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소설은 아마도 다비드가 그린 <마라의 죽음>처럼 죽는 순간까지 펜을 잡고서 초연한 표정으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 자세를 소설에 녹여내고픈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심하고 냉소적이고 판단을 유보하는 듯 하지만, 결국엔 세상의 혁명을 꿈꾸는 여우같은 웃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들은 무기물처럼 가열해도 타지 않고, 변화도 없어 보이지만 독자들이 받아들이고 난 이후엔 급격하게 산화하는 유기체처럼 마음을 요동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항상 스스로를 에피쿠로스 학파의 철학적 입장을 고수한다고 말해왔습니다. 헬레니즘 시기를 대표하는 철학가의 한 학파가 그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에피쿠로스 교수는 쾌락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철학의 기본 가치로서 추구하였는데, 그렇다고 해서 모든 순간순간마다 쾌락을 쫓는 극단의 쾌락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항상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가운데 영혼의 평화를 유지하며 이성 속에서 이상적 경지를 쫓았다. 현실의 행복을 중시하면서도 정도를 지키는 쉽게 말해 이도 저도 아닌 학파였다. 내가 생각하는 김영하의 소설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지는 거 같다. 가장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면서도 결코 사회적인 맥락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지 않는 작가 김영하. 그의 소설을 오랬동안 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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