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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들의 아름다움
나탈리 앤지어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해나무 / 2003년 11월
평점 :
작가는 한 권의 책에 정말 다양한 생명의 모습과 활동을 담았다. 그런데 나오는 생명들 대개가 친근하고 사랑스런 것들이 아니라 사람들이 혐오스러워하고 싫어하는 것들 투성이다.바퀴벌레, 전갈, 기생충, 방울뱀, 쇠똥구리, 하이에나, 개미등이 버젓이 한 장의 주연으로 등장한다.그런데 징그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절대 부닥치고 싶지 않은 이런 생물들의 이야기가 자못 흥미진진하게 다가오고 아름답게까지 느껴지는 것은 순전히 작가 덕인듯 하다.
작가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생물들을 깊은 애정으로 바라보며 그 속에서 살아있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여 독자에게 전해주고 있다.
마치 장미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이름 모를 야생화도 예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처럼.
그래서인지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혐오스럽고 싫었던 생물들의 모습이 어느 새 놀랍고 신비로우며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로 비쳐지는 것이다.
징그럽기만 한 바퀴벌레 중에는 새끼를 캥거루처럼 작은 주머니에 담고 다니며 젖을 먹이는 암컷도 있고 성장기에 있는 새끼들에게 영양가 있는 질소를 주려는 단 한가지 목적으로 새똥을 먹는 수컷바퀴벌레도 있다.
우리가 더럽다고 외면하는 똥을 먹이로 하는 쇠똥구리는 하루에 수백만 톤의 배설물을 분해함으로써 환경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쇠똥구리가 없다면 자연은 순식간에 동물들의 배설물로 뒤덮일 것이다.
자신이 들어가 있는 동물의 행동을 조정해서 다음 자신의 숙주가 될 동물의 먹이가 되게 만드는 기생충의 전략은 얼마나 교묘한지 기생충이 과연 단순한 생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생물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배발생과정에서 어느 부위에 어느 기관이 생길지 계획하고 지시하는 HOX유전자라든가, 암컷의 출산과 수유에 영향을 미쳐 새끼를 잘 돌보게 만드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에 대한 이야기들은 내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너무나 당연한 일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세포의 죽음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장을 읽다보면 생명이 죽음의 토대위에 서 있다는 역설에 부딪치게 된다. 인간의 생명은 매순간 자신의 삶을 기꺼이 포기하고 장엄하게 자살을 선택하는 세포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죽지 않는 세포하나가 암세포로 변하여 인간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머리말에 자연의 아름다움은 사소한 것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자연은 오갖 보잘 것 없고 괴상한 존재들이 모여서 나름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보존해나가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작가는 그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작가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주변과 자신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만든다.
살아있는 어느 것 하나 사소할 수 있을까?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위대한 사건인 것이다.
생명에 대한 겸손한 경외심을 갖고 주변을 다시 둘러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