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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열두 방향 ㅣ 그리폰 북스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어슐리 K르 귄의 열 일곱편의 단편소설을 묶어놓은 책이다.
10여 년간에 걸쳐 쓴 단편을 대충이나마 연대순으로 엮었다고 저자가 말했으니 저자의 사고의 흐름을 엿볼 수 있을 듯도 하다.
그래서 순서대로 읽어 나간 책이기도 하다.
사실 단편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다가 단편집을 집어 들더라도 무작위로 읽고 싶은 제목의 글부터 읽어 나가는 쪽이다. 이 책을 순서대로 읽자니 조금 답답하기도 하였다.
사실 어떤 것 부터 읽어도 상관없긴 했다.
열 일곱편의 단편들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사색적이고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었는데 어느 것은 신선했고 어느 것은 모호했고 어느 것은 우스웠으며 어느 것은 아름다왔고 어느 것은 쓸쓸했다.
SF라기보다는 동화나 환타지를 읽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작품들이었다.
사실 장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르 귄의 작품들은 특정 장르를 벗어나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재미있게 읽은 글은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였다.
오멜라스의 주민들은 모두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오멜라스엔 어떤 폭력도 칼도 경찰도 없으며 모든것이 풍요롭고 아름다우며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기쁨이 넘쳐나는 곳이다.
그러나 이러한 오멜라스의 모든 것은 한 낡고 어두운 지하실방에 감금되어 추위와 굶주림 속에 내 던져진 한 아이의 고통의 대가이다.
즉 누군가 한 아이만 지독한 고통을 당하고 있으면 오멜라스의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절대로 이 아이를 도와주거나 말을 걸거나 따뜻하게 해 주면 안된다. 이 아이가 고통속에서 벗어날 때 오멜라스의 모든 사람들의 삶은 슬픔과 고통과 비참함이 공존하는 삶으로 돌아간다.
우리들의 선택은 어떠할까? 자신의 풍요와 안락을 다른이의 고통과 바꿀 수 있을까?
다음으로 재미있게 읽은 것은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였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벽,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벽, 그 벽을 넘어서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그녀의 한결같은 주제이기도 하다.
혁명 전날에서는 혁명가의 고독한 내면을 담담하고 쓸쓸하게, 파리의 4월에서는 인간의 고독을 유쾌한 어조로, 명인들과 땅속의 별들에서는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실의 권력 앞에 고뇌하는 과학자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셈레이의 목걸이와 겨울의 왕은 단편이지만 장편 이상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면서도 완결성이 뛰어난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몇 몇 작품은 난해했고 모호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문장은 참으로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