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셰 박사의 초상
신시아 살츠만 지음, 강주헌 옮김, 심상용 감수 / 예담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그림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한 때 고흐의 작품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채 창고에 처박혀 있었다.

인상주의 화가 모네가 그린 '인상 떠오르는 태양' 이란 그림은 그 당시 사람들로부터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다는 혹평을 받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고흐의 그림에 열광하고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매료당한다.

그림은 그려진 그대로인데 바뀐 건 사람들의 시각이다. 우리는 예전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그들의 그림 속에서 발견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시대가 바뀌니 아름다움의 기준도 바뀌는 것인지 그리하여 또 시대가 바뀌면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것들의 가치가 달라질 것인지 아니면 영원히 변치 않는 무언가가 과연 있는 것일까.

내가 고흐 그림 앞에 서 있을 때 나는 상대적인 미적 기준 앞에 서 있는 것일까 절대적인 기준 앞에 서 있는 것일까?  나는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영원한 순간에 동참하고 있는 것일까?

책을 읽으며 내가 한 생각들은 이러했다.

이 책은 고흐가 자살하기 수주 전에 마지막으로 그린 가세박사의 초상화란 그림의 100 간의 긴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1890년 파리의 조그만 마을에서 그려진 고흐의 가세박사의 초상화는 정확히 100년 후 8250만 불이라는 경이적인 액수로 일본의 유명 제지회사의 사장에게 팔린다.  1897년 알리스 루벤이란 사람에게 58달러에 팔린 후 2만 3000배가 뛴 가격이다.

과연 가세박사의 초상화란 그림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그림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그 그림에 그런 가치를 부여해 버린 것일까?

가세박사의 초상화의 가치는 100년간 끊임없이 상승해왔다. 그에 따라 반 고흐의 삶도 끊임없이 각색되고 채색되며 그림의 가치를 드높이는 극적 삶의 주인공으로 변화해 왔다. 거기에는 예술계에 종사하는 비평가와 감정가, 화상과 그림을 수집하는 사람들 사이의 복잡한 여러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다.

가세박사의 초상화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며 새로운 역사와 사연들이 덧붙여지며 때로는 욕망의 대상으로 때로는 소유의 대상으로 현재에 이르러서는 물적 투자의 대상으로까지 그 의미를 달리하여 왔던 것이다.

작가는 기자였던 이력을 이용해 가세박사의 초상화를 소유했던 13명의 소유주를 뒤쫒으며 가세박사의 초상화에 대한 그들의 애정과 열망 소유와 욕망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 시대의 정치 경제 미술사사의 흐름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가세박사가 걸어 온 100년의 역사는 인류사에서도 격변의 역사였다. 두 번의 세계전쟁과 유례없는 경제성장의 과정을 거치면서 급속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온 시기였다.

1990년에 있었던 소더비 경매에서 가세박사의 초상화가 세계 역사상 가장 비싼 값으로 한 일본인에게 팔렸을 때 그건 일본의 놀라운 경제성장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가세박사의 초상화에서 현대인의 우수에 찬 고뇌를 본다고 한다. 이것이 비평가나 화상들의 이야기건 아니건 가세박사의 초상화를 봤던 많은 사람들이 그 그림 속에서 현대인 즉 자기 자신의 한 단면을 보았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 쓸쓸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가세박사의 표정은 숱한 사람들의 마음에 강한 인상과 감동을 주어 왔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가세박사의 초상화를 더 이상 볼 수가 없다.

미적대상에서 투자대상으로 바뀐 가세박사의 초상화는 일본의 거품경제가 붕괴되고 원 소유주가 죽은 후 누군가의 손에서 다음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있는 누군가가 엄청난 돈을 주고 예술품을 사가는 일을 가지고 뭐라 말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소유로만 간직하고 싶어 한다고 해도 투자대상으로 고이 모셔둔다고 해도 씁쓸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가세박사의 초상화의 다음 주인은 어느 박물관이 돼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 볼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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