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개골의 서
로버트 실버버그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신이 있어 내게 불멸의 삶을 주신다 하면 나는 거절하리.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라 해도 건강한 젊음을 유지하는 것이라 해도 나는 마다 하리.
삶이란 그 궁극에 죽음이 있어 의미가 있는 법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삶이 무한히 늘어난다면 그 의미가 너무 엷어져 종국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것이다.
언제 죽을 지 알 수 없는 인간의 삶, 아무도 그 끝을 분명하게 볼 수 없는 그 아슬아슬한 외줄타기에 인생의 가치가 삶의 의미가 온갖 소중한 것들의 존재가 놓여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불멸을 꿈꾼다. 그래서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은 늘 불멸을 꿈꾸고 얘기해 왔다. 전설로 신화로 종교로 ... 그리고 그 이야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자식을 낳아 대를 잇고 싶어 하는 것이나 글이나 예술 작품을 남기려고 하는 것이나, 뭔가 업적을 남기려고 하는 것이나 명예나 권력을 얻고자 하는 것이나 형태는 다르지만 그 속엔 불멸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숨어 있다. 누구든 어느 정도는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불멸을 얻고 싶은 것이다. 나라고 예외일까?  그건 아직 모르겠다. 

두개골의 서는 불멸의 삶을 찾아 애리조나의 사막에 있는 사원을 향해 떠나는 네 명의 젊은 대학생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개골의 서란 오랜 고문서를 발견해서 의미를 해독하여 친구들을 여행으로 이끈 사람은 일라이, 그는 학자 타입의 유대인이다. 단순히 재미있는 추억이나 만들자고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는 티모시, 그는 전형적인 백인 상류층을 상징한다. 시인을 꿈꾸는 네드는 게이이자 네 명중에 가장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인물이다. 똑똑하고 모범생인 올리버는 시골출신의 성공한 인물을 대변한다.
성격도 자란 환경도 생각도 전혀 다른 이 네명이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단 이 여행에는 함정이 있다. 두개골의 서에 쓰여 있는 내용이 사실이라면 네 명중 두 명만 불멸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 즉 네 명중 한명은 다른 이의 불멸을 위해 죽임을 당해야 하며 다른 한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 이것이 불멸의 삶을 얻기 위한 조건이다.

책의 주인공은 네 명. 네 사람은 번갈아 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여기에 이 책의 매력이 있다.
네 명의 서로 다른 케릭터가 번갈아 등장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조금씩 보여준다.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들, 동행하는 다른 친구들에 대한 생각들, 영생에 대한 기대와 의심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들.
삶과 죽음에 대한 네 명의 각기 다른 태도는 공감을 일으키기도 하고 거부감을 일이키기도 하지만 각자 납득할만한 자기 이유를 가지고 있음으로서 모두 마음 쓰이게 만든다. 그러다보면 문득  이들 중에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과연 두개골의 서에 쓰여 있는 이야기는 진실일까?  아니 이 책은 과연 불멸을 얻는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허망한 꿈을 꾸는 젊흔이들의 이야기인가?  이 책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네 사람은 결국 두개골의 사원으로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불멸의 삶을 얻기 위한 몇 가지 시험을 거치게 된다.
이 책의 클라이맥스는 이 시험 가운데 하나가 진행되면서 비롯된다. 마지막 시험은  생애에서 가장추악하고 수치스러웠던 사건 하나를 골라 다른 사람에게 고백하는 것. 바로 자기 정화의 시험이다.
추첨에 의해 티모시는 올리버에게 올리버는 일라이에게 일라이는 네드에게 네드는 티모시에게 고백하게 되고 들은 고백은 절대 다른 이에게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가 붙는다.
이 과정에서 네 사람은 고백 상대에게 누구에게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자신의 가장 부끄럽고 추한 사건들을 고백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지금까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네 사람의 비밀이 드러난다.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론 대학 때 친구들과의 비슷한 경험을 생각나게 해서 적지 않은 내적 파장을 느껴야 했던 대목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네 명 중 두 명은 불멸의 삶을 얻었는가?  정말 두개골의 서에서 말한 것처럼 누군가는 죽임을 당하고 누군가는 스스로 죽는가?  하는 것은 책을 읽어 보면 알 일이다.
때론 삶이 조금만 더 허락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목숨들이 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은 대개의 사람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불멸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죽음을 목전에 두고 조금이라도 더 살기를 바라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욕망일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 건 모든 사랑하는 것들과 단절 때문이기도 하지만  죽음 이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에 새로운 삶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영원히 윤회를 거듭하며 살고 지고 하는 것이 존재하는 것들의 방식인지 그것도 모른다. 어쩌면 죽음은 완벽한 끝일수도 새로운 시작일수도 있다.
그것을 어찌 알랴. 다만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그 때 이 세상을 떠나면 좋겠다 생각할 뿐이다.

그리하여 두개골의 서를 읽으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불멸의 삶이 아니라 반대로 죽음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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