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3대 의적이라하면 홍길동-장길산-임꺽정이지요. 물론 정사에 이들의 기록은 극히 미미할 뿐일텐데... 과연 이들을 민중의 영웅으로서 소설화한다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하는 궁금증과 함께 {장길산}의 제 1권을 펴들었습니다. 무려 10권이나 되는 분량이었지만, 쉬지않고 읽을 수 있을 만큼 재미가 있었습니다. 10권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서둘러 장길산의 실제 기록에 대해 조사를 해 보았더니 약 한페이지의 분량도 안되더군요. 재인이라는 신분과 활동시대와 영역, 그리고 끝내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 기록의 전부이던데... 어쩜 그리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만들어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게 장길산이라는 인물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조선 중기 시대의 움직임을 잘 포착하여 이야기를 꾸몄다는 점과 다양한 캐릭터들의 출연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의식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양반과 천민의 신분제가 계속되고 있어 누적된 불만이라든가, 자본주의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시대의 모습을 여러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는 점은 이 작품을 빛나게 해주는 포인트일 것입니다. 또한 인물들은 동일한 상황일지라도 각자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달리 살아갑니다.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보면서 각각의 인물됨에 찬사를 보내기도 하고, 때론 야유를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잘못된 사회에 대한 불만을 여러 의인들과 함께 헤쳐나가려는 의적 장길산의 모습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감동을 줍니다. 개인의 안위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뜻을 세워나간다는 것은 인물 장길산과 그의 동지들을 통해 느꼈던 감동입니다. 이렇게 장길산이라는 한 인물에게 빠져 들어 조선시대를 여행하고 온 느낌.. 그리고 그 속에서 개개인이 모두 다르게 느끼게 될 그 감동까지.. 이 모두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게될 행복이 아닐까요..
황석영의 중단편전집 3권을 읽게 된 것은 그의 장편소설 '손님'을 먼저 접하고였다. 손님에서 작가의 모습은 주인공 류요한의 모습이었다. 작가는 방북을 한 경험을 살려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픈 모습들을 매우 정감있게 그려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작가를 따라 북에 다녀온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작가의 또다른 발자취를 따라 다녀보고 싶은 욕망에서 선택한 것이 이 책들이었다. 작가의 고등학교 시절 등단작인 {입석부근}은 중단편전집의 가장 첫머리를 장식하는 작품으로서 작가의 초기작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동굴에서 생활하는 주인공을 보았는데, 보통사람에게는 낯선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작품을 어떻게 구상하였는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작가의 소개를 보니 고등학교 시절 정말 그런 적이 있었다 한다. 감히 말하지만 작가 황석영이 아니면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뿐만아니라 {탑}은 월남전에 참전한 후 본격적인 문학작품들을 만들어내면서 나온 작품이라서 생생한 그곳의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대표작으로 불리는 {객지} 또한 작품 속에서 허구의 인물들만이 아닌 작가의 솔직한 체험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그러했다. 황석영의 소설속에 들어가보면 그의 모습들과 생각들이 꾸밈없이 속시원히 나와있다. 그 소설 속의 모습은 아주 힘겨운 현대를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나와있다. 어쩌면 평범한 소시민이라기 보다는 질곡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신음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요사이 TV드라마가 많은 인기를 끌고있지만 그 속에는 대다수인 시민들의 모습이 온데간데 없는 것과는 많은 대조를 이룬다. TV드라마 속의 가벼운 인물들.. 그것보다는 힘겹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모순과 당당히 부딪치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진한 감동을 받았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몇해 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이 떠올랐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미군에 의해 자행된 끔찍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순간 진실을 알려고 했다기 보다는 외면하고 싶었다. 아무리 전쟁중이라지만, 너무 인간적이지 않은 사건들이 저질러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많이 힘들었다. 이렇게 그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내게도 끔찍했던 역사적 아픔들은 과연 그 당사자들에게는, 그리고 그 후손들에게는 어떠한 아픔이었을는지...소설 <손님>은 한국전쟁 중 뼈아픈 동족상잔의 비극을 숨김없이 낱낱이 고발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비극의 씨앗은 우리 민족들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토속적인 것이 아닌 외래의 문물들로서 손님이었다. 서로에게 아픔을 주고, 혹은 또 당하기도 하는 주인공들이 영혼이 되어 우리에게 이러한 메세지를 주고 있었다. 그들에 의해 이야기되고 있는 사건들은 매우 끔찍하고 잔인해서 외면해 버리고 싶은 것들 뿐이었지만, 오히려 당사자들은 태연히, 남은 이들에게 이야기 해준다. 소설 속의 류요섭 목사나 우리 독자들에게 말이다. 그렇다.. 아주 뼈아픈 기억일수록 하나하나 낱낱이 까발려서 그 본질을 파악해야만, 그래서 그 일들을 인정하는 길만이 오히려 우리 기억속에서 지워지고, 아픔이 아닌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정래 씨의 장편소설 중 처음으로 접한 것이 이 <한강>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1권부터 10권까지 숨가쁘게 우리 역사의 이면들을 직면하는 동안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 느낌을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통한과 질곡의 세월로 점철된 우리 현대사에 대해 철저히 외면해 왔던 동시대인의 수치심이라고 하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학교에서 한국의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그동안 제딴에는 우리의 현대사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했고 노력해 왔습니다만, 소설 속에서 만난 여러 인물들의 끈적한 삶은 상상해 본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큰 맥락의 역사속에서 다루지 못했던 우리시대 민중들의 여러가지 다양한 모습들을 총천연색 물감으로 표현한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책이 바로 <한강>이라는 대하소설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한강> 속의 여러 인물들을 따라 이러저러한 삶을 같이 살다 나왔습니다.. 너무나도 다른 개성의 여러 인물들 속에 저는 어느 인물들을 꿈꾸고 있었는가라는 숙제가 남겨져 약간 골치가 아프기도 하지만 생생한 역사를 산 그들과 대면할 수 있어 참으로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제는 제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공간 속에서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겠군요..
우리 근현대사의 뿌리 깊은 질곡을 선사한 두 사건이라면 36년간의 일제 식민통치와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인한 조국의 분단을 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1900년대 초 조선이라는 나라는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붕괴되었고, 그 속에서 우리 조상들은 한 많은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한 질곡의 시대 속에서도 근대의 유입이라는 세계사적 대세는 우리나라를 그냥 통과하지 않고 많은 변질된 모습으로 찾아왔다. 이러한 식민지조선의 모습을 신명직 씨는 1920~1930년대 만문만화라는 신문속의 새로운 장르를 통해 그려내었다. 과연 식민지라는 상황에서 근대의 모습은 어떻게 나타났는가? 나는 이 책을 보기 전에 일제의 식민지로서 한국의 모습에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듯 싶다. 드라마나 역사 속에서는 독립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고 일본군과 싸우는 열사들의 모습들을 보여주거나 이완용 같이 나라를 배반한 매국노의 모습들이 자주 등장하였다. 물론 일반 백성들은 항상 굶주리며 일본순사와 앞잡이의 눈치를 봐야하는 궁색한 모습이 전부인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라는 책 속의 인물들은 그 나름대로 그 시대속에서 잘 살고 있었다. 우리가 독재 정치속에서 불만을 가졌지만 현실에 잘 순응했던 것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의 삶을 살고 있었다. 특히나 근대를 접하는 그네들은 하나같이 근대문물을 경외하였고, 그것의 소유를 통해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비록 만문만화를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그리고 있는 석영 안석주 같은 이들은 근대속에 빨려들어가는 이들에게 비소를 보내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이 책속의 다양한 이야기와 인물들의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그리 동떨어져 있지는 않다. 약 100년의 차이를 훌쩍 뛰어 넘어 우리 곁에 선 그네들이 전혀 낯설지만은 않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