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인간의 가장 어두운 면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부제가 '인간악의 치료에 대한 희망' 이라고 붙어있다. 인간의 악에 대해서 다루겠다는 말이다.
인간악이라니 무척 거창한 주제다. 사실 악이란 개념은 보는 시각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해석될 수있는 개념이다.
악의 본질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악에 대한 대처방법이나, 저자의 주장대로 악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악이란 것이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 지에서부터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악이란 개념은 사실 매우 종교적인 개념이다. 이미 악이란 단어 속에 악과 대립되는 선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이란 보통 종교에서 신의 영역이다.
따라서 종교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인간악을 논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워보인다. 가치중립적인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스캇 팩은 과감히 과학적인 입장에서 인간악을 논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악을 하나의 질병으로 본다. 악이란 증상이 있고 치료가 필요한 마음의 병이란 것이다.
저자는 과학적 입장에서 인간악에 대한 이해와 치료방법의 모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자신의 종교적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한계가 분명한 책이다.
특정한 종교적 가치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게는 한계로 비쳐지는 이 부분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해답으로 방향으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 어디까지나 관점의 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이란 것이 있건 없건, 악이라고 부르든 다른 이름으로 부르든, 아니면 하나의 심리적 질병으로 인식하든, 인간내면에 어두운 면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볼 때 스캇 팩이 바라본 인간악의 실체는 무서우리만큼 진실에 다가서 있다.
스캇팩은 악의 본질이 자신의 잘못을 직면하는 대신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을 전가하고 스스로는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나르시시즘에 있다고 본다.
"악이란 자신의 병적인 자아의 정체를 방어하고 보전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정신적 성장을 파괴하는데 힘 을 행사하는 것이다."
"악의 본질적 구성요소는 자신의 죄나 불안전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의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드는 점이다."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숨으려할때 악하게 된다."
저자가 정의하는 악의 개념에 동의하든 안하든 도둑질을 하고 살인을 하는 것을 악이라 규정하지않고 자신의 불완전함이나 죄를 정면으로 대면하지 않으려 하는 것, 오히려 자신의 죄를 타인에게 전가하고 은폐하려는 모습을 악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그의 통찰력은 예리하다.
"악한 자들이 가장 참을 수 없는 고통은 자신의 양심을 직시하는 고통, 자신의 죄성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고통이다."
저자는 심리치료가 자신을 들여다보도록 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정말 악한 사람은 그늘 속에 숨어 밖으로 나오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마음이 건강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이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고쳐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저자가 악을 질병으로 보는 이유가 그것이 심리치료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치료도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악을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하나는 인간적이 악이고 다른 하나는 악마적인 악이다. 인간적인 악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심리치료를 통해 어느 정도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악마적인 악은 그 실체가 성서에 나오는 사탄 혹은 악령이라는 것이다. 사탄은 외롭고 약한 인간의 내면에 침투하여 그 인간의 정신적 성장을 막고 영혼을 파괴한다.
이러한 사탄이나 악령은 구마 (마귀를 내쫓음)나 축사(사악한 기운을 물리침)를 통해 인간 밖으로 내쫓음으로서 벗어날 수 있다.
저자는 사탄이라 불리는 악의 실체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저자의 경험 속에서 어떤 악은 인간적인 악을 벗어나 보다 근원적이고 사악한 실체에 의한 악으로 보이는데 그러한 실체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을 그가 믿는 종교적인 테두리안에서 찾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이 부분은 저자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한계일 수도 있고 저자의 개인적 신념이나 믿음의 문제일 수도 있다.
이 부분은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같은 종교인이 아니라면 상당히 불편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이 책엔 저자가 상담한 여러 사람들의 상담사례가 실려 있다. 그 상담사례를 읽다보면 온 몸이 옥죄어오고 떨려오는 두려움이 느껴진다.
자신의 영혼뿐만이 아니라 상대의 영혼까지도 파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무서운 건 그것이 그들만의 모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자각 때문이다. 내 안에도 그들과 같은 모습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안에도 악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문득문득 숨어있는 내 어두운 내면이 들여다보일 때마다 나는 악에 대한 스캇 팩의 경고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님을 깨닫는다.
저자의 종교적이고 개인적인 관점을 떠나서 이 책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 책에서 주장하는 악의 모습이 도처에 널려있는 인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나 자신의 모습을 비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선과 악의 중간에서 수없이 좌우를 오가며 살아간다. 선과 악의 극단에 서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선과 악의 경계에서 내가 악의 축으로 기울어져있다고 판단되는 순간 선의 방향으로 다시 돌아설 수 있는 힘이 있는 인간이라야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 힘은 과연 어디에서 올까? 저자의 지적대로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에서부터 올까?
수많은 생각들로 긴긴밤을 지새우며 이 책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