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집 -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안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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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집',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참 책 제목부터 부제까지 마음에 든다. 안그래도 요즘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 '나는 어떻게 예쁜 단어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정리해야 하는 걸까?' 라는 질문이 마음에 드러앉아 나가질 않는다.

그런 나의 마음 상태를 생각할 때 단어로 차곡차곡 문장이라는 집을 쌓아 아름담게 문장을 부풀리며, 마음의 종을 울리는 말들에 대한 산문들이 실려 내 마음을 사로잡을 것 같다는 예감을 준다.

안그래도 아직 나의 미숙한 글쓰기 실력을 되돌아보며 조금 더 글을 활기차게 만들 수 있는 팁을 얻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서평 신청한 책. '단어의 집', 읽어내려가면서 뭔가 그런 부분이 좋았다.

소소한 일상에서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을 세심한 관찰력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해석해낸다. 그리고 그 해석은 작게만 느껴졌던 나의 일상이, 삶이 나에게 보내는 암호메시지를 풀어낸 듯한 환호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암호메시지가 풀어지는 순간. 아무생각없이 앞으로 나아갔던 내가 생각을 사유하며 앞으로 나가기에 더욱 발걸음에 힘이 실리는 느낌이다.


과학적으로 틀린 설명이라 해도 상관없다. 모든 현상을 과학적, 논리적으로만 설명하려 들면 세상 모든 신비는 몸을 틀어 삶의 반대편으로 떠나버릴 테니까. 신비가 아니라면 씨앗이 품고 있는 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 안의 가장 여린 마음에까지 독이 스며 있다는 사실을. 그때의 독은 악이 아니다. 안간힘이고 사랑이다. 인간이 제아무리 약하다 해도 인간은 저절로 강한 면이 있다. 씨앗이 품은 독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리라. 무력한 인간을 번번이 일으키는 일. 주저앉아도 일으키고 주저앉아도 또다시 일으키는 일

우리는 모두 찢기기 쉬운 피막을 가지고 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이의 피막에 함부로 막대기를 꽂아 휘저을 수 없다. 대단한 무엇이 파괴되어서가 아니다. 한 인간을 둘러싼 피막이 손상될 때 인간은 죽는다. 아주 작은 찢김으로도 상한다. 그러니 겪고 뒤척이면서 두터워지는 수밖에 없다. 이 여름, 이 겨울을 지나면 또 한 겹의 피막이 생겨나겠지. 이 사랑, 이 터널을 빠져나가도 또 한 겹의 피막이 생겨나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을 믿으며 가야겠다.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78-79P



그리고 바쁘게 직장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하다보면 '스피드'에 집중하는 내 자신을 내려놓고 마음에 따뜻한 공백을 채우며 여유를 선물하는 느낌이 들어 왠지 이 책을 읽는다는 게 기분이 좋아진다.



시간이 우리를 아주 먼 곳으로 데려다 놓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 자신이 그럴듯하게 라벨링 돼 진열대에 올려진 와인 같다는 생각이. 오래되고 희귀할수록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제아무리 고급 케이스에 담겨 기쁜 날 선한 선물로 건네진다 하더라도 한 그루 포도나무였던 시절, 포도밭에서의 시간을 떠올리면 눈시울이 붉어지기 마련이다. 짓밟고 망가뜨릴 심산으로 포도나무를 기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모두 정성과 사랑으로, 길러진 존재들이다. 포도밭의 태양, 포도밭의 평화를 떠올리면 삶에 찢기고 벌려진 상처가 소독되는 기분이다. 슬픈 말이지만, 우리는 모두 그 시간으로부터 와 여기에 있다.

125P

그와 함께 과거를 회상할 때 찾아오는 애잔함 역시 깊게 묵상하게 된다. 참 묘하다. 기쁨과 슬픔 등 다양한 감정을 읽어내려가며 마주하는 안희연의 산문은 일년을 되돌아보는 연말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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