하고 있다. 즉 시공간의 탄력성으로 시간여행자는 절대로 인과관계를 뒤집을 수 없으며 시간편차로 인해 원하는 시공간에 정확히 도착할 수도 없다고 가정하고 있다.
이야기가 거의 끝날 때까지 중세엔 카브린 혼자다.
이 책의 재미는 SF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여행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군상의 다양성에 있다. 중세나 현재나 죽음에 맞서 싸우는 인간의 투쟁과 좌절, 죽음을 이겨내는 인간의 사랑과 희망엔 변함이 없다. 사람들의 삶은 시대가 바뀌어도 되풀이 된다. 그리고 어느 시대나 사람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작가는 단지 과거와 현재를 병치시키기 위한 하나의 설정으로 시간여행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 책의 마지막 3분의 1에서 질병과 죽음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고 무력하기만 한 인간이 어떻게 희망을 발견하고 어떻게 위대해 질 수 있는지 볼 수 있다면 앞부분의 지루함을 견뎌낸 보람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