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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케어 주식회사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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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커와 마찬가지로 단숨에 읽혔다. 아이디어가 뛰어난 소설. 먹규와의 연애를 위해 시작된 주식회사. 데스케어 주식회사. 과거 근육단련의 시절. 거대한 코끼리가 되어 인도횡단하는 별비. 멋지고 슬픈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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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생각 (특별판) 문학동네 시인선 9
김안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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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우물에 가라앉아 구름을 뜯어 먹으며,  

물고기를 파헤치며, 음계를 헝크리며 놀고 있는 

죽여주는 욕망과 고통을 동시에 버무리고 있는 오빠가 있다. 

오빠는 수없이 많은 상처에 상처를 덧내고 있다. 

상처의 틈을 화악, 벌려 내보인다. 

무덤 속으로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연인을 끌어들여 

연인이 무덤을 키우는 것을 본다. 

오빠의 파랗고 파란 욕망과 하얀 고통이 나선으로 꼬여 

투명한 음악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썩은 몸에서 야채처럼 음악이 솟아난다.

나는 간신히 야채처럼 솟아나는-파릇한 새싹이 아닌, 야채라는 단어에는 전체가 시들어버린, 죽어버린 이미지가 숨겨져 있는 것처럼 읽힌다- 그 음계만을 떠올려볼 뿐이다.  

 

첫순간, 

오빠에게 욕망이고 고통이었던 연인이었던 것이,   

언어로 변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나는 목격했다.  

나는 당신의 노래를 움키고 당신의 푸른 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요 온갖 은유를 만져요 제발 나를 안아주세요 베어 먹지 않을게요 제발 나를 안아주세요 베어먹지 않을게요 당신은 사려 깊은 장님이 되어 내 손을 빼내어 당신의 입안으로 넣어요 아직 나의 고백은 끝나지 않았는데 당신의 입안에서 내 손이 사라져요

그래서 나는 야채처럼 솟아난 음계에 오빠의 언어를, 버려진 말의 입에서 

터져나온 언어를 올려본다. 심연에서 기묘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그 짓을 했지요 당신의 항문으로 들어간 검은 구름이 내 입 밖으로 나왔지요   

퍼내도 퍼내도 끝없는 당신 당신은 작고 노란 손을 내 방광 속에 집어넣지요 당신의 손가락은 물고기가 되어 내 방광 속을 융여하지요 음악은 음악은 내 입으로 들어가 당신의 항문으로 나오지요  

-흔들리는 구름 

 당신이 오돌오돌 떨며 오빠생각을 부르면 빨랫줄에 걸린 옷들이 붉게 붉게 젖어듭니다. 당시느이 등위로 소복하게 눈이 쌓입니다. 붉게 타오르는 눈이 소복하게 쌓이고 소복하게 눈 쌓인 당신의 등 위로 내 무덤이 눕습니다. 당신이 나의 무덤 속으로 들어옵니다. 

 -오빠생각

나는 썩고싶다. 내 뼈는 시간을 달리고 싶다. 그러나 빌어먹을 겨울의 병든 항문은 좀처럼 더물어지지 않는다. 보라. 차갑고 기름진 눈들 속으로 사라지는 나의 부패를. 

나를 달리게 하하. 가지의 세계에서 불가지의 세계로 나의 악몽을 주사하라. 너의 악몽 속으로 나의 부패를 주사하라. 

-티라노사우루스 

 

어젯밤 꿈에 나는 짐승과 사람 사이였는데, 

네발 달린 사람이었는데, 

아무도 내 등 위로 올라타지 않았고 

걸을수록 발가벗겨졌습니다. 

눈을 뜨니 

바지도 없이 걷고 있습니다. 

내 방과 당신의 방 사이입니다. 

말과 울음 사이입니다. 

보세요. 

아무도 먹지 않는 고깃덩어리입니다. 

-버려진 말의 입 

 

그래 사람이다, 

라고 말하면 이 꼬리는 손발 묶은 강삭(강삭)이 됩니다. 

이 감옥 속을 거닐다 

헤어진 애인을 만난다면 내 입을 찢어 

탈옥하겠습니다, 

저 밖의 밖으로, 

사라지겠습니다.  

-아가리 속의 날들

 

당신의 굳센 손을 우리의 하얀 배에 올려줄 수 있나요? 그 손으로 우리의 배를 갈라 당신이 우리의 헐린 자궁 속으로 들어와줄 수 있나요? 우리는 모두 동그래져서 당신의 휘파람을 불고 싶습니다 그러나 알뱅, 당신은 말하겠죠 빨래건조대에 널려 있는 우리의 속옷을 만지작거리며 결정적으로 너희들은 아직도 사람처럼 보여

-유령들  

  

노래를 따라 불렀더니 억울하게도 슬펐다. 

 

그림자가 몸을 잡아먹는 시대야.

하지만 서로의 뱃속으로 수많은 낮과 밤을 쏟아부어도 이제 더이상 우리에게 유전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다시 또 게워낼 뿐. 시카맣게 탄 채로 식탁에 놓일 뿐. 왜 우리는 자꾸 태우기만 할까.  

밥을 먹다보면 왜 그림자와 몸이 뒤바뀔까.  

문을 박차고 나가면 왜 내 그림자는 이토록 붉기만 할까. 왜 이웃집 따위는 사라져버릴까. 내장을 드러낸 채 서 있는 것만 같아. 드문드문 내장만으로 걷는 사람들. 

-붉은  

 

  이곳엔 나보다 나쁜 얼굴이 없으므로 겨울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창백한 비명을 지르고 암흑은 개처럼 울고 있다. 나의 눈을 삼킨 서늘한 칼과 태양. 겨울의 비명이 나의 온 구멍을 메운다. 아, 이곳은 가장 나이가 어린 세계. 나를 명료하게 만들라. 뼈만 남은 어깨,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을 기억하라. 바람 소리, 낙타 소리, 죽은 낙타의 배를 부풀리는 바람 소리. 징징 울고 있는 칼의 소리. 나의 얼음 같은 증오를 보라. 내 적의 칼을 기억하라. 내 심장에 남겨진 칼의 야릇하고 차가운 진동을 기억하라. 검은 털이 달린 나의 분노를 기억하라. 죽음은 발기된 채 눈을 감았고 이곳엔 나보다 나쁜 얼굴이 없으므로 나는 지옥보다 검게 웃는다. 너는 어디 있는가. 너의 말은 어딜 향해 달리고 있는가. 나, 머리가 백 개 달린 암흑, 존재의 가마솥이 들끓는다. 

- 알리바바

                                                                                   

이제 나는 얼음 같은 증오로 가득찬,  

인간과 짐승 사이의 그것, 혹은 이 오빠가 

가장 나이가 어린 세계에서 팽팽하게 발기한 죽음과 대적한 뒤  

다른 세계로 빠져나와 더욱 명료해진,  

그의 연인, 언어, 시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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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커 -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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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손으로 꾹 누르면 물이 흘러나오는 홍시처럼 슬픔을 가득 담고 있지만
겉으론 쾌활한 색과 밝은 웃음을 보이는 사람. 
 

 

이 소설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온두가 름과 햇살이 가득한 거실에서 눈을 떴을 때,
그 햇살을 가늠해보기 위해 눈을 감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물어보고 싶었다.

안녕, 잘 잤니?

그만큼 온두의 캐릭터는 시작부터 끝까지 생생하게 독자를 사로잡는다.
동반자살을 하려던 부모 때문에 유아기 때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난 온두.
그녀는 유모차의 따스한 온기를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베이비 앤 마미에서 늘 초조하고 신경질적인 엄마들에게 유모차를 추천해준다. 그녀가 추천해주는 유모차는 아기와 엄마에게 적당하다. 온두는 유모차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반면, 어떤 강력한 과거의 어두운 상처를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그녀는 독설과 불친절한 대응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그리고 혼자만의 안락한, 유모차 같고, 자궁 같은, 트렁크에 몸을 말고 숨어든다.

그녀의 평온을 깨트린 사람은 름. 온두는 름을 공터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청소년과 단 한번의 쓰레기 투하로 덜미를 잡혔던 장로님처럼 대하려했다가 름이 공터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태도를 바꾼다. 더군다나 름 또한 ‘슬트모’의 존재를 알고 가입하기를 희망하는 안전하게 숨을 자리, 안전하게 잠잘 곳을 찾는 사람인 것.

뿌까. 름은 온두를 처음 만났을 때, 오래 전 자신의 트렁크를 빌려줬던 소녀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래서 름은 온두에게 치킨차차차, 를 미끼로 과거의 기억을 파헤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온두는 름의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고, 과거의 대부분을 잊은 척, 실제로 잊었다고 믿어버린다.

름과 온두가 유아, 혹은 유년기의 상처를 풀어내는 방식은 독특하다. 치킨차차차. 게임의 제목자체가 경쾌 발랄이다. 그렇지만 이 게임은 만만치 않다. 이 게임에 진 사람은 색깔마다 정해진 벌칙으로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발랄한 게임은 칙칙하고 무거운 과거를 끄집어낸다. 름은 아버지의 기억을 살려내기 위해 게임을 만들었지만 결국, 치킨차차차는 름의 상처를 치료하는데 쓰였다.

 

“제가 이겼습니다.”
그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내 닭이 서 있던 주황색 달걀 모양을 집어 들었다. 그는 퓨마를 데려와 내 승리를 훼방 놓은 것이다.
“주황은 학창 시절입니다.”
“무슨 소리예요?”
“주황에서 지면, 학창 시절을 말해야 합니다. 그게 벌칙이란 말입니다.”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벌써부터 내 입에서는 이야기의 블록들이 달그락거렸다. 그것들이 입 밖으로 나가면 거대한 집을 지을 수도 있고, 다 지어놓은 집을 모래로 만들 수도 있다. 모항주 당신이, 나 뿌까를 이해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머리와 입이 따로 움직이는 사람이야. 나는 거짓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내 입은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 

 

이 밝고 쾌활한 게임으로 름은 자신의 상처를 온두에게 날것으로 보여주며 온두의 상처 또한 보기를 원한다. 그러나 머릿속이 달달달 끓고 머리에서 늘 단백질 타는 냄새가 나는, 뜨거운 콩인 온두는 과거와 기억을 거짓으로 꾸며낸다. 

‘피’는 나더러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너한테는 세 개의 자아가 있는 것 같아! 하나는 현재의 너야. 냉소적이지만 나름대로 쾌활한 자아. 네가 사람들한테 툴툴거려도 명랑하고 귀여운 사람이라고 생각해. 언젠가 감동 깊게 봤다는 들피집 이란 영화가 있었댔지? 내가 영화 마니아인 것 너도 알 거야. 나는 들피집이란 영화를 찾아봤어. 그 비슷한 내용의 영화도 없었어. 네가 이야기한 들피집은 네 과거일지 몰라. 물론 비틀린 기억이겠지. 비틀린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게 두 번 째 자아야. 세 번째 자아는 현재의 너와 두 번째 자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해야 해. 그런데 그 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그냥 거짓말만 할 뿐이지. 아무 노력도 안하는 무책임한 자아야.”

간헐적으로 온두는 뒤틀린 자신의 기억과 조우한다. 들피집, 성추행을 하던 학교 선생님, 교복남녀, 다락, 할아버지, 집단자살, 다락에서의 환상, 항아리, 항아리 속에서의 출산, 들피집 할머니의 죽음, 기자와 방송국 사람들, 최초로 트렁크에 들어갔던 일, 약을 먹이려던 엄마의 모습.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트렁크에서 잘 수밖에 없는 인물들이 춥고 어두운 유년의 과거를 발랄하게 드러내는 방법에 있다. 트렁크에서 자는 현재, 어둡고 들춰보고 싶지 않은 유년의 기억,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인 치킨차차차. 이 세 가지가 정확히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그 무게중심에 온두와 름이 있다.
건물의 균형을 잡아주는 름이 그 삼각형의 중심을 잘 잡고 있어 이 소설은 어둡고 읽는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 정도로 끔찍하고 무서운 사건들을 나열하지만 경쾌하게 읽히고, 읽는 재미를 독자에게 선사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빨리 읽혀 아까운 소설을 만나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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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커 -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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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넘 기발하네요. 트렁크에서 자는 심정 이해가요. 기대됩니다. 예약 주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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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창비시선 303
강성은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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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남산의 가파른 계단에 앉아 읽었던 최승자의 시집.    

어두워지는 줄 모르고 한 권을 꼬박 읽고 너무 아련해했던 기억이 났다.                            

오랫만에 그런 시집을 만났다.                                                                                       

첫장부터 끝까지 애틋해하며 읽는, 너무나 얇아서 아련하고 아쉽고 슬픈,                              

날개에 나온 시인과 꼭 닮은 시집.  

 

투명한 잉크 병에 빨강, 파랑, 노랑 잉크를 담아 아홉개의 달이 떠 있는 밤을 부유하며             

타고난 언어 감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헤라자데,                                                       

언어는 미끄러지며 잉크와 뒤엉켜  색을 만들고 모양을 어그러지게해 음악이 되어                     

듣는 이의 손을 끌어 당긴다.  

그녀의 음악에 이끌려 떠도는 물속의 도시, 양수 속, 아름다운 계단, 얼음나라에서                   

우리는 모두 조그마한 계집아이가 된다, 재가 되고, 나무가 되고, 불이 되었다가, 빛이 된다.      

빛이 되어 세헤라제데와 면밀하게 내통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 시집을 가을에, 겨울에 다시 읽어 봐야겠다.                                                                 

특히, 겨울에 읽으면 세헤라제데의 차가운 손이 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갈 것 같다.  

그녀의 다음 시들이 기다려진다. 

 

엄마 오늘밤 우리의 악몸은                                                                                           

숨겨진 골목들이 차례로 쏟아지는 꿈입니다                                                                     

저 어두운 골목들은 쏟아지며 눈부신 물거품을 만들어냅니다                                              

우리의 바다 깊숙이 가라앉습니다                                                                                  

엄마 이 바다 속에는 무수한 골목들                                                                                

나는 오늘도 구겨진 골목 속으로 들어가                                                                          

골목과 골목 사이의 바람과 가로등 누군가 불렀던 허밍                                                         

그 속에서 희미하게 일렁이는 당신의 그림자를 발견합니다                                                 

나는 태어나기 위해                                                                                                     

당신은 깨어나기 위해                                                                                                  

우리는 물속에 잠겨 있지요                                                                                           

살아 있는 듯 잠자는 듯했지만                                                                                         

엄마 오늘밤 우리의 악몽은                                                                                           

태어나지도 깨어나지도 않는 영원한 불길함입니다                                                            

엄마 뱃속의 바닷물은 차갑고                                                                                        

나는 추워서 얼어붙을 지경인데                                                                                     

당신은 또 악몽을 꾸느라 겨울 밤거리에 맨발로 서서 울고 있습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건 당신도 마찬가지죠                                                                                        

파도에 휩쓸려 왔다갔다 할 뿐                                                                                       

우리는 오직 우리 자신을 껴안습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 자신을 애무합니다                                                                              

미궁 속에서 

                                                                                                   - <양수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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