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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 사랑으로 나아가는 오늘 - 예수님 생각 365
팀 켈러 지음 / 두란노 / 2024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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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포터 11월 도서는 팀 켈러 목사님 책이었다.
'사랑으로 나아가는 오늘' 제목부터 사랑스럽다.
구조가 매일, 하루씩 깊이 묵상하기 좋게 구성되어 있어 부담스럽지 않다.
매일의 날짜와 말씀, 팀 켈러 목사님 묵상이 들어가 있어 두고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좋다
제목이 주는 느낌도 인상 깊다
매일매일이,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도 미래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채우겠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이란...?
신앙적으로 맺어야 하는 열매, 성화같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삶을 살아내고, 닮아가야 하는 과정의 연속은 사랑의 열매를 키워가는 과정 같달까..
결국 그리스도인의 종착지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랑 열매를 맺는 거겠지.
최근 청년부 모임에서 사랑의 종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일반적으로 '사랑'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몇 가지로 분류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분류[편집]
storge : 부모가 자식들에게 느끼는 것 같은 타고난 사랑.
eros : 열정과 육체적인 관계에 기반한 로맨틱한 사랑.
ludus(라틴어) : 아이들끼리의 장난스러운 사랑 또는 가벼운 연인 사이의 사랑.
philia : 우정
pragma : 성숙한 사랑. 인내심, 아량을 가지며, 때론 서로 타협함.
philautia : 자기애.
agape :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이고 이타적인 사랑.
(위키백과 참고)"
열정적이고 낭만을 추구하는 에로스부터 이타적인 사랑, 아가페까지 다차원적이다.
감정적인 행복만 있지 않는다. 배려하고 희생하며 고통도 동반한다.
<팀켈로, 사랑으로 나아가는 오늘>
그리스도인의 애정이 느껴지는 제목 안에 숨겨진 내용에는 말씀 안에서의 다양한 사랑이 있다.
고통도 있고 욕망과 결핍, 죄를 주제로 한 이야기도 있다.
우리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기쁜 소식, 복음을 묵상하면 다양한 인간의 약함과 악함도 보인다.
그 가운데 더욱 다짐하게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무한한 사랑을 기억해 본다.
<팀켈러, 사랑으로 나아가는 오늘> 11월 묵상 부분에는 자주 나오는 단어가 있었다.
11월 호의 목차를 펼치자마자 나오는 문장이 있다
'무한히 용서하고 화해를 청할 수 있다면'
이후로 '용서'가 강조되는 내용이 계속 나온다.
'용서'는 사랑과 자주 붙어 다닌다고 하지 않나. 가까운 사람일수록 기대하는 게 커지고 나에게 영향을 주다 보면 쉽게 상처받는다.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태복음 18: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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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예수님은 용서에 한도를 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는 선언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신다. 그분이 쓰신 단어가 일흔일곱 번으로 번역될 때도 있다. 하지만 정확한 횟수에 초점을 맞추면 예수님의 본뜻을 놓친다. 성경에서 숫자 7은 완전함을 상징하므로 이 말씀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예수님의 진술은 산수가 아니라 과장법이다. 숫자가 77인지 490인지를 따지는 이들은 요점을 놓친 것이다. 용서에 정해진 한도는 없다. 이미 베푼 용서의 횟수를 세는 것은 무의미하다
11월 무한히 용서하고 화해를 청할 수 있다면 323P"
사람이 하는 용서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힘들지만, 하나님을 붙들며 가까운 관계에서 하게 되는 용서는 고귀하고 사랑이 넘친다.
참, 이론적으로는 이해되지만 머릿속에 아직 마음이 어려운 사람들이 떠오르는 건 갈 길이 멀었나 보다..
'사랑과 용서' 묶어서 묵상해 본다. 사람을 가까이한다는 건 상처받음에도 사랑을 배워간다는 의미기도 하겠지. 결국 사람을 관계적인 동물로 만드신 하나님 뜻에는 사랑을 주체적으로 배워가라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랑은 받을 때보다 줄 때 의미가 커지고, 관계를 맺을 때 내가 주도적으로 손을 내밀 때 주어지는 은혜가 크다고 믿는다.
워낙 좁은 마음이라 실천까지 가기에 멀지만 사랑으로 오늘을 나아가자고 다짐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