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러건트 유니버스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승산 / 200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주에 대한 관심은 인류의 조상이 배부르게 먹고 무심히 하늘을 바라 본 순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인류가 만들어 온 신화를 보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주를 이해하려고 했던 인류의 긴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저 드넓은 우주에는 무엇이 있으며 어떤 원리로 움직이고 있을까?  하는 등의 의문은 인류 역사상 끊임없이 되풀이 되어 온 질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이러한 질문에 끊임없이 답을 찾아오고 있다.

이제는 유치원생이라도 지구는 둥글고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인류 역사에서 이런 생각이 진리로 받아들여진 것은 극히 최근이다.
오랜 세월동안 인류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해 왔으며 태양과 다른 별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어 왔다.
이 믿음은 너무나 확고하고 당연한 것이어서 절대 변하지 않을 것만 같았지만 이제 이러한 믿음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말았다.
아무리 신의 이름으로 협박해도 이제 이런 믿음은 통하지 않는다.
우주에 대한 가장 큰 사고의 변화는 바로 이런 믿음이 깨진 순간부터가 아니었을까?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우주의 원리를 탐구해 온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현재의 우리는 과거 어떤 인류도 가지지 못한 우주에  대한 넓은 이해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기존의 것이 끊임없이 부정되고 더 큰 범주 안으로 통합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 우주에 대한 시각은 근 200년 사이에 그 전 인류의 전 시대를 뛰어 넘는 변화를 겪었다.
200년 전만 해도 우주는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절대공간과 항상 균일하게 흐르는 절대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들고 나오면서 시간과 공간은 더 이상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공간은 물질이 가지는 질량에 의해 왜곡되고(휘어지고)  시간 역시 왜곡된다.시간과 공간이 왜곡된다는 것은 우리의 지각과 감각적 경험으로 알 수 있는 범주가 아니다. 슬슬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원자 이하의 미시적 세계의 현상을 설명하는 양자역학은 더 복잡하다.
양자역학에서 설명하는 미시적 세계에서는 하나의 물질이 동시에 여러 장소에 출현할 수도 있으며 여기에 있는 동시에  저기에 있을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이건 철학의 영역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거기에 이젠 초끈이론까지 등장했다. 초끈이론은 가장 최근의 물리학의 이론으로 거시적 세계와 미시적 세계를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려는 일련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대두되고 있는 이론이다.
초끈이론에서는 물질의 궁극적 단위를 입자가 아닌 상상할 수도 없이 작은 끈의 고리로 보고 있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 끈이론에 의하면 우주의 모든 물질과 힘은 단 하나의 근원, 즉 끈의 진동으로부터 비롯된다.
우리의 눈에는 다르게 보이는 물질들이 실은 동일한 존재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식으론 초끈이론이 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초끈이론에는 4차원을 넘어서 11차원까지 등장하고 찢어지고 구멍난 공간까지 등장하지만 우리의 지각으론 전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식의 설명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철학적이고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마치 신을 설명해 놓은 말 같지 않은가?
게다가 아무리 작아도 끈이란 길이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그러자면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하다. 즉 아무리 최첨단의 이론이라 하더라도 일단 무엇이 있고 난 다음의 이야기일 뿐 無에서부터의 출발은 아니란 말이다.
이건 기독교가 신이 당연히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세워져 있는 것과 같다. 여기서부터는 종교와 과학의 영역이 겹쳐진다.

우주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단지 물직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우주에 대한 관심은 결국 인간 존재의 출발과 근원에 대한 물음이자 나 잔신에 대한 물음이다.
인류의 기원을 알고 싶은 욕망, 그건 우주라고 하는 무한한 공간속에 지극히 작은 존재에 불과할 뿐인 인간이란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욕망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과학과 종교는 동일한 질문에 대한 답을 다른 방식으로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엘리건트 유니버스는 최근 물리학에서 각광받기 시작한 초끈이론을 알기 쉽게 소개한 책이다.
알기 쉽게 소개한 책이라고 하지만 일반인이 이 책의 내용을 10분의 1이나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두 번째 읽었지만 나 역시 이 책의 내용을 극히 일부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어려운 책을 뭐하러 읽을까 싶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사색의 영역은 넓다.
그것이 철학적인 사색이 될 수도 종교적인 사색이 될 수도 있고 나 자신에 대한 사색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사색은 결국 나 자신의 내면을 풍요롭게 만들고 내 사고의 폭을 넓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만큼 내 삶이 넓어질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이 책을 읽은 까닭이다. 물론 재미도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