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생각 (특별판) 문학동네 시인선 9
김안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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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우물에 가라앉아 구름을 뜯어 먹으며,  

물고기를 파헤치며, 음계를 헝크리며 놀고 있는 

죽여주는 욕망과 고통을 동시에 버무리고 있는 오빠가 있다. 

오빠는 수없이 많은 상처에 상처를 덧내고 있다. 

상처의 틈을 화악, 벌려 내보인다. 

무덤 속으로 장바구니를 들고 있는 연인을 끌어들여 

연인이 무덤을 키우는 것을 본다. 

오빠의 파랗고 파란 욕망과 하얀 고통이 나선으로 꼬여 

투명한 음악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썩은 몸에서 야채처럼 음악이 솟아난다.

나는 간신히 야채처럼 솟아나는-파릇한 새싹이 아닌, 야채라는 단어에는 전체가 시들어버린, 죽어버린 이미지가 숨겨져 있는 것처럼 읽힌다- 그 음계만을 떠올려볼 뿐이다.  

 

첫순간, 

오빠에게 욕망이고 고통이었던 연인이었던 것이,   

언어로 변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나는 목격했다.  

나는 당신의 노래를 움키고 당신의 푸른 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요 온갖 은유를 만져요 제발 나를 안아주세요 베어 먹지 않을게요 제발 나를 안아주세요 베어먹지 않을게요 당신은 사려 깊은 장님이 되어 내 손을 빼내어 당신의 입안으로 넣어요 아직 나의 고백은 끝나지 않았는데 당신의 입안에서 내 손이 사라져요

그래서 나는 야채처럼 솟아난 음계에 오빠의 언어를, 버려진 말의 입에서 

터져나온 언어를 올려본다. 심연에서 기묘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그 짓을 했지요 당신의 항문으로 들어간 검은 구름이 내 입 밖으로 나왔지요   

퍼내도 퍼내도 끝없는 당신 당신은 작고 노란 손을 내 방광 속에 집어넣지요 당신의 손가락은 물고기가 되어 내 방광 속을 융여하지요 음악은 음악은 내 입으로 들어가 당신의 항문으로 나오지요  

-흔들리는 구름 

 당신이 오돌오돌 떨며 오빠생각을 부르면 빨랫줄에 걸린 옷들이 붉게 붉게 젖어듭니다. 당시느이 등위로 소복하게 눈이 쌓입니다. 붉게 타오르는 눈이 소복하게 쌓이고 소복하게 눈 쌓인 당신의 등 위로 내 무덤이 눕습니다. 당신이 나의 무덤 속으로 들어옵니다. 

 -오빠생각

나는 썩고싶다. 내 뼈는 시간을 달리고 싶다. 그러나 빌어먹을 겨울의 병든 항문은 좀처럼 더물어지지 않는다. 보라. 차갑고 기름진 눈들 속으로 사라지는 나의 부패를. 

나를 달리게 하하. 가지의 세계에서 불가지의 세계로 나의 악몽을 주사하라. 너의 악몽 속으로 나의 부패를 주사하라. 

-티라노사우루스 

 

어젯밤 꿈에 나는 짐승과 사람 사이였는데, 

네발 달린 사람이었는데, 

아무도 내 등 위로 올라타지 않았고 

걸을수록 발가벗겨졌습니다. 

눈을 뜨니 

바지도 없이 걷고 있습니다. 

내 방과 당신의 방 사이입니다. 

말과 울음 사이입니다. 

보세요. 

아무도 먹지 않는 고깃덩어리입니다. 

-버려진 말의 입 

 

그래 사람이다, 

라고 말하면 이 꼬리는 손발 묶은 강삭(강삭)이 됩니다. 

이 감옥 속을 거닐다 

헤어진 애인을 만난다면 내 입을 찢어 

탈옥하겠습니다, 

저 밖의 밖으로, 

사라지겠습니다.  

-아가리 속의 날들

 

당신의 굳센 손을 우리의 하얀 배에 올려줄 수 있나요? 그 손으로 우리의 배를 갈라 당신이 우리의 헐린 자궁 속으로 들어와줄 수 있나요? 우리는 모두 동그래져서 당신의 휘파람을 불고 싶습니다 그러나 알뱅, 당신은 말하겠죠 빨래건조대에 널려 있는 우리의 속옷을 만지작거리며 결정적으로 너희들은 아직도 사람처럼 보여

-유령들  

  

노래를 따라 불렀더니 억울하게도 슬펐다. 

 

그림자가 몸을 잡아먹는 시대야.

하지만 서로의 뱃속으로 수많은 낮과 밤을 쏟아부어도 이제 더이상 우리에게 유전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다시 또 게워낼 뿐. 시카맣게 탄 채로 식탁에 놓일 뿐. 왜 우리는 자꾸 태우기만 할까.  

밥을 먹다보면 왜 그림자와 몸이 뒤바뀔까.  

문을 박차고 나가면 왜 내 그림자는 이토록 붉기만 할까. 왜 이웃집 따위는 사라져버릴까. 내장을 드러낸 채 서 있는 것만 같아. 드문드문 내장만으로 걷는 사람들. 

-붉은  

 

  이곳엔 나보다 나쁜 얼굴이 없으므로 겨울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창백한 비명을 지르고 암흑은 개처럼 울고 있다. 나의 눈을 삼킨 서늘한 칼과 태양. 겨울의 비명이 나의 온 구멍을 메운다. 아, 이곳은 가장 나이가 어린 세계. 나를 명료하게 만들라. 뼈만 남은 어깨,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을 기억하라. 바람 소리, 낙타 소리, 죽은 낙타의 배를 부풀리는 바람 소리. 징징 울고 있는 칼의 소리. 나의 얼음 같은 증오를 보라. 내 적의 칼을 기억하라. 내 심장에 남겨진 칼의 야릇하고 차가운 진동을 기억하라. 검은 털이 달린 나의 분노를 기억하라. 죽음은 발기된 채 눈을 감았고 이곳엔 나보다 나쁜 얼굴이 없으므로 나는 지옥보다 검게 웃는다. 너는 어디 있는가. 너의 말은 어딜 향해 달리고 있는가. 나, 머리가 백 개 달린 암흑, 존재의 가마솥이 들끓는다. 

- 알리바바

                                                                                   

이제 나는 얼음 같은 증오로 가득찬,  

인간과 짐승 사이의 그것, 혹은 이 오빠가 

가장 나이가 어린 세계에서 팽팽하게 발기한 죽음과 대적한 뒤  

다른 세계로 빠져나와 더욱 명료해진,  

그의 연인, 언어, 시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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