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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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부패한 공직자, 정경 유착과 비리를 저지른 기업인, 국회의원...

악질적인 인물로 소문난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살해된다.

첫번째와 두번째 시체에는 숫자로, 이후에는 새끼 발톱을 뽑아가는 것으로 표식을 남기는 이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일까?

이러한 살인 사건에 대해 국민이 환호하고 응원해주는 상황에서 과연 법을 대신한 처벌은 정당한 것일까?

대충 줄거리는 이러했다.


책은 읽는 나에게 몇가지 생각할 점을 던져주었다.

하나는 인간의 죄를 다른 인간이 처벌, 그것도 죽음으로서 단죄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분노의 표출 방법 중 하나라고 할 지라도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라는 것이고,

마지막으로는 인간의 욕심은 선천적인가 라는 것이다.



제목이 집행관들이니 집행을 위해 누군가가 판정 또는 판단을 해주는 심판자가 있으려니 싶었다.

집행관들은 집행 회의에서 정보 공유, 토론, 합의를 거쳐 대상자를 선정하고, 그 과정은 개인적 감정보다는 드러난 죄목을 객관적으로 판단해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했었다. 하지만 집행관들 자체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고 보면 개인적 감정이 표출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었다.

게다가 심판자도 역시 사람이었다.

아무리 그 과정이 객관적이고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죄라고 할 지라도 사적 처벌이 정당하다고는 동의하기 어렵다. 사적 처벌이 이루어진 원인이 공적 심판 (법에 의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권력과 돈, 권모 술수에 의해 벌받아야할 사람은 빠져나가고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차라리 근세의 경우처럼 결투를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게다가 단순한 벌주기가 아니라 목숨을 빼앗는다는 것은...

조두순의 출소를 계기로 참 말들이 많았다. 누군가 지금의 법체계에서의 처벌 수준이 낮다고 조두순을 처벌하기 위해 죽인다고 한다면 과연 잘한 일이라 할 수 있을까? 심정적으로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두순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동일한 상황이 발생된다면 그야말로 무서워서 못사는 세상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공권력에 의한 임의적 처벌이 예전의 삼청교육대라고 할 때 포함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까지 피해를 본 과거를 돌이켜보면 임의적 처벌이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사적 처벌은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으리라....

배트맨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있다.

그 무법천지 고담시에서 배트맨은 공권력이 경찰과 함께 하지 않는가?

무언가 방법이 있지 않을까??


"너와 내가 분노를 대하는 차이가 뭔 줄 알아?

너는 분노를 컬럼으로 때우지만, 나는 몸소 집행을 하지."

집행관들. p162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와 같이 주장했다. 이탈리아 통일 국가 형성을 이상으로 삼았던 마키아벨리는 국가 통일과 국민의 안녕이라는 선한 목적을 위해선 악한 수단을 동원할 수 있으며, 만일 그렇게 하지 않아서 악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선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것은 안된다고 했다.

반대로 칸트는 목적은 목적으로만 대우해야지 수단으로 대우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어느 쪽이 옳은가... 쉽지 않은 문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근거에 있어서의 공리주의는 물론 맞는 듯 하다. 하지만 소외된 소수가 정당화 논리에 따라 희생되어서는 안될 말이다.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맞지만 소수의 불행을 초래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한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악한 수단으로 인해 내가 희생되는 상황... 생각도 하기 싫다.


결국 모든 원인은 인간의 욕심에 있는 듯하다.

부정부패, 정경유착, 사기, 비리옹호 등등... 많은 악한 것들은 모두 나에게 무언가를 댓가로 보상하기에 내가 행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는 상황을 만들고...

그 심판 결과에 따라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아버리는 상황을 만들고...

악한 자를 처벌한다는 선한 목적을 내세워 폭력과 살인이라는 악한 수단을 정당화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

그건 인간의 욕심이 아닐까 싶다.

내게 필요한 것만, 다른 사람과 나누어가며, 다른 사람을 보호하고 이해하며 살아가는 선한 본성은 사람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일까?

중국의 순자의 주장처럼 우리는 본래 악하게 태어난 것일까? 그래서 욕심보를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핍박하고 속이고 배신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지키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본성이 그러니 제도와 규율로서 강제하는 것이 최선이겠다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관점의 차이로 인한 논쟁의 꺼리가 많은 주제들이다.

이렇게 써놓고는 어떤 부분에서는 이 생각이 맞는 지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되묻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소설에서 처럼 잘못 가진자들의 횡포로 인해 못가진자, 덜가진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그에 대한 복수의 차원에서 또 다른 악한 일을 행해야 하는 세상...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런 세상은 어떻게 해야 올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이 우리의 숙제가 아닌가 싶다.


이 글을 마무리하며 드는 생각 하나가 있다.

소설의 결말에서 보다 저자의 후기에서 오싹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저자에게서 심판관 너머의 기획자의 심리를 엿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좀더 성숙해져야 할 것이고, 같이 살아간다는 것에 더 집중해야하지 않을까?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모아야 하는 것일까?" ('대전환이 온다'를 따라해봤다. ㅎ)


현실에선 이뤄질 수 없는 정의 실현을 졸필로나마 구현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울러 암세포 같은 인간 쓰레기들을 철저하게 응징하고 싶은 바람도 부인할 수 없다.

조금이라도 '집행관들'의 순수한 열정을 헤아린다면, 적폐들과의 전쟁 속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지는 않을까.

정말 그들의 바람대로 세상이 바뀐다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집행관들. 작가의 말. p426-427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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