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 양장본
마크 해던 지음, 유은영 옮김 / 문학수첩 리틀북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한 마리의 개가 삼지창에 배를 관통당한 채 죽는다.
올해로 15년 3개월을 산, 세계의 모든 나라와 그 나라의 수도를 알고 있고 7507까지의 모든 소수를 기억하고 있는 자폐아 주인공 크리스토퍼는 누가 개를 죽였는지 알고 싶다. 그는 개를 죽인 범인을 찾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추리소설로 쓰기로 마음 먹는다. 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따라서 이 책은 크리스토퍼의 이야기이자 그가 쓴 책 속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종의 액자소설인 셈이다.
책 제목이 참 근사하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라니. 게다가 그 사건을 파헤치려는 주인공은 자폐아다.
책을 다 읽기 전엔 당연이 이 책이 주인공 크리스토퍼가 자폐아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이용해서 범인을 찾아가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이려니 했다. 정상인이라면 놓치기 쉬운 어떤 단서들을 찾아 범인을  잡는 자폐인 소년의 이야기.
차라리 그런 이야기였다면 좋았을 뻔 했다. 그랬다면 재미있게 읽고 책을 덮었을 테니 말이다.
불행히도 책의 내용은 내가 예상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렇지만 책의 내용을 자세히 얘기하진 말기로 하자.

크리스토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착하기 때문이 아니라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만 얘기한다.
크리스토퍼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객관적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일이 일어난 상황을 머리로 이해한다.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빠는 크리스터퍼에게 미안하다고 하지만 그는 아빠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날 밤, 그는 이웃집 아주머니와 스크레블 게임을 한다. 크리스토퍼가 이겼다.
이게 문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도 크리스토퍼의 시선을 거치면 객관화가 된다. 그런데 그렇게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일들이 감정을 이입시켜 바라볼 때보다 더 씁쓸하고 쓸쓸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어른들의 세계이다.
아빠와 엄마, 이웃집 스미스부인과 그녀의 남편, 개의 죽음을 조사하러 나온 경찰들, 이웃집 할머니, 그 밖의 어른들.
그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어른들의 세상은 복잡하고 의문투성이며 무엇보다 진실하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많은 이유들이 존재하지만 크리스토퍼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렵다. 여기에 또 다른 아픔이 있다.
나는 한편으론 어른들의 세상이 이해가 되고 다른 한편으론 크리스토퍼의 이해하지 못함 또한 이해가 된다.
그래서 자신을 속인 아버지를 믿지 못해 엄마를 찾아가는 크리스토퍼가 이해가 가면서도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아빠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도망간 엄마의 입장 또한 이해가 간다.
내겐 모든 사람들의 입장이 이해가 되는데 크리스토퍼에겐 그렇지 못하다. 그가 자폐아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혹은 모든 것을 이해하기엔 어른들의 세상이 원래 그렇게 복잡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의 주인공을 자폐인으로 설정함으로써 느끼게 되는 가장 큰 느낌은 소통의 문제다.
마음의 이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인공,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받아들이고 그 사실의 뒤편에 숨겨진 의도와 진실을 보지 못하는 주인공, 그 주인공을 바라보며 느끼게 되는 일종의 벽같은 것.
자폐아동을 데리고 있는 많은 부모들이 매 순간 겪어야 하는 소통의 문제. 주고받지 못해서 느끼게 되는 답답함과 불편함과 아픔과 슬픔의 문제들.
그러나 분명 세상의 소통의 방식은 하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다른 방식, 다른 통로를 찾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가 생기는 것일게다. 게다가 어떤 면에서 우리 역시 조금씩은 자폐인이다.
우리 중 살면서 소통의 불편함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사람과 관계를 맺고 마음을 주고받는 방식이 여러 가지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고 한다면 어느 순간 자폐인이란 말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어린 크리스토퍼가 여러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내면적으로 성장해가는 성장소설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자폐인의 심리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뭐 아무려면 어떤가?
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읽은 <어둠의 속도>가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다면 이 책은 내게  나를 포함한 어른들의 삶에 대해, 그리고 새삼 소통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