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스 평전 - 현대 중국의 개척자
조너선 펜비 지음, 노만수 옮김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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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국사


사실 마오쩌둥이라면 몰라도 장제스란 인물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내게 장제스는 역사의 패배자, 잔악한 독재자,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의 지도자였다. 하지만 드문드문 주워들은 단편적인 정보로만 알뿐 장제스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이 책이 나오고 호기심이 생겨 읽게 되었다. 최근 위화의 소설들을 읽으며 중국에 대해 알고 싶어진 것도 하나의 이유다. <장제스 평전>은 20세기 전반 중국사의 압축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장제스는 중국 역사의 핵심에 선 인물이었다. 쑨원과의 활동, 군벌들과의 투쟁, 공산당 토벌, 일본과의 전쟁, 세계 대전, 또 한차례의 내전과 마지막 패배까지 수십 년의 격동이 그를 들러싸고 숨 쉴 틈 없이 전개된다. 전쟁과 세력 다툼, 권력 투쟁이 끊임없이 이어지니 <초한지>나 <삼국지>를 읽는 듯 재밌을 수밖에 없는 책이다. 하지만 수많은 전쟁에 휘말려 삶의 기반을 잃고 굶주려 죽고 학살당하는 '보통 사람들'을 생각하면 영웅담이나 소설과는 다른 '현실'을 깨닫게 된다.



오로지 권력을 향해


장제스를 단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권력 지향형 인간이라 할 수 있다. 장제스는 중국을 전통적 가정으로 상정하고 스스로를 가부장으로, 인민을 보살펴야 할 자식으로 여겼다. 이때 자신의 권위는 결코 도전을 받아서는 안 됐다. 그는 능력과 성과 대신 충성과 복종을 토대로 아랫사람을 평가했고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최우선에 두고 모든 정책을 펼쳤다. 심지어 항일전쟁에서도 경쟁 세력이나 공산당을 일본보다 더 경계하는 데 전심을 기울였다. 결국 장제스는 중국 대륙을 잃었지만 살아남아 타이완에서도 최고 권력자로 끝까지 남을 수 있었다. 권력과 생존은 그의 지상 과제이자 유일한 정치 기술로 보인다. 장제스에게는 중국을 어떤 나라로 만들겠다는 비전이 거의 없었다. 보수적인 도덕과 검소, 청결을 강조하며 신생활운동을 내세우지만 허울뿐이다. 술과 도박 그리고 여성의 치마 길이를 규제하는 대목에서는 한국의 독재 정권 시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장제스가 거대한 중국을 한데 묶고 짧게나마 근대화를 이루어 낸 점만은 재평가한다. 모든 과오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장제스에 대한 내 생각은 돌고 돌아 독서 전의 지점에 도달했다. 결국은 패배자이자 독재자. 하지만 오늘날 중국을 설명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



장쉐량에 대하여


책을 읽으며 오히려 인상 깊었던 것은 장쉐량의 파란만장한 인생이다. 일본의 사주로 아버지 장쭤린을 잃고 만주의 영토도 빼앗기고 장제스 수하에 들어간 청년 장군. 시안 사건을 일으켜 국공 합작을 이뤄 내지만 그 대가로 여생 거의 전부를 갇혀 지낸다. 장제스가 그를 잊지 않고 타이완까지 데려갔다고 하니 원한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도 죽이지 않고 끝까지 살려 뒀다는 점이 신기하다. 어쩌면 어느 한편이 죽을 때까지 그 사건을 평생 잊지 않겠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장쉐량은 시안 사건 직전 빈사 상태였던 공산당에게는 구국의 결단을 한 영웅으로, 반대로 국민당과 장제스에게는 잊지 못할 배신자로 평가받으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야말로 한 편의 소설 같은 삶이다. 한편 천수를 누리다 2001년 하와이에서 죽은 장쉐량과 관련해 이런 농담도 있다고 한다.


- 술과 담배를 멀리한 린뱌오는 60대에 죽었고, 담배를 멀리하고 술만 즐긴 저우언라이는 70대에 죽었고, 술은 멀리하고 담배만 즐긴 마오쩌둥은 80대에 죽었으며, 술과 담배를 모두 즐긴 덩샤오핑은 90대에 죽었다. 하지만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여자까지 즐긴 장쉐량은 100세까지 살았다.(심지어 마약도 오래 했다.)



인상 깊은 구절


장제스의 이상 속에서 중국은 언제나 전통적인 가정으로, 중국의 사회는 그 위에 세워져야 했다. 4억 8000만의 아이들은 마땅히 아버지의 초상을 공경하고 우러러보며 그 가르침들을 따르고, 제멋대로인 공산주의자 아들의 악영향을 제거하며, 더불어 공격적인 일본인 이웃이 끼친 손상을 회복하여 무궁무진한 불굴의 정신을 보여 주어야만 했다. 가부장은 반드시 사랑받을 필요는 없지만, 국가를 구원하는 상징으로서 존경을 받아야 했다.
(284쪽)


그 이전의 황제와 그 이후의 공산당 영수 덩샤오핑처럼, 장제스는 안정과 질서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정치적 다양화에 적대적이었다. 민주주의는 “온 나라에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배척되었다. [중략] 장제스의 한 충신이 말한 바대로, 외국의 침략과 봉건주의의 지속은 이 나라에 일종의 “중국식 독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285쪽)


“나는 총사령관이다. 나는 결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나는 중국이다. 중국은 나 없이는 아무것도 이뤄 낼 수 없다.”
(312쪽)


“지난 세월을 헛되이 보냈다. 치욕과 패배를 맛보았다. 하지만 나는 괴로워하지도, 노하지도, 자만하지도 않을 참이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양심에 부끄러운 바가 없다.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나에게 어찌 행운이 가득하지 않겠는가? 위험과 고난이 앞에 가로놓여 있다. 더욱 스스로를 경계하여야 중화 민족을 부흥하고 중화민국을 재건할 수 있을 터이다.
(609쪽)


장제스는 최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권력 투쟁을 벌인 인물로, 자기 자신을 바로 중국을 운명적으로 잃어버린 자로 만들었다. 이 점이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최악이었다.
(615쪽)


장제스가 정권을 장악했던 시대의 모든 요소들이 21세기 초 중국에서 다시 상연되고 있다. 장제스의 시대는 많은 방면에서 ‘포스트(post) 마오쩌둥 중국’의 전조로 바라볼 수 있다. [중략] 이러한 맥락에서 장제스와 그의 시대는 공산당이 승리한 후의 악몽에 비하면 그 이하이고, 사명을 최후까지 이룩할 자원과 역량이 부족한 통치자와 체제 탓에 기회들을 잃어버린 시기라고 하기엔 그 이상이다.
(6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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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류 - 채만식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42
채만식 지음, 우찬제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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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의 막장

<탁류>가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은 한 여자의 인생이 망가져 가는 과정이다. 꽃다운 초봉이는 난봉꾼에다 횡령범인 태수에게 팔려 가다시피 결혼했다가 형보에게 강간을 당하고 아버지뻘인 제호의 꾐에 넘어가 첩 생활을 하는 것도 모자라 다시 형보의 손아귀에 들어가며 점점 시들어 간다. 이 과정에서 돈과 사랑, 섹스, 폭력, 살인, 자살, 온갖 계략과 꿍꿍이, 심지어는 세 남자와 얽혀 누구 아이인지도 알 수 없는 애라는 설정까지 난무한다. 분위기나 문체가 예스러울 뿐, 오늘날의 막장 드라마를 연상시킨다. 초봉이를 손에 넣으려는 남자들의 망나니짓은 그러려니 싶지만, 도대체가 줏대도 뱃심도 없이 그저 운명이라 되뇌며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전근대적인 초봉이 캐릭터가 답답함과 짜증을 유발한다. 이쯤이면 막장 드라마의 요건은 다 갖췄다 하겠다.


유쾌한 언어

작품 배경인 1930년대의 역사적, 사회적 상황을 제하면, 순결한 처녀가 험난한 세상의 풍파에 망가져 간다는, 한없이 평범한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탁류>를 돋보이는 소설로 만드는 것은 바로 문체다. 각종 사투리와 (오늘날 기준으로) 참신한 어휘 그리고 맛깔나는 표현 들이 시종일관 암울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판소리를 연상시키는 특유의 사설 조도 인상적이다. 심지어 심각한 분위기일 수밖에 없는 살인 장면에서도 박자와 리듬감이 살아 있다. 다소 부족한 내용을 탁월한 형식으로 살린 경우라 할 수 있다. 채만식이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그에 비하면 이기호니 최민석이니 하는 요즘 소설가들의 입담은 어설픈 따라 하기 수준이다.


식민지 근대의 정글

한판의 막장극과 유쾌한 입담이 만나 빚어내는 시너지 효과가 <탁류>의 핵심이다. 한마디로 하면, 풍자다. 최초의 맑은 금강 물이 먼 길을 흘러 점점 탁해지고 항구인 군산에 이르러서는 완전한 '탁류'가 되는 것처럼, 초봉이의 인생은 시간이 감에 따라 비참하고 구질구질해진다. 식민지 착취의 전진기지인 군산에서는 가난과 타락, 눈먼 욕망이 횡행하고 사람들은 서로를 속고 속인다. 그야말로 약육강식, 무법질서의 정글이 따로 없다. 채만식은 재치와 능청으로 그 정글을 그린다. 웃음과 눈물이 뒤섞이는 바람에, 너무 웃겨 눈물이 나는 건지, 어처구니가 없을 만큼 슬픈 일이라 헛웃음이 나는 건지 때로 분간하기 힘들다. 어쩌면 웃음이 있어야 정글에서도 지옥에서도 버틸 수 있는 것이리라. 전복의 웃음까지는 못 미치더라도 위로의 웃음이라도 사는 데 중요한 법이다.


인상 깊은 구절

“이놈!”
하더니 방망이는 연달아 그를 짓바수기 시작한다.
“이놈!”
하고
“따악”
하면
“어이쿠!”
하고……
“퍼억”
하면
“아이쿠!”
하고, 그래서
“이놈!”
“따악, 퍼억”
“어이쿠!”
(328쪽)

일찍이 가슴을 설레게 해주었고, 두고두고 잊히지 않고 연연턴 초봉이고 보니 인절미에 조청까지 찍은 맛이다. 좋다.
(363쪽)

국제조약과 한가지로 계집 사내 사이의 연약은, 저 싫으면 차 내던지는 놈이 장사요, 앉아 당하는 놈이 호소무처라는 걸 모르는 초봉이다.
(428쪽)

나그네 먹던 김칫국이나마 먹자니 더러워도, 남 주자니 아까운 인심이라면,
(431쪽)

“시에미가 오래 살면 자수물통에 빠져 죽는다더니……”
(432쪽)

“연앤 정열허구 정열허구가 만나서 하는 게임이구, 그러니깐 연앤 아마추어 셈이구…… 그런데 결혼은 프로페쇼날, 직업인 셈이구……”
[중략]
“그러니까 이를테면 학문허구 직업허구처럼 다르지…… 누가 꼭 취직하자구만 공불 허우?”
(5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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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의 무정한 세계 - 우리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과학사
정인경 지음 / 돌베개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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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올해 읽은 책 중 최고. 참신한 컨셉에 재미와 깊이를 두루 갖춘 교양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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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시절 열린책들 세계문학 103
조지 오웰 지음, 박경서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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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웰의 다른 작품들보다 덜 알려졌지만, 역시나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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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0
엔도 슈사쿠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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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책 중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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