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199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을 읽고  그녀에게 흥미가 생겼다. 그녀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래서 어제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녀의 다른 책은 더이상 우리나라에 없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는1936년 헝가리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 2차세계대전을 경험했고 18살에 자신의 선생님과 결혼해서 20살에 아기 엄마가 되었다.  1956년 헝가리가 소련의 침략을 당하자 반체제 운동을 하던 남편과 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로 가 그곳에서 정착했다.  망명자라는 신분으로 친구도 친척도 없는 스위스에서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생계를 위해 하루 열세시간씩 시계공장에서 노동을 해야 했다.  그런 환경속에서 그녀는 틈틈이 시를 썼다.  그녀의 첫 데뷔작 비밀노트는 그녀의 나이 50세에 발표한 소설이다.

그녀의 소설 속엔 그녀가 경험해온 삶이 반영되어 있다.  그녀는 소설을 통해 그녀 내면에 각인된 전쟁의 기억과 상처, 망명자로서의 고독과 슬픔을 보여 준다. 그 보여주는 것이 너무 건조하고 메마르고 거칠어서 뼈와 가죽만 남은 노인의 손을 보는 듯 하다.  잡아주고 싶고 어루만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그때문일거다.

어제의 주인공 토비아스는 창녀이자 거지인 어머니와 나중에 그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상도르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다.  12살 때 어머니와 포개어 자고 있는 아버지를 칼로 찌르고 국경을 넘는다. 토비아스는 망명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시계공장에서 일을 하는 공장 노동자로 살아간다. 

매일 반복되는 의미없는 삶.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의 건조한 만남.

망명지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가는 토비아스의 유일한 낙은 글을 쓰는 일과 린 이라는 여자를 기다리는 일이다.  린은 그의 배다른 여동생이다.

어느 날 그 앞에 거짓말처럼 린이 나타난다.  그의 꿈은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린은 이미 결혼하여 남편과 아이가 있었다. 사랑하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 토비아스는 린의 남편을 죽이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를 죽이는 일을 실패한 것 처럼 린의 남편을 죽이려는 시도도 실패로 돌아간다.

결국 린은 떠나고 토비아스는 망명지에 홀로 남는다.

어제 그의 인생에는 린이 있었고 어머니가 있었고 글을 쓰며 꿈을 꿀 수 있었고 그래서 고독했지만 인생이란 것이 있었다.

그러나 어제의 린은 사라졌고 내일의 꿈도 사라졌다.  남은 것은 무의미한 현실 뿐.

토비아스는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여전히 공장노동자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한다.  달리 선택할 수 있는 인생이 그에게는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이 소설은 재미가 없다. 재미를 느낄만한 장치가 하나도 없다.  특별히 잘 쓰인 글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소설속엔 아웃사이더로 살아갈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고통과 전쟁으로 상처받고 영혼이 망가진 사람들의 존재감 없는 삶의 모습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려져있다.

꿈을 버림으로써 현실에 안주하는 토바아스의 삶은 그래서 더욱 비통하고 참담하게 다가온다.

 "나는 걸었다.  간혹 다른 행인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가벼워 보였고 무게가 없는 사람들 같았다.  뿌리가 없는 그들의 발은 결코 상처받지 않았다. 그것은 집을 떠난 사람들, 고국을 떠난 사람들이 가는 길이었다."

 "내일, 어제, 그런 단어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현재가 있을 뿐. 어떤 때는 눈이 온다. 또다른 때는 비가 온다. 그리고 나서 해가 나고, 바람이 분다. 이 모든 것은 현재이다. 그것은 과거가 아니었고, 미래가 아닐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다. 항상. 모든 것이 동시에. 왜냐하면 사물들은 내 안에서 살고 있지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서는, 모든 것이 현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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