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생각한다 - 도시 걷기의 인문학 정수복의 파리 연작 1
정수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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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에게 절망은 없다. 그가 정말 걷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과 말싸움을 벌이지 않고, 자신의 불운을 한탄하지 않고, 자신의 세속적 가치를 올리기 위해 뒤돌아서지 않고 계속해서 걷는다면.
—자크 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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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멜랑콜리는 행복한 고독감을 주는 달콤한 우울이다. 멜랑콜리의 달콤함은 세상의 모든 세속적 영광과 즐거움을 뒤로하게 만든다. 파리의 우울은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을 우울증으로 빠지게 하여 무기력한 상태로 만드는 병적 우울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하고 삶의 상대성을 느끼게 하여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하는 창조적 우울이다. 파리의 멜랑콜리는 아직 꺼지지 않은 불꽃을 다시 살려내고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의 원동력이다. -p.228

화려함 속의 우울, 우울밖의 화려함. 파리의 매력은 공존할 수 없는 그 두 요소가 서로 뗄 수 없는관계로 얽혀 있는 모순된 조화의 상태에서 만들어진다. 파리에는 세상에 대한 긍정과 세상에 대한 부정, 삶의 기쁨과 삶의 무의미, 화려함 속의 쾌활과 고독 속의 우울이 공존하며 때로 갈등하며 때로 조화를 이룬다. 그것이 바로파리 도시미학의 정수다.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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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산보객은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엇이든 열광적으로 관찰하는 사람이다. 그는 길거리에서 집에서처럼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는 군중 속에 묻혀 있는 익명의 개인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을 관찰하는 세상의 살아 있는 중심이다. -p.138

조화란 전체를 이루고 있는 부분들이 서로서로 어울리고 서로를 빛나게 해주는 방식으로 관계 맺고 있는 모습이다. 파리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은 서로가 서로의 아름다움을 상승시키며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움을 만들어간다. 각각의 구성 요소들이 아무리 다양하고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다하더라도 그것들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전체의 아름다움은 기대하기 어렵다. 어느 하나의 요소가 너무 강한 빛을 발해 나머지 요소들의 가치를 묻어버리면 전체의 아름다움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부분들이 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대방의 존재 가치를 살려줄 때 각각의 부분들이 내포하고 있는 아름다움은 더욱 빛이 나고 기대하지 못한 상승효과를 불러와 전체적 조화의 아름다움에 도달한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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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보객의 노하우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고 오직 걸으면서 스스로 터득할 수 있는 기술이다. 산보객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뜻밖의 사소한 발견에서 즐거움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냥 지나치던 어느 집 창문 베란다에 놓인 제라늄 화분이나 오래된 담벽의 이끼가 그리는 알 수 없는 무늬에 눈길을 보낼 줄 알아야 한다. 산보객은 지식이나 교훈보다는 체험과 느낌을 찾는 사람들이다. 산보객은 무슨 엄청난 발견이 아니라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작고 사소한 것들에서도 즐거움을 느끼며 예상치 못한 발견이 제공하는 신선함과 경이로움을 통해 스스로가 새로워지는 느낌을 갖는 사람이다. 살짝 열어놓은 대문 사이로 보이는 숨어 있는 정원, 돌 벽의 신비한 무늬, 오래된 건물의 높은 벽에 남아있는 희미해진 광고, 새로운 길 이름, 지하철역 이름, 어떤 이가 살았던 집임을 알리는 석판 하나하나가 즐거움을 제공한다.
-p.95

메르시에는 습관적 시선을 깨고 항상 새로운 눈으로 도시 현상을 관찰했다: "단순한 사물일수록 그것을 관찰하는 사람의 눈을 피해간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가 하찮은 것이라고 여겨 습관적으로 보지 않게 된 중요한 현상들이 즐비하다. 그런 습관이 붙게 되면 아무리 예민한 정신을 가지고 관찰해도 우리 주위의 어떤 현상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냥 흘러가버리게 된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 눈앞에 있는 것을 똑바로 바라보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 된다."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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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리 전체를 발로 걸으면서, 파리의 역사적 유래와 흔적을 기록한 에릭 아장의 저서 『파리의 발명의 부제 "헛걸음은 없다 Il n‘y a pas de pas perdu"라는 문장을 혼자 입속으로 중얼거리곤 한다.
사실, 파리에서는 아무 데나 걸어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걸으면 발견한다. 시인 말라르메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한 권의 ‘절대적 책Le Livre‘으로 귀결되게 되어 있다"고 말했지만, 파리라는 거대한 책은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공간이고 사람들이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삶의 공간이다. 그러기에 파리는 직접 자기 발로 걸어보아야 알 수 있는 도시다. 똑같은 파리라도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보는 파리와 발로 걸어 다니면서 보는 파리는 크게 다르다. 파리를 걷다 보면 도처에서 문화와 예술, 종교와 철학의 역사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세상을 다시 보게 되고 인생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 p.24

그러므로 땅은 언어에 앞선다. 언어 이전에 땅이 있다. 오전 시간을 책상 앞에서 글쓰기로 보낸 나는 오후가 되면 대문을 박차고 나와 파리 시내 곳곳을 배회한다. 그래서 파리는 나에게 일상의 다양한 모험을 허락하는 약속의 땅이 된다.-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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