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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20세기에 들어와 상대성이론에 자리를 내어 주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체험하는 시간과 공간은 여전히 절대적인 시공간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 시간은 여전히 60분이고, 하루는 모두에게 똑같이 24시간이며 일년은 12개월이다. 끈이론이 나와 수십 차원으로 우주를 설명해도 우리가 느끼는 공간은 여전히 3차원에 머물러 있다. 지식으로서의 사실과 감각으로서의 사실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상상력은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절대적인 시공간쯤 아무렇지 않게 뛰어 넘는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상상력이 가장 잘 나타나는 장르가 SF소설이 아닌가 싶다.
SF소설에서라면 인간은 지구라는 별을 벗어나 그것이 달이 되었던 화성이 되었던 아니면 알파-375행성이 되었던 지구와는 다른 시간과 다른 중력이 지배하는 행성에서 살아갈 수도 있고 인간과 다르게 진화한 우주의 다른 생명체를 만날 수도 있고 공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얘기는 어느 정도 그럴싸한 과학의 근거가 뒷받침 되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SF는 판타지가 되어 버릴 테니까.
인간의 상상력과 과학의 만남, 사실 여기에 SF소설의 묘미가 있는 것이지만 SF소설의 범주가 판타지와 신화 문학의 장르까지 확장되고 있는 요즘 추세로 보면 그 묘미가 다양해지고 있는 것인지 희석화되고 있는 것인지 조금 헷갈리기는 한다.
영원한 전쟁은 오랜만에 전통 SF소설의 묘미를 느끼게 해준 책이다. 그 출발시점이 2000년대 초인 것이 걸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20세기 말, 블랙홀의 일종인 콜렙서를 이용해 행성간 초광속 항법을 발견한 인류는 다른 항성에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는 과정에서 토오란이라고 부르게 되는 외계 생명체의 공격을 받게 된다. 인류는 토오란을 물리치기 위해 IQ150이상의 육체적으로도 뛰어난
남녀를 강제 징집해 전투병으로 훈련을 시킨 뒤 토오란의 기지로 보낸다.
주인공 만델라는 끔찍한 지옥훈련을 통과한 후 토오란의 기지로 보내진 다음 인위적으로 이식된 증오인자에 의해 미친듯이 토오란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고 지구로 귀환한다. 그러나 초광속 비행의 시간 팽창 효과 탓에 만델라가 우주에서 보낸 시간은 10개월이지만 지구시간으론 20년이 흐른 후의 지구로 귀환하게 된다. 어머니는 잠깐 사이에 늙어 있고 20년간 지구는 전혀 다른 곳으로 변해있다.
만델라는 그녀의 애인과 함께 변화된 지구에 적응을 못하고 다시 군으로 복귀하게 되고 두 사람에게는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전쟁과 시간 팽창으로 지구의 어느 시점에도 머무를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만 남게 된다. 이야기는 그렇게 이어지는데...
베트남 참전 경험이 있는 작가 조 홀드만은 베트남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몇 편의 소설을 쓰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영원한 전쟁이다.
그래서 책 속에 등장하는 군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 참전경험이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베트남 전쟁은 그 배경이 우주로, 그 대상이 외계종족 - 물론 여기서 외계종족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토오란에게는 지구인이 외계 종족이 되니까 - 으로 치환되고 베트남 참전했던 미군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겪게 되는 문화적인 충격과 이질감, 전쟁 후유증에 따른 사회부적응과 소외감은 시간팽창 효과에 따른 이질감과 소외감으로 이해된다고 했을 때 이 소설은 보기에 따라 베트남 전쟁얘기를 그대로 우주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어 보인다.
그 배경이 우주가 되고 지구라는 시공간을 뛰어 넘은 순간, 인간이 겪게 되는 경험은 그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치열한 전쟁묘사가 아닌 시간 팽창 효과로 인해 주인공들이 겪는 심적 정신적 가치의 변화였다.
주인공들이 우주에서 몇 년을 보내는 동안 지구는 몇 백 년의 시간이 흘러간다.
주관적인 시간은 동일하지만 다른 공간에서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상대적인 시공간이 존재하는 우주로 인간이 삶의 터전을 확장하는 것은 실제로 얼마나 가능한 일일까?
달이나 화성과 같이 지구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별이라고 해도 지구와 그 환경이 첨예하게 다르다.
그런 곳으로 인간의 삶이 확장된다면 그 때의 시공간의 개념은 어떻게 정립되고 변화될까?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될 미래의 인간들은 어떻게 서로 다른 생각과 감각과 가치들을 통합하고 교류하고 소통할까?
그 답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SF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상상들을 하는 것은 참 재미있다. 그런 상상 속에는 지금 내가 알고 있는 인간이 아닌 전혀 다른 인간이 나타나기도 하고 지금 내가 진리라고 혹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많은 것들이 전혀 새로운 모습을 띠기도 한다. 이 책에서 지구를 수백 년이 흐르면서 이성애가 아닌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것이 되고 생명은 인간의 몸이 아닌 인위적인 자궁에 의해 태어나고 화폐는 통일되고 종족은 서로 섞이어 하나의 종족으로 되어 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나의 상상력도 제멋대로 이런 저런 가지를 뻗어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 지난 수천 년의 인류사를 되돌아보며 앞으로 수천 년이 지나도 인간이라서 변하지 않는 것, 아마 인간인 이상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가 믿을 만한 한두가지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 것이 있을까? 그런 절대 진리가 절대 가치가 있을까? 그냥 궁금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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